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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국수 시대의 풍경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5년 09월호
                                                   

예전에는 아침부터 든든하게 밥을 먹고 다녔다. 농경시대의 흔적이다. 산업도시가 만들어지던 1980년대, 빌딩 지하에는 작은 분식집들이 성업했다. 김밥 한 줄, 국수 한 그릇이 아침밥이 되곤 했다. 크루아상과 카페라테를 조식으로 먹는 세대에게는 먼 이야기겠지만. 

여러 통계에서 한국인은 밥보다 국수와 빵을 더 많이 먹는다고 한다. 밥을 단순히 쌀이라는 물리적 존재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설명하던 오랜 전통도 흔들리는 듯하다. ‘밥심’ 같은 낱말은 퇴락하는 중이다. 하기야 기성세대인 나도이제 밥보다 국수나 빵을 먹을 때가 많다.

그래도 빵은 아직 간식 대우다. 국수는 주식 대우지만 여전히 밥보다는 가볍게 여긴다. 국수 한 그릇은 흔히 ‘때운다’고 한다. 가볍고 빠르고 반찬도 거의 필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국수는 그저 면발과 국물 혹은 소스에 집중한다. 짜장면에서 시작해 이제는 스파게티를 먹는다. 파스타를 고급 요리처럼 파는 파스타 바, 오마카세 파스타집도 젊은 세대에게인기다. 이렇게 국수는 아직도 존재하는 한 그릇 2, 3천 원짜리 잔치국수부터 유행의 첨단인 고급 파스타까지 넘나든다. 때우는 국수, 미식의 국수가 공존하는 셈이다. 

때우는 것인지 미식인지 모호한 국수도 있다. 평냉, 즉 평양냉면이다. 국수의 별종인 평양냉면은 올여름 내내 화제다. 그중에는 너무 비싸다는 부정적 인식도 있다. 굳이 변호하자면 제대로 만든 평양냉면은 비쌀 이유가 충분하다. 한우를 넉넉히 고아내고, 밀가루의 열 배 넘게 비싼 메밀을 충분히 쓰면 원가는 폭등한다. 게다가 계절 음식이라여름 외에는 잘 팔리지 않아 임대료, 직원 고용 비용, 매출 등락 문제도 있다.

물론 제대로! 만든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파스타는 2만 원인데 냉면 1만5천 원에 핀잔을 주는 건 옳지 않다는 말도 있다. 이 모든 게 잘 만든 메밀냉면으로선 충분히 억울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진짜인 척하는 수준 미달의존재들이다.

평양냉면의 맑고 찬 고기 육수, 평소에는 거의 먹지 않는 순도 높은 메밀이 뭔가 가늠되지 않는 재료인 까닭에 이런비난과 오해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같은 냉면인데도 함흥냉면은 별다른 논쟁이 없고 평양냉면만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도 흥미롭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동남아, 중국 남부, 일본과 함께 대표적인 미작지대에 속한다. 하지만 추운 대륙성 기후로 인해쌀 생산량이 많지는 않았다. 잡곡과 감자, 고구마, 옥수수가 없었다면 보릿고개 등 고비를 넘지 못했을 거다. 그때 우리 허기를 달래준 게 국수였다. 거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과 추운 기후도 견디는 밀이 국수가 됐다. 물론 그 소출이 적어 배불리 먹을 수는 없었다. 전 세계가 국수를 먹지만, 한국인에게 국수는 매우 각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인스턴트 봉지라면은 물론이고 미식의 화두가 된 평양냉면까지 우리 앞에 놓인 미식의 국수는 무한대다. 이번 주말엔 어떤 국수를 먹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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