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산업구조 혁신"
「e경제정보리뷰」 2022-2호 좌담은 ‘탄소중립,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산업구조 혁신’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상고온, 폭우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국은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할수록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한다. 그렇다면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산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한 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 일시: 2022년 5월 12일 15:30~17:30
▶ 장소: 비즈허브 서울센터
▶ 참석자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 규제연구센터장(좌장)
문진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글로벌전략팀장
안윤기 포스코경영연구원 상무
오형나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1. Prologue: 탄소중립 개념 및 선언 배경
양용현: 탄소중립이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제거하여 실질적인 배출량이 0(Zero)이 되도록 하는 개념입니다. 이상고온, 폭우 등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EU, 영국, 미국 등 주요국은 탄소중립을 선언했지요. 우리나라도 글로벌 패러다임에 발맞춰 2020년 10월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2021년 10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NDC 상향안’을 심의·의결했습니다. 오늘은 탄소중립의 다양한 주제 중 지속 가능한 성장과 산업구조 혁신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눠 논의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제언으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 탄소중립 선언 가속화"
#2. 탄소중립과 지속 가능한 성장
양용현: 첫 번째 주제는 탄소중립과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할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합니다.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과연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영국,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는 탈동조화(Decoupling)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어떠한 특징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오형나: 탈동조화에 성과를 보이는 대표적인 곳은 유럽연합(EU)입니다. 구체적으로 1990~2018년 동안 경제가 61% 성장한 반면 온실가스 배출은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죠.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동시에 가능하게 한 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우선 행태 변화, 즉 소위 말하는 소비전략이나 패턴의 변화에 의한 기여는 미미한 수준이고요. 대부분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부문에서의 혁신과 에너지 효율성 제고, 두 가지 효과의 결합으로 보입니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경우, EU 내 에너지망 통합 운영을 통해 재생에너지가 가진 문제점을 극복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재생에너지는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간헐성과 불안정성이 큰 편입니다. 자연적인 조건이 다양할수록 이에 대한 보완성이 커지는데, EU는 에너지망을 통합 운영함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죠.
"EU의 탈동조화, 에너지 부문의 혁신과 효율성 제고를 통해 달성"
조홍종: 강한 탈동조화 단계를 달성했다고 평가되는 영국과 독일의 사례를 보면 그 원인이 국가별로 다릅니다. 영국의 경우 산업구조 자체를 탄소집약도가 높은 제조업에서 탄소집약도가 낮은 서비스업 기반으로 전환한 요인이 큽니다. 영국의 제조업 비중(명목 부가가치 기준, UN: National Accounts Main Aggregates Database)은 1970년대에 20%대였으나, 2020년에는 9.6%에 불과합니다. 서비스업 비중은 2020년 기준 80.5%에 이릅니다. 반면 독일의 경우 제조업 비중은 비슷하게 유지하되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한 영향이 컸습니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과거 식민지를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 등을 풍부하게 쓸 수 있었고, 북해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많이 나왔습니다. 그와 달리 독일은 방대한 식민지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했고, 화석연료를 원활하게 구입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빨랐던 것이죠.
"탈동조화의 원인은 국가별로 상이"
양용현: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네요. 탄소집약도가 낮은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변경하거나,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부문에서의 혁신과 에너지 효율성 제고를 통해 달성한 것으로요. 실제 산업 현장에 계시는 안윤기 상무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탈동조화 달성 국가의 특징 ①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 변경, ②에너지 부문의 혁신"
안윤기: 유럽 국가에서 탈동조화를 달성했다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은 일찍 산업화에 성공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충분히 한 후에 산업구조를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기반으로 바꾼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유럽 내 많은 탄소 다배출 기업들이 해외로 나갔습니다. 일례로 철강업계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한 기업은 탄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유럽에서 인도로 일부 이전합니다. 즉, 유럽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양이 40%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중 10%p를 인도로 옮긴 것이죠. 결국 탈동조화는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전 세계적 탈동조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오형나: EU의 탈동조화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 기후변화협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1997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서 주요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규정하였죠. 그때 미국, 일본 등은 잘 지키지 않았지만, EU는 가장 근접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안윤기 상무님이 말씀하신 대로 EU 역내에 있던 기업들, 특히 다배출 업종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통계적으로도 이를 증명하고 있는데요. 무역에 내재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면, 소비기반 배출량이 생산기반 배출량보다 크고 그 간격이 교토의정서 이후 더 커집니다. 이것은 EU 역내에 있던 다배출 공장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EU 내 소비가 수입으로 충당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EU의 탈동조화는 비 EU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게 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탈동조화의 이면을 바라본 것이고, 표면상으로 탈동조화를 달성한 것은 맞습니다. 경제성장은 여전히 이루어지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하고 있으니까요.
"EU 탈동조화의 양면성, 역외 국가들의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양용현: EU에서의 탈동조화는 선도자(First Mover)로서의 장점도 작용했던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지만 GDP(국내총생산) 증가보다는 작은 약한 탈동조화 단계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조홍종: 탈동조화에 성공한 나라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재생에너지 등 에너지 부문에서의 혁신이었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리적 특성상 유럽 국가들보다 재생에너지의 여건이 좋지 못합니다. 첫 번째 해상 풍력 같은 경우, 우리나라는 연평균 풍속이 7m/s인 데 반해 유럽 북해는 10m/s 정도 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풍력 발전효율은 유럽보다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태양광의 경우, 우리나라는 시간대가 하나지만, 러시아 등 유럽은 시간대가 여러 개며 특히 그리드(grid)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평균 하루 3.5시간 정도만 태양광 발전으로 할 수 있고, 나머지 20.5시간에 대한 백업 전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배터리 기반의 에너지 저장장치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비용 부담도 커지게 되죠. 재생에너지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탈동조화는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보에 불리한 여건, 탈동조화 쉽지 않아"
문진영: EU의 탈동조화는 화석연료를 원하는 대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EU는 석탄과 석유의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의 공급이 안정화될 때까지 천연가스의 비중을 늘려간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천연가스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면서 기존 계획대로 진행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탈동조화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탈동조화 더욱 어렵게 해"
오형나: 저탄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생산라인, 에너지 시스템 등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갑자기 떨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약간 정체되면서 증가와 감소를 반복하다 저감이 시작된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후발주자인 우리가 전자가 했던 경험을 배워 쫓아간다고 하더라도 2030년 감축목표와 같은 온실가스의 급격한 감소를 이루기는 어려울 겁니다. 따라서 단기에는 서로 트레이드 오프(trade-off)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경제성장과 탄소중립 양립을 위한 장기적 전략 필요"
양용현: 우리나라가 경제성장과 탄소중립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요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오형나: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부족, 재생에너지 확보에 불리한 자연환경적 요인 등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2030년 이후의 변화, 즉 2050년까지 필요한 기술에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기술의 절반 이상이 현재 개발되지 않았거나, 아직 데모 단계입니다. 대부분 제조업 부문에 집중된 기술들인데요. 2030년 이후에는 저탄소 제품·서비스 시장이 열릴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반의 에너지 부문에서는 우리나라가 후발주자이지만, 뒷부분에 열리는 레이스에서는 후발주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장기적으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들, 특히 제조업 부문의 기술에서 따라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됩니다.
"2030년 이후 필요한 기술 개발, 경제성장과 탄소중립 동시 달성의 열쇠"
조홍종: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높고, 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 또한 높습니다.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은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정부는 이를 최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과정을 찾고, 각 시점마다 이행전략이 서 있어야 합니다. 친환경 신기술 투자를 통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 최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경로 모색해야"
안윤기: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탄소중립 달성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어떻게 하겠다는 논의보다는 온실가스 감축만을 강조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EU에서는 그린딜(Green Deal)하의 신산업 전략으로 탄소중립과 순환자원을 활용하고 있을 뿐, 탄소중립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즉, 탄소중립이라는 수단을 새로운 성장 전략 내지는 새로운 산업 전략으로 쓰고 있는 겁니다. 온실가스 감축에만 집중한다면 세계적인 탄소중립에는 이바지할 수 있겠지만 미래 경쟁력 측면에서는 뒤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탄소중립·자원순환 제품 및 기술 등에 기반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탄소중립·자원순환 제품 및 기술 등에 기반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 마련"
#3. 탄소중립과 산업구조 혁신
양용현: 이제 두 번째 이슈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우리나라 전체 배출의 35.8%, 간접 배출을 포함하면 54.0%로 그 비중이 큽니다. 따라서 탄소중립으로의 이행은 산업부문에 장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산업부문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합니다.
오형나: 우리나라 산업부문의 온실가스 배출은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14.5%, 2050년까지 80.4%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문과 비교해서 낮은 수준인데요. 그만큼 탄소중립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그렇다면 산업부문에서 탄소중립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1차 금속(철강 등), 석유화학 등 고탄소 업종이 여전히 미래의 성장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추세라면 이 업종들의 수요는 2050년까지 현재보다 14%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철강, 알루미늄, 암모니아, 플라스틱 등 고탄소 소재들은 디지털로 대표되는 Modern Economy의 핵심 소재이고, 심지어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데에도 필요하거든요. 즉, 시장이 점점 증가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면 온실가스의 양은 지금보다 증가하겠죠. 따라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산업부문에서의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내연기관차를 전기·수소차로 바꾸는 등 주력제품의 변화, 철강생산 시 석탄 대신 수소를 쓰는 등 생산공정의 변화, 플라스틱 대신 바이오 소재를 사용하는 등 원료의 대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탄소중립, 주력제품·생산공정의 변화, 원료의 대체 등 산업부문 변화 야기"
안윤기: 철강산업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9%, 산업부문 내에서도 38.8%를 차지하는 고배출 업종입니다. 철강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하기 위해서는 공정상의 대변화가 필요합니다. 철강은 철광석을 원료로 하는 고로 방식과 고철을 원료로 하는 전기로 방식에 의해 생산됩니다. 고로 방식은 우리나라의 철강생산의 약 70%, 전기로 방식은 약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로 방식의 경우, 철강을 생산하기 위해 석탄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게 됩니다. 철광석의 화학구조는 Fe₂O₃로 철강(Fe)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소(O)를 제거해야 하죠. 이를 위해 석탄(C)을 넣으면 다량의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하게 됩니다. 반면 산소(O)를 제거하기 위해 수소(H₂)를 넣으면 이산화탄소(CO₂) 대신 물(H₂O)이 배출됩니다. ‘수소환원제철법’이라고 불리는 이 방법을 사용하면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도 철강을 생산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참고로 이 기술은 아직 개발 초기 단계에 불과하며, 포스코의 경우 전환비용이 수십조 원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은 공정의 전환 등 산업 대전환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탄소중립, 공정의 전환 등 산업 대전환"
양용현: 탄소중립 이행으로 산업부문에서 주력제품의 변화, 생산공정의 전환, 원료의 대체 등이 예상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무역에서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산업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 도입 논의 본격화 등 환경 규제 강화가 우리 무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문진영: EU의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이란, 탄소배출 규제가 낮은 국가에서 생산된 상품을 수입할 때 규제 격차에 따른 가격 차이를 보전하여 탄소누출(Carbon Leakage) 및 산업경쟁력 악화를 방지하겠다는 제도입니다. 즉, 수입 상품에 내재된 탄소에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겁니다. 2019년 12월 유럽 그린딜에 포함된 이후, 2021년 7월 CBAM 입법 초안이 공개되었습니다. 입법 초안에 따르면 적용 대상 품목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및 전기입니다. 철강 부문에 탄소국경조정이 반영될 경우,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더 많은 개도국에 비해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으나 국내 철강의 대EU 수출에는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CBAM 철강 부문에 적용 시··· 대EU 수출에 부정적 영향"
안윤기: 수출 지향적인 산업구조에서 탄소 규제 강화는 기업의 비용 증가로 연결되는 것은 사실이죠. 예컨대 철강 제품으로 한정해 보면, 우리나라가 기타 국가들보다 품질 면에서 우수합니다. 이에 탄소국경조정제 도입 시 EU 역외 국가들끼리의 경쟁에서는 앞설 수 있습니다. 단, 역내 국가와의 경쟁에서는 비용 상승으로 인해 경쟁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탄소 함유량을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품별 배출 계수를 찾고, 그것을 바탕으로 비용이 계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우리가 선점해야 합니다.
"탄소 규제 강화, 기업 비용 증가"
양용현: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가 최근에 CBAM 적용에 따른 국가별 철강 가격 상승률을 분석한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보고서를 봤습니다. 국가별 탄소집약도에 따라 가격 상승률이 달랐는데요. 우리나라는 12.0% 상승한 반면, 인도는 32.0%, 러시아는 26.0%, 중국은 17.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가 인도, 중국 등 경쟁국보다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CBAM 적용 시, 국가별 탄소집약도에 따라 가격 상승률 상이"
문진영: CBAM이 무역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CBAM 적용 대상인 업종의 경우, 당장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EU 역외 다른 국가들과의 비교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 상승률로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CBAM의 적용 대상 품목을 중간재로 사용하는 산업의 경우, 오히려 EU 역내 기업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중간재의 가격이 오르니 완제품의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해지는 거죠. 따라서 CBAM 등의 환경 규제 강화는 우리나라에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CABM 등 환경 규제 강화가 무역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
양용현: 지금까지 탄소중립이 산업·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습니다. 우리나라는 철강(6위), 석유화학(4위), 반도체(2위) 등 다양한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저탄소 산업구조로 전환 또는 혁신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조홍종: 에너지 공급 및 가격이 안정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적인 산업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저탄소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공급 및 가격이 안정화되어 있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첫째, 에너지에 대해 적정 요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이는 소비자에게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을 유도하고, 나아가 전기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둘째, 해외자원개발 투자를 통해 광물자원 공급망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광물자원은 신재생에너지 및 전기자동차의 핵심 원료로 쓰이는데, 최근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광물자원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리튬의 경우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전년동기 대비 거의 500% 상승했는데요. 전 세계 리튬 채굴의 약 50%를 차지하는 중국은 자국 내보다는 호주, 칠레 등 해외 리튬 광산 투자를 통한 생산량이 더 많습니다. 일찍이 공급망 확보에 나선 결과이지요. 셋째,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개발이 필요합니다. 화석연료를 어느 정도 사용하기 위해서는 CCUS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국내에 대규모 이산화탄소(CO₂) 저장소를 찾기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해외 저장소(가스전, 폐유전 등)도 확보해야 합니다.
"에너지 공급 및 가격 안정화 필수"
오형나: 저는 정부의 산업정책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탄소 전환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산업부문은 통합 시스템 구조로 되어 있어 어느 한 부문만 바꿀 수 없다는 점입니다. 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하고, 동시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여러 방면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하여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철강산업에 수소환원제철 등과 같은 저탄소 전환의 핵심 기술을 도입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탄소 가격을 높이는 겁니다. 그런데 탄소 가격을 높이면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경쟁력을 잃을 수가 있죠. 이때는 저탄소 전환과 경쟁력을 동시에 고려해 탄소차액계약이나 보조금 지급 등 핀셋형 탄소가격정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탄소 전환, 전체 시스템 변화 필요··· 정부의 산업정책이 가장 효과적"
안윤기: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기술혁신이 어우러져야 합니다. 경쟁력이란 결국 차별화와 원가 아니겠습니까? 이 부분은 정부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됩니다. 오형나 교수님 말씀대로 원가 부분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기업 또한 기술혁신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포스코의 경우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상용화를 목표로 설정했다면, 이를 위해 매진해야겠죠. 물론 그 과정에서 R&D, 금융·세제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부정책과 기업 기술혁신의 조화 필요"
양용현: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저탄소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 기업의 기술혁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의 산업정책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추가로 저탄소 산업구조로의 이행과 디지털 전환의 관계에 대해 여쭙고자 합니다. 주요국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를 저탄소 산업구조로 이행하는 데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화로 다량의 전기가 소비되고, 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존재합니다. 과연 디지털 전환은 탄소중립에 어떤 역할을 할까요?
오형나: 일단 전 세계적인 논의는 디지털 전환으로 전력 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를 보면, 2018년에는 전 세계 전력 수요의 1%에 해당하는 규모였으나, 연구자 중에는 2030년이 되면 전체 전력 수요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이 수치만 본다면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은 상충관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ICT는 에너지의 생산·소비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감소시키는 등 탄소중립에 이바지하는 면이 있습니다. 국내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해 본 결과, 제조업 부문에 ICT가 활용되면 전력을 제외한 나머지 에너지 소비의 집약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전력 소비가 늘어나는 것만큼 온실가스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됩니다.
"ICT 활용, 에너지 소비 집약도 낮춰"
조홍종: 에너지 부문에서 ICT는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 기반한 분산형 전원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분산형 전원이란 전통적 대형 발전소 위주의 전력 수요·공급 시스템이 아니라, 전력 수요가 있는 지역 인근에 소규모 발전 설비를 분산하여 설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전력망이 지역 단위로 분산되면 전체 전력수급을 파악하기 어려워지는 단점이 있죠. 이에 ICT를 활용하여 하나의 발전소처럼 통합 운영하는 시스템인 VPP(Virtual Power Plant, 가상발전소)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분산형 전원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최적의 운영 방안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즉, ICT는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를 위한 핵심 수단이 될 것입니다.
"ICT,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의 핵심 수단"
안윤기: 제조 현장에서 AI, 빅데이터 등 ICT는 에너지 효율을 높여 온실가스를 저감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포스코의 탄소중립 실행 전략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는데요. 2020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포스코는 단기적으로 ICT에 기반한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중장기적으로 CCUS, 수소환원제철법 등 기술 개발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ICT 기반 스마트팩토리, 제조 현장 에너지 효율성 제고"
#4. 한국의 비전: 정부의 역할 및 제언
양용현: 정부는 2020년 12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한 이후, 2021년 12월 ‘산업·에너지 탄소중립 대전환 비전과 전략’ 등 부문별 세부 전략을 세우면서 탄소중립을 위한 기틀 마련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나라 여건상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성공적인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제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윤기: 탄소중립은 산업의 대전환이고, 이에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CBAM 등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감축량 및 제품 탄소 내재량 등에 대한 검증 절차를 국제기준에 맞추고, 국제상호인정협정을 체결해 우리나라에서 받은 인증이 해외에서도 인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수소 등 청정에너지의 공급 계획이 명확하게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철강산업에서 구체적인 수소환원제철법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셋째, 순환자원 인프라를 조성해야 합니다. 이는 기업 단위에서 시작하기는 어려운 부문이므로, 정부가 나서서 생태계를 조성해 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부 부처 간 협업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계획은 환경부가 목표를 설정하되, 운영은 경제부처(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등 인프라 구축"
오형나: 우선 탄소와 관련된 경제외교(Economic Diplomacy)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U는 그린딜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를 만들겠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기후 대응에 선제적으로 룰 세팅(rule setting)을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경제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가 EU처럼 룰 세팅을 단독으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우리는 어떤 국가와 공조할 것인가가 관건이 됩니다. 신남방정책 등을 참고하여 탄소 관련 무역 시장에서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중소기업이 탄소중립에 대응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저탄소 전환은 산업생태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대응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타격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의 고유업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폐기물 수집, 운반, 처리 및 원료 재생업’의 경우, 전체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2019년 기준, 중소기업 기본통계)이 기업 수로는 99.8%, 매출액으로는 89.7%입니다. 대부분 중소기업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원 재활용 관련 분야가 중소기업 고유 업종처럼 보입니다. 물론 폐기물 수집, 운반, 분류, 오염 제거 등은 중소기업에서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새로운 대체 물질로 개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여서 대기업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플라스틱이나 배터리 재활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이는 글로벌 밸류체인상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 모델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소기업 지원책 마련 및 자원 재활용 분야 중소기업과 대기업 동반성장 모델 발굴"
문진영: 향후 경제환경은 더욱 블록화가 진행될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즉,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국가들끼리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들과는 성을 쌓는 구조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EU CBAM의 경우, 여러 조건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두 충당할 국가는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비슷한 입장에 있는 국가끼리 상호 간에 유예해 주고, 그렇지 못한 국가에 대해서는 완전히 진입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룰 세팅에 참여하고, 어느 국가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할 것입니다.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국제 공조 방안 모색"
조홍종: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향에서 모든 정책이 이뤄져야 합니다. 내부적으로는 기업의 R&D 투자에 대한 규제를 낮춰 미래산업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외부적으로는 무역과 관련된 여러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탄소 가격을 적정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탄소중립 관련 거버넌스는 환경만을 중요시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산업 육성과 경쟁력 확보라는 측면도 고려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잠재성장률 제고에 초점을 두고 정책 실행해야"
양용현: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산업의 경쟁력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오늘 주신 의견들이 향후 정책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상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문가 좌담회의 내용은 참석자 개인의 의견으로, KDI 및 각 참석자 소속기관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 내용을 보도하거나 인용할 경우에는 참석자명을 반드시 표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참고: 전문가 약력 ♦
양 용 현 (좌장)
•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규제연구센터장
•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자문단 위원
• 공정거래위원회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시장정책연구부장
문 진 영
•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 국제개발협력센터 글로벌전략팀장
• 한국환경경제학회 이사
• (전)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 (전)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안 윤 기
• 포스코경영연구원 상무
•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탄소중립산업전환위원회 위원
• 산업통상자원부/국가기술표준원/표준전략협의회 위원
• 국회기후변화포럼 이사회 위원
오 형 나
•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 겸임연구위원
• (전) Cornell대학교 Applied Economics & Management학과 겸임조교수
• (전) West Virginia University 경제학과 조교수
조 홍 종
•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 한국자원경제학회 부회장
• 에너지경제연구 편집위원장
• 전력거래소 전력비용평가실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