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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길에서 만나는 풍경들, 사람들 하나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신정일 우리땅 걷기(사) 대표, 문화사학자 2013년 04월호

누구는 그를 ‘길과 강의 철학자’라 하고, 어떤 이는 그를 ‘현대판 김정호’, ‘길의 시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대표 도보답사가 신정일(59) 우리땅 걷기 대표. 이 낭만적인 수식어의 주인공이다. 30여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오로지 두 발로 누비고 다니면서 글로 풀어낸 책만 70여권. 전주 진북동 자택에서 그를 만나 길이 갖는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대한민국 곳곳, 안 가본 곳이 없을 텐데, ‘걷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85년 답사단체인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우리 민족의 흔적이 낱낱이 배어 있는 곳을 천천히 걸으면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느리게 체험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1박 2일에서 2박 3일 정도 답사코스를 짜 회원들과 전국의 유명한 사찰과 문화유적지를 찾아다녔다. 2002년에 황토현문화연구소는 우리땅 걷기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답사활동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회원이 1만여명 정도 된다. 주로 회사원이다 보니 대개는 주말에 걷는 편이다.


이번 주말엔 어디를 걷나?
한강이다. 구체적으로 한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골에 있는 검룡소(儉龍沼)에서 한강 하구인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까지 1,300리(약 510㎞) 길을 3월부터 12월까지 1달에 한 차례씩 2박 3일 일정으로 걷을 계획인데 그 시작이 이번 주(3월 15~17일)다. 100여명이 함께 하는 대장정이다.


한강 답사는 이미 한두 번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이 네 번째지만 갈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어느 계절에 가느냐에 따라서 풍경이 확 바뀐다. 또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지 않나. 시절인연이라고 나는 누구와 함께하느냐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느 시절에 누구를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그랬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래서 한 번, 두 번 갔다 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얼마나 걸었나?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만경강, 동진강, 한탄강을 발원지에서부터 하구까지 두 세 번씩 걸었고, 영남대로, 관동대로, 삼남대로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옛길과 산골 오지 마을까지 안 가본 데가 없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별로 없을 거다(하하). 오르내린 산도 400개가 넘는다. 족히 5~6만㎞는 되지 않을까.  


걷다 보면 길이 끊어진 곳도 있을 텐.
길은 끊어지기도 하지만 또 이어진다. 산을 돌아가기도 하고 강을 건너기도 하고.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논어」에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가끔 그것을 패러디해서 ‘돌아가는 것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하면서 돌아갈 때가 많다. 길은 잃을수록 좋다. 길을 잃어야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남이 가지 않은 길, 남이 가지 못하게 한 길을 걸을 때 창조가 되는 거다.


옛길의 정취가 남아 있는 길을 추천한다면?
울진군 북면에서부터 용화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길이나 삼척의 관동대로길, 죽령 옛길, 대관령 옛길, 문경새재 길, 양평군 양동에서부터 지평까지 이어가는 구둔재 너머길 등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울진군 북면 두천1리에서부터 봉화군 현동까지 이어지는 12령길은 예전에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로 지금도 옛날의 정취가 많이 남아 있다.

 

강을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강은 인간하고 닮았다. 하나의 작은 물방울에서 비롯돼 샘을 이루고 내려가면서 하나하나 지류를 받아들여 강이 된다. 아무리 오염된 것이라도, 아무리 작은 지류라도 모두 끌어안고 간다. 강의 가장 큰 덕목은 겸손함이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만 내려가는 것이 바로 강이다. 사람 역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아장아장 걷고, 학교 다니고, 결혼하고, 직장 다니고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 하나하나 사람들이 다 지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겸손하게 낮은 곳으로만 가는 강과 달리 사람은 오로지 높은 곳을 열망한다. 그 열망에 집착해 서로 부딪치면서 경쟁관계로 적대관계로 그렇게 살다 간다.


걷기의 매력을 꼽는다면?
우선 건강을 챙기는 데 이만한 것이 없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다. 약으로 몸을 보하는 것보다 밥을 잘 먹는 것이 보약이고, 밥을 잘 먹는 것보다 걷기가 더 보약이라는 의미다. 걷기는 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다. 아무리 좋은 운동을 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좋은 노동을 한다 하더라도 걷기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걷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멋진 풍경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나를 만난다. 길에서 만나는 사물들, 풍경들, 사람들 하나하나 신기하고 반갑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힘들어도 다시 걷게 된다.


최근 몇 년 새 걷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건강과 사색 등 여러 가지가 결부된 결과인 것 같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등 잘 걷지 않게 되니까 성인병 같은 것이 생기고, 그래서 건강을 위해 걷기 시작한 것 아닐까. 사실 역사 속에서는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걷기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넓혔다. 장자크 루소나 칸트, 니체,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헤르만 헤세 등. 특히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만큼만 존재한다.’고까지 말했다. 그동안 우리들은 그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바쁘게, 빠르게 살아오지 않았나. 자기를 돌아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해진 거다.


「신택리지, 살고 싶은 곳」을 냈다. 정말 살기 좋은 곳은 어디인가?
옛날 사람들은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10~20리 떨어진 지점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요즘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지으려 하지만 그런 곳은 비싸다. 경치 좋은 곳에서 4~8㎞ 떨어진 곳에 집 지어놓고 산책하듯 천천히 갔다 오면 그게 내 정원이다. 경치 좋은 곳은 내가 하지 않아도 국가에서 알아서 잘 관리해 주지 않나.


우문이다. 언제까지 걷기를 계속할 생각인가?
당연 죽는 날까지 걸을 거다. 객사가 참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게 나에겐 최고의 영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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