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경제정보 리뷰」 2021-2호 좌담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크게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체계 혁신, 디지털 헬스케어와 데이터 두 축으로 나눠서 논의했다. 전통적인 의료 영역이 AI, 빅데이터 등 기술 발전과 맞물리면서 헬스케어의 기존 플레이어(병원, 제약사, 의료기기 제조업체 등)와 새로운 플레이어(통신사, 테크기업, 스타트업)의 영역이 융합되고 혁신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 일시: 2021년 5월 27일 15:00~17:00
▶ 장소: 삼성동 디이그제큐티브센터(서울시)
▶ 참석자
류규하 좌장,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의료기기산업학과 교수, 삼성서울병원 기술사업화실장
김광준 연세의료원 중장기사업본부 단장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이사
신재원 에임매드 대표이사
이상윤 건강과 대안 책임연구원
한현욱 차의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정보의학교실 교수
#1. Prologue : 의료 패러다임의 전환과 디지털 헬스케어
류규하: 의료의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관리·환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진료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일반 헬스케어와 접목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새로운 예방·관리·환자 중심의 보건의료 패러다임 구축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으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논의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체계 혁신, 디지털 헬스케어와 데이터 두 축으로 나눠 진행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헬스케어의 미래에 대해서는 끝부분에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체계 혁신
류규하: 첫 번째 주제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체계 혁신입니다. 논의의 배경은, 기대 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이나 환자에 대한 진료가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건강수명 관리와 관련해 디지털 헬스케어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기 진단 및 질병치료 기술이 발달하고 있지만, 만성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의료비 부담은 가중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면서 의료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으로 디지털 헬스케어가 논의되고 있는데요, 여기서 논제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치료 중심’의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가 ‘예방 중심’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 기관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현재 의료기관에 근무하고 계시는 김광준 교수님과 한현욱 교수님의 의견을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의료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 고민”
김광준: ‘의료 패러다임이 예방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논의에 있어서 예방 중심이라는 개념이나 예방에 대한 접근방식은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즉, 1차 예방, 2차 예방, 3차 예방이 있다고 했을 때, 디지털 헬스케어는 1차 예방과 관련된 것이며, 이는 2차 및 3차 예방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만성질환자들에게 나타나는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될 경우,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은 기본적으로 진료영역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합니다. 또한 1차 예방이라고 하더라도 생활습관, 운동, 영양 등 관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안이 많습니다. 따라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진료 현장과 접목하여 연속성 있는 진료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예방에 대한 개념을 정리한 뒤, 예방 의료의 접근방식을 고민하는 의료진이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기업들과 협업하여 1차 예방에서부터 3차 예방까지 아우를 수 있는 컨센서스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진료 현장과 접목하는 것이 핵심”
류규하: 1차 예방이 생활습관 데이터를 관리하는 웰니스(wellness; 신체적ㆍ정신적ㆍ사회적으로 건강한 상태) 영역이라면, 2차 예방부터는 환자를 관리하는 의료영역이 되는데, 이러한 체계(frame)를 잘 구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생활습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서 의료진에게 컨설팅 받는 것과 관련해 논란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그에 따른 문제점을 잘 제시해 주신 것 같습니다. 한현욱 교수님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한현욱: 지금까지는 아프면 병원에 갔는데, 이제는 아프지 않아도 병원에서 뭔가를 해 주는 것이 결국은 예방 중심 의료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아프지 않게 만듦으로써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예방 중심 의학이라는 생각인 것이죠. 과거에는 의료 인프라와 진료를 위한 서비스 체계를 모두 갖춘 병원이라는 공간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병원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모델로 점차 바뀌어 갈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양한 생체신호나 유전체를 비롯한 데이터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건강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 활성화로 건강수명이 연장될 것”
류규하: 디지털 헬스케어가 예방 의료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참여자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의료 영역이 아닌 웰니스 단계에서도 질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역할이나 평소 건강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새로운 참여자가 등장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 전달 체계에서 의료 산업화 및 의료 정보화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 현재 업계에 계시는 송승재 대표님과 신재원 대표님의 말씀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승재: 의료 산업화는 의료 분야가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즉, 변화하는 의료서비스 내지는 사용자 경험의 수단이 의료 산업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 정보화와 관련해서는 전자의무기록(EMR)을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평가하는 분도 계시는데요. 하지만 EMR이 청구용 프로그램에 메모 기능을 더한 것이다 보니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서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EMR을 만들자는 주장 역시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의료 정보화와 관련해 의료인들이 진료를 하면서 데이터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 보상체계를 만들고, 그러한 보상체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진료비에 추가적인 수가(酬價)를 적용하는 등의 방안을 만들고, 이를 명확하게 설명하여 의료진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산업화는 의료 분야가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도구”
신재원: 의료체계 혁신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쟁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쟁점은 의료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여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용자들의 편의성을 제고하고 경험을 혁신하는 것입니다. 원격의료를 비롯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큰 방향성은 결국 현재 의료시스템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 합니다. 예를 들면, 의료시스템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현행 체계에는 다양한 사각지대가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혁신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가 도입되려면 결국은 보상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올해 건강검진에서 대사증후군을 진단받은 사람은 1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내년에도 똑같이 대사증후군으로 진단을 받거나 혹은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질병을 진단받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사증후군은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이 환자를 관리하는 데 따르는 보상이 없고, 그래서 질병으로 악화될 때까지 방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러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강보험 재정 고갈 우려 해소와 이용자 편의성 제고가 의료체계 혁신의 핵심”
류규하: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사실 디지털 헬스케어가 많이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의료비 절감, 의료의 질(quality) 제고, 환자의 편의성 향상 등의 목표를 갖고 디지털 헬스케어를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선진국들은 정부 주도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의료 사각지대는 공공의료의 성격을 갖고 있는 부분이다 보니, 정부 주도의 하향식 플랫폼 구축을 통해 문제를 많이 해결하고 있습니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의 ‘디지털 헬스케어 테스트베드’구축이 대표적입니다.
한편, 디지털 헬스케어의 본격적인 의료 현장 도입은 원격의료 도입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경우 수혜자 간 격차 확대, 의료전달 체계의 왜곡이나 1차 의료의 붕괴와 같은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상윤 박사님께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진국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는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
이상윤: 저는 오늘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국민 입장에서는 현대 의료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첫째, 대사증후군을 비롯해 다양한 만성질환에 대해서 과연 현대 의료체계가 잘 관리하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전 세계적으로 의료비 지출이 너무 큰데, 과연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의사와 환자 간 권력 및 정보 비대칭성의 문제가 너무 크다는 겁니다. 의사가 너무 많은 권한과 정보를 갖고 있는 데 비해 환자들은 정보도 없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도 별로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의료의 대형화로 인해 오히려 역설적으로 안전 문제나 의료의 질 저하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한 국민들의 개혁과 개선 요구가 굉장히 크고, 그런 맥락에서 디지털 헬스케어가 등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의 네 가지 이슈를 디지털 헬스케어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과장으로 인해 오히려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기존 의료체계에 대해 불만을 갖는 측면도 있지만, 기존 의료체계는 역사적으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다양한 규제와 안전보장 장치를 마련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헬스케어는 혁신을 강조하면서 기존의 안전과 관련된 빗장을 자꾸 해체하려고 하니까 그에 대해서도 국민의 불안과 불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기존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보완하면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준다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것입니다. 디지털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부분도 신경을 쓴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의료체계 개선 요구 크지만, 디지털 헬스케어만으로 해결은 불가능할 듯”
류규하: 이상윤 박사님께서는 국민 입장에서 이슈를 제기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나라는 의료쇼핑(건강보험 보험성 확대로 환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이 만연해 있다 보니 디지털 헬스케어가 도입되면 1차 의료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한현욱: 조금 과격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1차 의료는 이미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통과 매스미디어 발달로 우리나라 환자들은 대부분 3차 의료기관인 대형병원에 몰리고 있습니다. 1차 의료기관은 이미 힘든 상태이고, 이는 디지털 헬스케어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또한 디지털 헬스케어로 수혜자 간 격차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요. 이 역시 디지털 헬스케어와 무관하게 이미 수혜자 간 격차가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합니다. 오히려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체계를 조금 더 건전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누구나 건강에 대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누구나 건강에 대해 평등한 사회 구현”
류규하: 현재 우리 의료 전달체계에 개선할 점은 많겠지만, 이번에는 디지털 헬스케어를 어떻게 도입하면 의료 전달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스템을 원활하게 운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이나 미국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도입할 때 초진에 제한을 둬서 1차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는 초진을 볼 수 없게 했고, 진료 가능한 질환군에 대해서도 제재를 뒀습니다. 그런 사례가 좋은 방법일 수도 있겠지요.
신재원: 현재 의료체계는 누구나 붕괴되고 있다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이 좋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러한 장점이 남용되어 의료비 증가와 자원의 불필요한 소모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전달체계를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1차 의료기관에 오면 증상이 모호하기 때문에 의사도 100% 정확한 진단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한 환자는 소견서를 받아 바로 3차 의료기관으로 갑니다. 하지만 의사 대(對) 의사의 원격 진료가 합법이라는 점을 활용하면, 오히려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1차 의료기관이 붕괴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해 의료전달 체계를 복원할 방법을 모색해야”
류규하: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을 의료 현장에 도입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 의료전달체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은 상당히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송승재: 건강보험이 처음 설계될 때 인구구조가 피라미드 형태였다면 지금은 역(逆)피라미드 형태입니다. 어르신들이 훨씬 많아요. 또한 당시에는 건강보험이 헌법상의 건강권을 보장해 주기 위한 체계였다면, 지금은 국민들이 기존의 보험체계 안에서 보장되지 않은 것들까지 적극적인 케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건강보험 체계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헬스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보험체계를 수정한다는 전제를 갖고 움직여야만 의료인이 수용할 수 있고, 환자도 편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의료의 본질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단으로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기본적으로 정보통신(IT)에 근간을 두고 있는데, IT는 자원 재분배에 상당히 효율적인 수단입니다. 따라서 왜곡된 의료체계를 정상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구체적인 정책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상급종합병원에서는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원격진료를 활용할 수 있게 하거나, 1차 의료기관에서는 의사 면허번호당 처방건수, 처방건당 처방일수를 제한하는 등 세부 정책이 조율된 바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왜곡된 의료체계 정상화에 효율적 수단”
이상윤: 원격의료와 관련해서 1차 의료나 전달체계의 붕괴는 의사협회 등에서 더 관심이 많은 주제일 것입니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는 어디서든 안전하고 질 높은 의료를 받으면 좋지요. 오히려 원격진료와 관련해서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원격의료의 질이 담보가 되고 재현성(reproducibility)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현장에서 진료할 때는 의대 시절부터 훈련을 받은 덕분에 일정한 수준이 유지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하는 원격진료의 경우, 별도의 교육이나 훈련 없이 원격진료가 의료의 질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두 번째는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성(liability)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원격의료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기기회사에 있는지, 의사에게 있는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원격의료는 의료의 질 담보 여부와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관건”
류규하: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는 영상의학 분야나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의사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직까지 원격진료 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에 대한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정리가 된 뒤 도입이 본격적으로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디지털 헬스케어와 데이터
류규하: 이제부터는 두 번째 이슈에 대해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에서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슈가 제기됩니다. 과거처럼 EMR 등 임상데이터만 갖고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체 데이터, 개인생성건강데이터(PGHD) 등 새로운 개념의 데이터들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데이터들을 연계하고 결합해서 진료에 활용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다양한 데이터들이 적절하게 연계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송승재: 유전체 데이터는 단위 데이터의 가치는 높지만, 데이터의 생성 주기가 짧은 편은 아닙니다. 반면, PGHD 같은 경우는 꾸준히 만들어져야 하는 데이터지만, 단위 데이터 자체의 가치는 높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꾸준히 데이터가 쌓이고 결합이 될 수 있어야 가치를 가지는 데이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데이터가 결합될 수 있는 거버넌스와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임상데이터는 기본적으로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의료인이 진료를 하면서 PGHD를 사용한다고 하면, 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입니다. 이러한 기업들이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국민의 동의를 거쳐 의료기관으로 데이터가 이동할 수 있고, 그것을 의료인이 진료 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여기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상황 같습니다.
“데이터가 결합될 수 있는 거버넌스와 생태계 조성 필요”
신재원: 데이터가 연결되려면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과 병원, 정부기관이 연결되어 하나의 통합된 데이터를 만들어야 가치가 있는 것인데, 데이터가 모두 파편화되어 있으니 문제인 거죠. 제가 수십만 명 이상 어린이들의 체온과 관련된 PGHD 데이터를 갖고 있는데, 이 데이터가 가치를 발휘하려면 결국 소아과 진료에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소아과에서는 질 높은 진료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데이터의 가치도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이터를 연결하려면 모든 의료기관을 개별적으로 연결해야 해서 비용이 너무 높아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수익성이 없다 보니 투자를 받기도 힘들고요. 데이터는 생성 못지않게 연결이 중요한데, 이에 대한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은 자금이 풍부한 일부 대기업들만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대기업들이 의료 데이터에 대한 헤게모니를 모두 갖게 될 텐데, 과연 그것이 맞는 방향인지 의문입니다.
“데이터는 생성 못지않게 연결이 중요하므로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
류규하: 신재원 대표님의 말씀은 데이터를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의료기관이 PGHD를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과 진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 대해 김광준 교수님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광준: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 굉장히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지금 PGHD를 활용해서 환자를 진료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도움이 되는 것을 수치화해서 10이라고 했을 때, 의료진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은 100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100을 들여서 10이라는 부가가치를 창출했는데, 이 시간을 다른 데 투입하면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이렇듯 현재 시스템에서는 PGHD 데이터를 활용해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런 데이터를 편하게 쓸 수 있고 잘 활용할 수 있으려면 플랫폼이나 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소요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환자의 동의겠지요. 환자분들이 자신의 건강데이터에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병원에서 잘 활용해서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경제적인 보상도 없고 환자분들 또한 데이터 제공에 대해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병원 입장에서도 기회비용을 고려했을 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요. 다만 일부 대기업이 데이터 관련 사업을 독점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것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부나 민간에서 중소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현재 시스템에서 PGHD 데이터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는 낮은 편”
류규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공공의료 혁신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영국, 핀란드, 호주, 미국 등의 국가들이 있습니다. 제가 최근 주목한 프로그램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실시하는 ‘All of Us’입니다. 의료데이터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기업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비용이 들어서 국가가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All of Us’라는 프로그램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즉, 미국 정부 차원에서 미국 국민의 각종 의료데이터를 수집·통합·분석해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공공 시스템입니다. 그렇다면 아까 신재원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문제도 우리나라 정부 주도로 디지털 헬스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서 민간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송승재 대표님께서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 등 선진국은 디지털 헬스를 공공의료 혁신의 수단으로 사용”
송승재: 2018년 데이터 정책을 통해 마이데이터(My Data) 사업이 시작됐고, 대표적인 분야가 금융과 의료였습니다.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금융 분야에 비해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의료 분야도 몇 달 전 마이데이터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올해 예산이 투입되어 인프라가 만들어지고 나면 의료데이터 접근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을 통해 의료데이터 접근성도 개선될 것”
이상윤: 데이터를 활용해서 국민들에게 의료적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실제 데이터를 분석·처리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저장에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마이데이터 차원에서 개인이 갖고 있는 데이터를 조금씩 활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은 대기업이나 정부가 데이터 연계를 위한 시스템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운영하면 비효율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대기업이 운영하게 되면 독점이나 이익의 사유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최근 논의되는 것이 공적인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어서 책임성·투명성·신뢰를 담보하자는 것입니다.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국민의 자기결정권도 중요하지만, 그 데이터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목적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국민들에게 개별적인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쓸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런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적인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어서 투명성과 신뢰를 담보해야”
류규하: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어떻게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지가 핵심인 것 같습니다. 일방적인 정부 주도나 일방적인 민간 위임 모두 문제가 있으니 정부가 적절하게 개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부가 개방형 생태계를 구성하면 기업이나 의료기관이 참여해서 데이터를 활용하고,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된 부분은 법으로 적절하게 규제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데이터 활용이 조금 더 원활해질 것 같습니다.
한편, 최근 데이터 3법 개정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가명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됐습니다. 현행 우리 의료 시스템 아래에서 가명화,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과연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어떤 개선 방안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관계 구축이 데이터 활용의 핵심”
한현욱: 동형암호화(암호화된 상태의 데이터에 대한 연산을 복호화 과정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암호화 기법), 인증제 등 보안과 관련된 이슈는 상당히 많습니다. 재식별화 문제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를 통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식별화가 안될 정도로 익명성의 정도가 너무 높은 데이터는 데이터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정보 노출을 감행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익명성 수준과 의료 정보 가치 간 균형이 필요합니다. 규제와 관련해서 말씀드리자면, 병원에 있는 데이터는 크게 연구데이터와 진료데이터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연구데이터와 진료데이터가 혼용되어 있는데, 사안에 따라 생명윤리법과 의료법의 적용을 다르게 받습니다. 이렇듯 구분하기 어려운 후향적 데이터가 너무 많기 때문에 개별 사안에 따라 해석과 관련한 상당히 많은 논의가 필요하고, 규제 이슈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게 필요합니다. 일괄적으로 규제 이슈를 해결하려면 영원히 해결이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안전성에 크게 문제가 없는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분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해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대기업으로 데이터가 넘어가서 분석되는 환경이 조성될지 여부는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현재 환경에서는 대형병원들이 데이터에 관한 가장 중요한 참여자이고, 실제로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데이터는 각 의료기관에 많이 쌓여 있지만, 이것을 실제로 분석해서 서비스를 만들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따라서 데이터 활용을 할 수 있는 연구인력 양성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정보의 익명성 수준과 의료 정보 가치 간에는 균형이 필요”
류규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가명 처리의 정도가 너무 커지면 의료적 가치는 사실 없어지기 때문에 어디까지 규제를 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데이터를 잘못 활용하면 패널티를 강하게 부여합니다. 그런 제도를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활용 목적과 상황에 맞게 가명 처리의 기준을 차등화 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송승재: 의료 분야는 기존에도 생명윤리법에 따라 목적에 기반한 가명화와 익명화를 통해 데이터를 사용해 왔습니다. 즉, 의료 분야는 금융 분야와는 달리 이미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의료 분야에서 청구와 관련해서는 이미 표준화가 정말 잘되어 있습니다. 결국 데이터 표준화를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병원들이 비용을 내더라도 시스템을 만들어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데이터 표준화를 해야 할 필요성을 정부가 만들어야 하고, 그에 대한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분야는 생명윤리법에 의거해 데이터 사용”
류규하: 중요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서, 가명화되고 비식별화된 데이터의 활용과 관련해서 일반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한 경험이 있는 신재원 대표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신재원: 금융 분야는 데이터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지만, 의료 분야의 데이터 활용은 그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결국 일반 국민이 의료 데이터 활용을 신뢰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데 달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려면 서비스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금융 데이터는 활발하게 이용되면서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의료 분야는 금융 분야보다 더 민감한 정보이기도 하지만, 데이터를 활용해서 나오는 서비스가 없습니다. 그런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지가 하나의 화두이고, 이와 관련해서 병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데이터 접근성과 관련해서 병원이 가장 큰 헤게모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에 어느 정도 인센티브를 줘야 할 것입니다. 의료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환자가 권리를 갖고 있지만 진료 과정을 통해 병원도 일부 권리를 갖고 있으므로, 병원이 데이터 권리와 관련해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형병원이 개별적으로 갖고 있는 데이터의 양이 많기 때문에 굳이 다른 병원과 교류할 필요성이 없고, 그러다 보니 데이터가 한 곳으로 모이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대기업들은 대형병원과 연계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은 데이터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고, 다양한 참여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해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줄어듭니다. 이런 이유로 데이터 접근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국민이 의료 데이터 활용을 신뢰하는 것이 관건”
류규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한현욱 교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실까요?
한현욱: 사실 지금도 병원,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있는 데이터들은 모두 분석되고 있습니다. 물론 IRB(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나 연구윤리를 잘 지키겠다는 서약을 한 상태에서 분석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이터 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환자들도 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데이터 개방형 생태계가 이뤄지면서 환자들이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분석되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사실 신뢰를 담보하려면 개인의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개인의 데이터가 분석됐다면 개인에게 고시해야 하고, 개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데이터 분석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데이터가 개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합니다. 하나는 데이터 개방으로 의료 서비스를 발전하는 방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를 지킬 수 있는 방향인데, 이 두 가지 방향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정보를 제공한 사람에 대해서는 특정한 권한 부여, 콘텐츠 소비 기회, 의료비용 보전 등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데이터 개방과 개인 데이터 보호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함.”
신재원: 한현욱 교수님 말씀에서 한발 더 나아가면 결국 개인이 자신의 데이터에 대해 권리를 갖고 이를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보안 등을 고려해서 블록체인 도입 여부 등을 논의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의료 데이터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데이터를 거래하는 시스템이 필요”
류규하: 지금까지 국민이나 의료기관 입장에서 의료 데이터 제공과 관련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국민과 기업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데이터 활용법이 있을까요? 기업이 투자해서 솔루션을 공급하지 않으면 이런 서비스가 불가능할 텐데, 이런 부분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신재원: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으려면 데이터의 가치를 매겨서 데이터가 순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예컨대 병원이 데이터를 갖고 있다면 병원에서 환자가 본인의 데이터를 다운받을 때는 돈을 냅니다. 이때 병원은 데이터 용량 등에 따라 차등해서 돈을 지불하게 하면서 수익을 창출합니다. 환자는 연구기관에 자신의 데이터를 기부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그러면 연구기관이나 기업은 그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솔루션을 만들어서 다시 병원이나 환자에게 팔게 됩니다.
“데이터가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모두에게 이익”
류규하: 데이터의 순환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좋은 의견입니다.
송승재: 황우석 사태 이후 생명윤리법이 강화되면서 병원은 진료할 때 일종의 포괄적 동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용으로 데이터를 활용할 때는 환자들이 데이터 사용에 대해 이미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법적인 이슈가 없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을 가입할 때 우리가 데이터 사용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은 없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우리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도 없습니다. 개인의 개별 체온 데이터는 가치가 높지 않을 수 있지만, 희귀 난치병이나 특수한 암과 같은 데이터는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서 보상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서 상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모두의 이익이라고 판단하기에 기업은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을 통해 병원이나 환자에게 기여하는 것이고, 병원도 생명윤리법을 통해 환자에게 사례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의료 분야의 데이터는 모두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의료 데이터를 활용해서 상품이 만들어지면 모두에게 이익”
이상윤: 국민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데이터 오너십(Data Ownership)은 약간 예민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개인이 데이터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있지만, 자기 데이터로 상업적 이득을 취할 권리까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기(臟器)처럼 내 소유이기는 하지만,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상업적으로 거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렇듯 데이터 오너십과 관련해 개인이 자기 데이터를 마음대로 거래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의료 정보 이용과 관련한 프라이버시 이슈입니다. 개인의 의료 데이터 사용에 있어서 무슨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데이터를 쓰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민감한 데이터이지만,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해 사용한다면 대부분의 국민은 데이터 사용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데이터 사용과 관련된 거버넌스 체계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데이터 활용의 목적을 평가할 주체도 없습니다. 연구데이터는 IRB 시스템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국민들이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공익적 목적에서 보편적 다수에게 수익이 돌아간다는 것이 명확하고, 신뢰성과 책임성을 갖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거버넌스 체계가 만들어진다면 국민들이 데이터 사용을 크게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데이터 오너십은 데이터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프라이버시 이슈가 관건”
#4. 헬스케어의 미래
류규하: 데이터 활용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복지부가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에서 IRB 외에도 데이터심의위원회를 별도로 두도록 해서 조금 더 강화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디지털 헬스케어가 사회적 가치 형성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광준: 디지털 헬스케어는 당연히 사회적 가치 형성에 기여합니다. 만성질환뿐 아니라 고령층 환자들도 디지털 헬스케어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지요. 고령층의 경우 실제로 거동이 어려워 병원에 오기 힘든 경우가 많고,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의사소통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창출되는 데이터나 PGHD 데이터를 통해 생성되는 데이터가 진료 데이터와 결합될 경우 그분들의 상태를 훨씬 더 잘 파악해서 치료할 수 있습니다. 만성질환의 경우는 혜택이 더욱 큽니다. 당뇨병도 병원에서 실시하는 혈액검사에 더해 연속혈당측정기(CGMS)를 사용하여 평소 혈당이 어떻게 조절되고, 어떤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했을 때 혈당 상태가 어떤지를 살펴보면 진료할 때 더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비용이나 편의성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는데, 이의 확산은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만성질환자 및 고령자에게 비용과 편의성 측면에서 도움"
류규하: 이와 관련해서 얼마 전 보건복지부에서 원격 모니터링이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유권해석이 있었습니다. 모니터링은 데이터 패턴이 정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으니 내원하기 바란다는 정도의 코멘트인 데 반해 진료는 특정 질병이라고 진단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복지부가 모니터링에 대해 행위수가를 일부 주기 시작했습니다. 김광준 교수님께서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등에게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만족도를 높여 사회적 가치를 형성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역량을 점검하고 안전 관련 규제는 존중해야”
김광준: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환자의 경우 건강이나 편의성이 좋아질 것입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비용 관련 우려가 있겠지만, 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축적되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와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노력에 대한 것입니다. 예컨대 당뇨병 환자의 경우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게 되면 환자들 혈당수치 데이터가 5분마다 들어옵니다. 의료진이 5분마다 들어오는 혈당수치 데이터를 보면서 관리해 주면 환자 상태는 분명히 좋아지는데, 한 사람의 혈당조절을 의사 한 명이 이렇게 전담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인공지능(AI)이 도입되거나 한 명의 의료진이 100명의 환자를 동시에 보는 것이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디지털 헬스케어가 가치를 제공하면 그 가치를 몸으로 느낀 환자는 본인의 데이터를 공유할 것이고,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업도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가명화,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제공하지 못하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서비스는 결국 도태될 것인데, 서비스를 만드는 것조차 못하는 것은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시작조차 못하는 것은 문제”
류규하: 환자의 편의성이나 이익,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좋은 플랫폼을 갖추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헬스케어로 의료혁신이 일어난다고 할 때, 의료의 공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 기업, 국민들 간에 어떤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상윤: 전체 국민에게 디지털 헬스케어의 편익이 있다면, 국민 입장에서는 당연히 디지털 헬스케어에 기대를 걸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한 거품이 너무 많습니다. 우선 디지털 헬스케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디지털 헬스케어라고 할지라도 안전과 관련된 기존 규제는 존중해야 합니다. 아울러 디지털 헬스케어와 관련한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어서 사회적 합의의 범위 내에서 접근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류규하: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보건의료의 공공적인 측면과 산업적인 측면이 있는데, 이런 두 가지 측면이 양립하고 상생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송승재 대표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송승재: 보건의료는 규제를 통해서 제도권으로 편입할 수 있는 상당히 독특한 규제산업 분야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 디지털 치료제에 대한 규제가 만들어졌는데, 규제 덕분에 디지털 치료제가 제도권에서 다뤄질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처럼 규제는 긍정적인 규제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규제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규제는 이해관계자들이 빠르게 준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지 않은 규제는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긍정적 규제는 준용하고 부정적 규제는 개선해야”
신재원: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공공적인 측면과 산업적인 측면에 양립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시선은, 그동안 거시담론적인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작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보다 보상을 많이 받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정부는 현실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중소기업이나 벤처들에 인센티브를 주거나 공공성에 대한 평가를 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필요”
한현욱: 의료기관이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은 공적인 영역일까요? 아니면 사적인 영역일까요? 개인이 비용을 지불한다는 측면에서는 사적인 영역인 것 같지만, 국가에서 보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공적인 영역 같은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사기부터 거즈에 이르는 의료기기는 95%가 외국산입니다. 미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의료기기를 산업적인 측면에서 육성했는데, 우리나라는 그것을 공적인 측면에서 서비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의료는 공적인 의료체계든 사적인 의료체계든 보험기관의 중재로 인해 만들어진 생태계입니다. 공공의 실제 목표는 국민을 건강하게 만들고 의료비를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양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동안 의료의 공적인 측면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의료의 공적인 측면 뿐 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이상윤: 의료는 의료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해서 사람들이 건강해지면 그것이 공공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의사의 진료로 끝났다면, 지금은 병원에서 다양한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납품받고 있으며 병원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한 전산망도 구축하는 등 여러 산업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제약이나 의료기기는 효과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에 기여했고 수익성도 있는데, 디지털 헬스케어는 아직 성공 모델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건강보험에서 평가하는 기준에 맞는 효과적이고 건강에 도움이 되며 안전한 서비스를 만들어 내면 당연히 양립 가능할 것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제약이나 의료기기와 달리 아직 성공 모델이 부재”
류규하: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미래유망 혁신의료기술이 임상적 유효성 검증자료는 충분하지 않더라도 잠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혁신의료기술 별도평가트랙’이라는 새로운 제도에 따라 심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신의료기술이 완벽하게 안전하고 유효하면 가장 좋겠지만, 진료 대안이 없는 신의료기술에 대해서는 잠재적 가치를 부가적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가 생긴 것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은 이런 기회를 통해 서비스 출시가 가능해지고, 국민들은 더욱 안전하고 좋은 서비스를 받게 되고, 의료기관도 그런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유망 혁신의료 기술은 잠재적 가치 인정하는 새로운 평가트랙에 의해 심사”
오늘 좌담회에 참석하신 패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만족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노력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의견을 개진하여 시스템을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긴 시간 동안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전문가 좌담회의 내용은 참석자 개인의 의견으로 KDI 및 각 참석자 소속기관의 공식 견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 내용을 보도하거나 인용할 경우에는 참석자명을 반드시 표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