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삶은 숨 가쁘다. 늘 뛰어야 살아남는다고 여긴다. 주변을 봐도 모두가 뛰니 불안해서 덩달아 달리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그렇게 뛰고 달리니 늘 지치고 불안하다.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습관처럼 뛰어다닌다. 그런데 잠깐의 시간을 덜어내 한가롭게 걸어보면 평화로움을 느낀다.
달리는 것은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아무 생각도 목적도 없이 뛰지는 않는다. 조금만 더 뛰면 손에 잡힐 것 같다. 달리기는 소유의 욕망이 빚어낸 강박이다. 달리면서 생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에 비해 걷는 것은 당장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불필요한 소유와 집착을 덜어낸다. 또한 걷는 것은 저절로 생각을 끌어내게 해준다. 혼자 걷는 것은 침묵의 길을 제 몸으로 누리는 일이다. 침묵은 인간의 마음속에 돋아난 쓸데없는 곁가지들을 쳐내고 그를 다시 자유로운 상태로 되돌려놓아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삶에 널려 있는 잡동사니들을 말끔하게 청소하는 일이다. 침착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삶의 원심력을 회복하게 한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서로 떨어져 있는 공간의 두 지점을 이어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제어하지 못하던 삶의 가속도를 원래의 속도로 환원하는 일이다. 삶의 속도가 때론 너무 가파르다. 생각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불행하고 삶이 황폐해진다. 항상 뛰어다닐 수는 없다. 진짜 가속도가 필요할 때엔 정작 지쳐서 길을 멈춘다. 그래서 가끔은 혼자 조용히 걸어봐야 한다. 그 힘이 축적돼야 필요한 가속도를 마련할 수 있다. 삶의 등속도를 유지해야 진짜 가속도를 얻을 수 있다. 가속으로만 달리면 금세 지치고 쓰러진다. 그런데도 자꾸만 더 빨리 달리려고만 한다. 그렇게 나를, 내 삶을 잃어버린다. 나를 잃었는데 아무리 권력과 부를 얻은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걷기는 세상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본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이며 그것도 제맛을 되찾아 즐기는 행복한 우회적 수단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말한다. 걷는 것은 숨을 가다듬고, 시간을 길들이고, 인간적인 높이에서 지각되는 세계를 인식한다. 그것은 자체로 휴식이며 동시에 지속적인 일이다. 우리는 걷기를 통해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형식이다. 근본적인 삶의 가치와 태도를 잃고 사는 삶은 황폐하다.
고독은 자발적 고립이지만 고립은 타율적 고독이다. 걷기는 고독을 통한 자기 발견이지만 뜀은 고독의 값을 몰라 고립이 두려워 내달리는 것이다. 걷기는 나를 만나게 하는 신성한 의식이며 성찬이다. 진짜 오래 멀리 가는 것은 달리기가 아니라 걷기라는 걸, 가속이 아니라 등속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이 봄,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