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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니티와 휴머니즘을 통한 재충전의 공간, 제주
양진건 제주대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장 2013년 09월호


1987년에 50만명이던 제주도 인구가 2013년 8월 12일을 기해 60만명을 돌파했다. 사실 제주도는 1990년에서 2009년까지만 해도 매년 인구가 줄던 섬이었다. 하지만 2010년을 기점으로 유입인구가 더 많아지기 시작해 2012년 한 해 동안만 하더라도 5천여명이나 됐다.


제주도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원악고도(遠惡孤島)의 척박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육지부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섬이다. 이를 금지하기 위해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을 시행했었음을 돌아볼 때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최근 3년 사이에 왜 이렇게 제주도에 인구가 늘어나게 된 것일까?


우선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될 만큼 수려한 풍광 때문에 연일 관광객들이 증가해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종사자들이 많이 늘게 된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주영어교육도시에 국제학교가 성공적으로 유치, 운영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증가한 데도 그 원인이 있다. 또한 투자유치로 특히 중국인 등의 외국인 이주자 증가도 분명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경기침체와 높은 물가를 피해 들어오는 30∼40대와 제2의 인생을 즐기려는 50∼60대들이다. 요즈음 제주도에서는 도시의 각박한 삶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원하는 젊은 부부와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이들이 제주도 인구유입에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들을 두고 언론에서는 ‘자발적 이민자’라고도 표현을 하지만 필자는 ‘자발적 유배인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알다시피 유배는 죄인을 먼 곳으로 추방하던 형벌로 이 때문에 제주도에는 300여명에 가까운 유배인들이 왔었다. 이들 가운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년)나,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년), 면암 최익현(崔益鉉, 1833~1906년) 등과 같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도 있었는가 하면 광해군(光海君, 1575~1641년) 같은 왕도 있었다. 이들은 고통과 좌절의 형벌인 유배를 몰입과 인간완성의 새로운 메카니즘으로 바꿔놓은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 유배는 실패나 낙오가 아니라 힐링과 재충전의 시간이었고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유배를 선비의 염치와 명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추사체’와 ‘세한도’를 완성해낼 수 있었으며 정헌 조정철(趙貞喆, 1751~1831년)은 20여년 넘게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한 여인과 절절한 사랑을 하고 그 많은 시들을 남길 수 있었다.


이제 제주도는 유배지가 아니다. 제주도는 도시의 각박한 삶보다 가족과의 시간을 원하는 젊은 부부와 제2의 인생을 보내고자 하는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어메니티(amenity; 1980년대 말 심신의 쾌적함 혹은 그러한 환경을 찾는 경향을 일컫는 말)와 휴머니즘을 추구하려는 곳이다. 이런 기본 정신은 과거 조선시대 유배인들이 추구하던 힐링과 재충전의 메카니즘과 대동소이하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그러기에 제주도는 과거도, 현재도 힐링의 섬이다. 다만 이제 제주도의 힐링은 자발적 유배인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제주도에 유입된 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제주도가 달라지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힐링 때문에 제주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목하지 못한다면 이제 제주도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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