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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다섯에 떠난 국토종단
황안나 도보여행가 2013년 04월호

내가 예순다섯이 되던 어느 날, 지도를 들여다보다가 어디든 떠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드니까 검불에 불이 붙듯이 떠나고 싶은 뜨거운 열망으로 가슴이 들끓었다. 그것도 하루이틀 걸리는 가까운 길이 아니라 아주 먼 길을 걷고 싶었다. 끝없이 이어진 황톳길을 걸으며 푸른 보리밭이며 산과 강들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국토종주 길이었다. 우리나라 저 남쪽 끝에 있는 해남 땅끝마을부터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800km 남짓 되는 2천리 길, 줄잡아도 한 달여의 일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 떠나려니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러나 간절하고도 뜨거운 열망이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냈다.


그렇게 해서 예순다섯에 떠난 남해 바다의 첫날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오른쪽으로는 잔잔한 바다가 햇빛에 반짝였고, 왼쪽으로는 길가에 핀 동백꽃이 붉었고 산에는 진달래가 지천이었다. 길엔 차도 별로 없었고 봄볕만이 가득했다.
묵상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다. 혼자 걷는 길은 내게 묵상을 보너스로 주었다. 이른 새벽부터 걷는 길들은 온통 내 것이었다. 싱그러운 바람, 아름다운 바다, 꽃, 새소리, 운무가 모두 나만을 위해 있었다. 그 위대한 자연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도 모르게 바닷가에 서서 고해성사를 했다. 이 많은 날들을 살아오면서 무슨 짓은 안 했으랴! 내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과도 화해를 했다. 혼자 걷는 길은 외로웠지만 말할 수 없이 편하고 자유스러웠다.


국토종단 완주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숱한 길을 걸었다. 예순일곱 살에는 동해, 남해, 서해를 이어서 걷는 4천여km의 해안일주도 완주했고, 스페인 산티아고 길도 걸었다. 그리고 일흔셋이던 지난해에는 2차로 해안일주 길을 다시 걸었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아물고, 다시 부르트고 아물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길은 내게 삶의 길을 가르쳐 주었고 몸과 마음의 다이어트를 선물로 주었다. 또 길 위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고 하지만 고마운 이들이 더 많았다.


내가 처음 국토종단을 떠날 때, 후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님, 누님이 30~40대에 떠나셨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그 순간 내게 떠오른 생각은 ‘내겐 지금이 적기다’였다. “그 먼 길을 걸은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한 말은 “현관문을 열어라”, 즉 용기를 내서 첫발을 내디디란 것이었다. 첫걸음을 떼면 이미 70~80%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도 또 걸을 거냐는 이어진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꿈과 도전엔 마침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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