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처럼 딱 붙어 있어야지.” 직장인의 대화에 종종 등장하는 말이 이끼다. 이끼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한 자리에 오래 머물며 묵묵히 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알면 이끼를 크게 오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끼는 황폐해진 토양을 비옥한 땅으로 되살리는 효과가 있어서 해외는 물론 우주적 차원에서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 꿈의 재료로 주목받고 있다.
2021년 창업한 코드오브네이처는 독자적인 이끼 배양액을 활용해 토양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이끼 성분을 땅에 뿌리고 관리해 모래나 자갈밭이던 곳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끼의 위상을 이렇게 올려놓은 박재홍 코드오브네이처 대표가 무궁무진한 이끼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끼는 그늘지고 습한 곳에만 살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품종도 서식지도 다양하다. 일례로 지붕빨간이끼는 햇빛이 강하고 건조한 지붕 같은 곳에도 잘 서식한다. 박 대표가 10대 시절 시골의 친척 집 지붕에서 만난 것도 ‘조용하지만 끈질긴’ 지붕빨간 이끼였다.
열분해, 화학물질 사용 없이
이끼·미생물배양액·영양공급액 살포해 토양 복원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청년에게 대학은 창업을 꿈꾸게 하는 무대였다. 우연히 교내에 붙어 있던 창업 공모전 포스터를 본 그는 상금 500만 원과 아르바이트 시간을 비교해 봤다. 아르바이트하지 않고 공모전을 준비해 상금을 받으면 8,720원이던 당시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주 5일 7개월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받으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공인 식물생명과학에 기반해 이끼를 응용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고 국내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공모전에 출전했다. 여러 차례 수상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모전 심사위원이었던 한 벤처캐피털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대회만 나갈 게 아니라 투자를 받아 실제 사업화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이 박 대표를 움직였다. 당시 취업, 대학원 진학, 창업의 갈림길에 있었는데 창업이 가능할 것 같았다. 2021년 창업했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기존의 토양 복원은 열을 가해 오염물질을 분리하거나 화학물질로 씻어내는 방식이 주류였다. 코드오브네이처는 다르게 접근했다. 생태적 복원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박 대표와 동료 연구자들은 이끼 포자 배양액, 미생물액과 영양공급액을 결합해 토양 복원키트 ‘모스비’를 개발했다. 이 용액을 일정 비율로 희석해 드론 등으로 공중에서 살포한다. 이끼가 뿌리내리면서 토양 내 탄소와 유기화합물의 양이 늘어난다. 이렇게 땅의 생명력이 점차 회복되면 황폐했던 땅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친환경적이고 비용도 저렴하다. 프로젝트는 대개 1년 단위이며 생육이 제한적인 겨울을 제외한 봄부터 늦가을까지 집중 실시한다.
이 방식은 즉각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눈길을 끌었다. 제주에 차밭과 카페를 운영하는 아모레퍼시픽은 제주의 유명 관광지이면서 토양 복원이 필요한 도너리 오름을 살리기 위해 코드오브네이처와 손잡았다. 코드오브네이처는 충남 태안군 ‘정주영 간척지’의 토양 복원 사업에도 참여했다. 지난 7월에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카카오가 제주의 환경 문제를 해결할 ‘2025 J 임팩트 이노베이션’ 스타트업 3개 사를 선정했는데, 거기에도 이름을 올렸다. 코드오브네이처의 기술로 제주도 등과 협력해 휴식년제에 들어가는 오름의 복원을 추진한다. 박 대표가 중책을 맡은 곳은 절대보전지역인 송악산이다. 이번 복원은 그 과정도 특별하다. 복원에 쓸 이끼는 제주 현지의 품종을 사용하고, 미생물 또한 제주에 있는 것을 배양해 활용한다. 배양 과정에는 제주의 미래인 지역 고등학생들이 실험·실습으로 참여하고 배양액을 송악산에 뿌리는 작업에까지 동참한다. 박 대표의 말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제주와 함께하는” 의미가 있다.
코드오브네이처는 중국, 호주 등 해외 진출에도 나섰다.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4에서는 해외 기업들이 관심을 보였다. 미국에서도 산불 등으로 사라진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나무를 심으려 하지만 새로 심은 나무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토양에 최소한의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이끼 배양액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끼 배양액 투입해 화성 땅에서 농사지을 수 있지 않을까?’
기술력에서 나온 우주 테라포밍 향한 이유 있는 자신감
코드오브네이처의 다음 무대는 아예 지구를 벗어난 우주다. 최근 글로벌 딥테크 산업계에서 AI와 함께 가장 각광 받는 게 우주산업이다. 그리고 생태 친화적이면서 효과가 확실한 토양 복원은 우주개발의 한 영역을 차지할 수 있다. 해외에선 이미 달이나 화성의 토양을 연구시설이나 거주시설로 옮긴 다음 농사를 짓는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이 화성기지에서 감자 재배를 시도한 것처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텍사스주 휴스턴의 존슨우주센터 내 모의화성 거주지 ‘마스 듄 알파’에 농작물 재배 시설을 갖추고 1년간 승무원에게 농작물 재배를 포함한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문제는 화성의 흙이 척박하다 못해 아예 생명이 살 수 없는 수준이란 점이다. 박 대표는 “영화 <마션>에서 보듯 화성에는 쓸만한 유기물이 없을 것”이라며, 여기에 이끼 배양액을 투입하면 최소한의 유기물 수준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해당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그와 동료들은 이 주제로 실증(PoC; Proof of Concept)하는 것은 물론, 이를 논문으로 작성해 해외 학술지 게재를 앞두고 있다. 박 대표는 스페이스 X 등의 우주탐사 프로젝트는 우주선 발사나 우주개발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게 핵심 과제이며, 지구에서 식량을 쏘아 올리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니 현지 생산을 목표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한다.
이 분야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비슷한 기술기업을 찾기가 어렵다. 그만큼 코드오브네이처가 기술우위를 선점하고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조건이다. 지금까지 30억 원 규모의 누적투자를 유치한 박 대표는 올 하반기 새로운 투자 라운드에 나서고, 여기서 확보한 자금을 해외시장 및 우주산업 진출에 투입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우리가 보유한 이끼 품종만 7건이고 특허 출원건수도 늘려가고 있다”면서 “누군가 후발 주자로 들어오더라도 기술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토양 복원을 성공시키고 그것을 증명할 데이터를 확보하는 일이라면 자신 있다며 앞으로 산림 및 토양 복원에 관심 있는 기업, 기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지금까지 코드오브네이처가 국내외에서 복원한 면적만 해도 194만㎡이고 이는 축구장 약 273개에 해당하는 넓이다.
‘코드오브네이처(code of nature)’는 자연의 원리 또는 법칙을 뜻한다. 그 이름처럼 생태 친화적으로 땅을 복원하는 한국 청년들의 실력이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