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하고 한국 AI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계기가 궁금하다.
심리학·경영학을 공부하면서 마케팅에도 관심이 많았다. 늘 그 시대에 가장 트렌디한 분야를 좇았다. 2015년 군대에서 개발자 출신 동료를 만난 걸 계기로 테크 관련 기업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라인(LINE)에 입사해 글로벌 전략팀에서 핀테크 신사업을 다뤘다. 2018년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하이브)에서 K팝의 유행과 소프트파워의 힘을 경험했다. 당시 BTS가 남미에서 붐을 일으키는 등 K팝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진출한 게 이례적이고 대단했다. 챗GPT로 AI 붐이 불었던 2024년부터는 클라이원트에 합류했고, AI를 활용해 공공입찰 자동화라는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
지난 3월 브런치에 쓴 글 ‘실리콘밸리 전체가 우울하다’가 많은 공감을 받았다.
AI가 나를 대체할 것 같다는 무력감과 인간이 병목처럼 느껴지는 우울감을 ‘클로드 블루(Claude Blue)’라고 표현해 봤다. 브런치는 독자가 한정돼 바이럴에 유리한 플랫폼이 아닌데도 반응이 뜨거웠다. AI 최전선에 있는 테크업계 얼리어답터들이 SNS에 공유해 준 덕이다. 작성자는 모르지만 ‘클로드 블루’ 글은 봤다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해당 글을 미국의 소셜 뉴스 웹사이트 ‘레딧’에 올렸더니 꽤 영향력 있는 현지 매체 ‘더 프리 프레스’에서 연락이 와 인터뷰도 했다. 다들 혼자 느끼던 감정이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많은 AI 모델 중 왜 하필 ‘클로드’ 블루였나?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스탠퍼드 MBA 출신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클로드 블루’라는 표현이 스쳐 지나갔다. 블루 현상은 테크의 발상지인 실리콘밸리에선 더 빈번하다. 그 지인이 “소프트웨어산업은 사양 산업이다, 그냥 김밥집 차려서 K푸드로 창업하는 게 훨씬 낫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걸 들으면서 나온 표현이었다. 사람들이 클로드를 많이 쓰니까 입에 잘 붙겠다 싶었다.
어떻게 클로드 블루에 주목하게 됐나?
고객사들이 스스로 AI를 활용하는 등 서비스 이탈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AI 시대에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메타의 개발자 형과 통화했는데 “AI 때문에 너무 우울하다. 처음에는 AI에게 프로젝트 설명을 시키고 보고서도 일일이 만들지 않아서 너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건지 모르겠고 잘릴 수도 있겠다 싶다”고 하더라. 과거에는 지식과 학위 등으로 전문성을 보호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AI의 무한한 가능성에 압도당해 블루에 빠진다. AI와의 경쟁에서 뒤처지다가 결국 대체될 것이라는 두려움, 쫓아가야겠다는 압박도 커졌다.
현재 ‘블룸’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처음엔 ‘클로드 블룸’이라는 이름으로 앤스로픽 엠버서더 후원을 받아 시작했다. 클로드 사용법을 배우는 모임으로 오해받기도 하고 다른 기업과의 협업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어서 클로드라는 이름을 뗐다. AI 기술을 배운다기보다는 AI 시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었다. 클로드 블루 모임이라고 하면 너무 슬프지 않나(웃음). 그래서 인생에서 어떻게 꽃을 피울(bloom)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계속 진화하고 있다.
블룸의 밋업(meet-up)은 그간 어떻게 진행됐나?
4월 14일 첫 행사 이후로 4개월간 30번 개최했다. 개별 신청자는 7천 명이 넘었고 파운더·C레벨급 1천 명이 참여하는 등 재방문율도 40%다. 처음엔 연사를 초청해 강의만 두 시간 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이 강의를 듣기보다는 본인 이야기를 하러 온다는 걸 알게 됐고, 지금은 편하게 진행하는 대담(fireside chat) 40분에 6인 1조 라운드테이블 토론 후 조장이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나는 비개발자라 개발 콘텐츠를 소개하는 대신 해외 소식을 직접 전하는 것으로 차별화했다. 해외 소식이 한글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생기는 간극은 현지에 있는 사람을 직접 데려와 해소했다.
주요 참석자는 누구이고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
개발자를 비롯해 대형 로펌 파트너, 국방부·공공기관 관계자, 대기업 임원, 엔터 기업 직원, 치과의사까지 그 분야가 넓다. 대화 주제도 눈에 띄게 바뀌어서 ‘AI를 어떻게 잘 쓸까’는 거의 관심 밖이고 AI로 비즈니스가 성장한 다른 직군의 실제 사례를 궁금해한다. 도구 이야기에서 돈 이야기로 넘어간 셈이다. 직군 경계가 흐려지면서 개발자에서 영업·마케팅으로 커리어를 옮기는 사례도 여럿 봤다.
직군마다 AI 블루를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 같다.
개발자는 트렌드를 빨리 따라가고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문화가 있는 만큼 AI 블루를 빠르게 느낀다. 지난해 메타에서는 코딩을 잘하던 사람들은 해고당하고 AI를 잘 쓰는 젊은 친구들이 승진했다. 반면 비개발자에게는 개발자 같은 공유 문화가 없고 아직 그만한 파도도 덮치지 않았다. 프로젝트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는 비정형 업무가 많아 AI가 침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AI는 계속 발전할 테니 그 충격이 늦게 오는 대신 한꺼번에 몰아칠 것 같다. 그전에 도메인 지식을 AI와 접목해 자기만의 성벽을 쌓아둬야 한다.
해외 다른 국가에서도 같은 반응인지 궁금하다.
클로드 블루와 블룸의 서사는 한국에서만 공감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7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클로드 커뮤니티와 협업해 같은 주제로 200명 규모의 밋업을 열었는데 1,500명이 신청했다. 다만 도시별·국가별 차이는 확실히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AI 제품을 만드는 창작자(builder)의 입장이라 AI 블루가 더 심한 반면, 뉴욕(금융)·보스턴(의료)·텍사스(제조)처럼 특정 분야에서 AI를 소비하는 도시의 경우엔 덜하다. 한국은 AI 적응력이 높고 유료 계정 사용자도 많다. AI를 활용해 패션·음악 등을 직접 만드는 창작의 나라인 만큼 블루도 더 크게 느낀다. 하지만 일본과 싱가포르는 굉장히 보수적이라 블루라는 감정이 옅다. 대부분 시스템 통합(SI) 부문을 외주화하는 일본은 개인이 AI를 포함한 IT를 직접 경험할 일이 없고, 싱가포르는 제품을 만들기보다 허브 역할을 하며 중립성을 지키는 데 집중하다 보니 AI 블루를 덜 느낀다.
올봄 실리콘밸리의 우울감을 전한 지 반년이 됐다. 최근 상황은 어떤가?
더 심해진 것 같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LLM 자체가 너무 좋아져서 자사 서비스가 결국 오픈AI나 앤스로픽에 잡아먹힐 게 뻔해 보이고, ‘그럼 남은 게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경쟁하고 있다. 요즘 링크드인에 ‘토큰 맥싱(token maxxing)’이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토큰을 최대한 써서 AI 네이티브가 되자는 뜻인데 너무 피로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 현장 노동 강도도 장난이 아니더라. xAI에 다니는 지인은 일요일 자정에도 회사에 있고 새벽 1시에 소집된 미팅이 4시까지 이어져 그대로 출근한다고 한다. 사무실에 텐트를 치고 살며 샤워실에서 씻고 집에도 못 가는 상황이다.
AI 블루 완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은?
주목할 건 블루 자체가 아니라 격차다. 현장에서는 허무하게도 ‘배울 시간이 없어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대기업에 있는 지인에 따르면 보안이나 문해력 때문이 아니라 분기 목표와 고객 대응에 밀리고 정리해고 분위기로 일이 늘면서 AI를 배울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AI 강의를 더 만드는 것보다는 배울 시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해 주고, 오픈소스 문화가 없어 갈 데가 없는 비개발 직군에게 모일 공간과 운영을 지원하는 쪽이 효과가 클 것이다.
블룸의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무료 밋업을 유지하며 관심사·지역·가격대를 고려한 큐레이션 소모임 ‘블룸 믹서(Bloom Mixer)’를 최근 시작했다. 이들의 자유로운 소통을 돕고, AI 얼리어답터 간의 연결을 지원하려 한다. 밀도 높은 오프라인 소통 덕에 참여자들의 호응이 좋다. 한국 사람만 모이는 커뮤니티는 공유의 가치가 크지 않아 오는 9월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밋업을 개최한다.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에 없는 글로벌 AI 콘퍼런스를 서울에 만드는 것이 목표다. 유럽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콘퍼런스 슬러시(SLUSH)가 핀란드에서 열리는 것처럼 말이다. 블룸 커뮤니티는 유튜브·인스타그램·디스코드 등 다양한 채널에서 만날 수 있다. 『나라경제』 독자들의 활발한 온·오프라인 참여도 기대한다.
현재 AI로 우울한 사람들과 앞으로 겪을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블루를 느낀다면 뒤처져서가 아니라 앞서 있어서 그렇다. 다만 블루를 건너뛰고 바로 블룸으로 갈 순 없다. 약점을 마주 봐야한다. 우리 모임에서도 잘하는 이야기보단 안 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눈다. 블룸이 어떤 모습일지 미국 빅테크 10년 차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 한다. 그분은 회사에서 AI 도구를 지원해 주지 않아 매달 500달러를 사비로 썼는데, 그 이유가 의외였다. 언젠가부터 작업이 루틴화돼 직접 만드는 즐거움을 잃었는데, AI와 함께 했더니 작업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시 만드는 기쁨을 느끼게 됐다’는 거다. AI는 효율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장치였다. 우리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걸 AI가 돌려준 셈이다. 이런 게 블룸아닐까. AI에 위임할수록 판단하는 근육이 줄어들지만 10년치 감각이 이미 몸에 있는 사람에겐 AI가 증폭기로 작동했다. 반대로 판단하는 근육이 없는 상태에서 위임부터 시작하면 AI가 그 근육을 먼저 갉아 먹는다. 이 차이가 블루와 블룸을 가르는 지점이 아닐까. AI를 쓰지 말라는 게 아니라 판단하는 자리는 스스로 지키면서 쓰라는 거다. 사실 블루냐 블룸이냐는 왔다 갔다 하는 거고 그 해답은 샘 올트먼도 모를 거다(웃음). 혼자 견디고 있다면 밖으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한번 만나보면 어떨까.
오성록 『나라경제』 기자
<이하 내용은 지면에 싣지 못한 인터뷰 전문>
AI로 인한 생산성의 역설이 발생할까? AI 활용과 생산성 유지를 위한 균형 방안이 궁금하다.
생산성의 역설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최전선일수록 심하다. 지인 중에 실리콘밸리의 한 AI 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와 커피챗을 하면 일요일 밤 열두 시다. 아직 회사에 있었고 주변이 대낮처럼 시끄러웠다. 주말을 포함해 매일 오후 네 시에 미팅이 있고, 새벽 한 시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소집이 걸리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조직 안에서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지인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요즘 주니어들이 제품 요구사항 문서를 AI로 찍어내다 보니 18장짜리 문서가 쏟아진다고 한다. 그러면 그것을 하나하나 읽고 검증해야 하는 시니어가 죽어난다. 생산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검증 비용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물론 검증도 AI로 하면 되지만, 그러려면 시간을 내서 딥다이브를 해야 하고 그 시간이 없으니 못 한다. 결국 중간에 낀 사람이 가장 고통받고 있었다.
가장 깊은 층위의 역설은 따로 있다고 본다. 개인 차원에서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욕망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에서 만난 PM이 이렇게 말했다. 일 끝나고 누가 또 어떻게 돈을 더 벌까를 생각하고 싶겠느냐고, 힘들지 않냐고. 나도 직장 생활할 때를 떠올려보면 퇴근 후에까지 업무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여유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하나가 더 얹힌다. AI를 이겨내려면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니라,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는 감각이다. 그래서 관심이 회사에서 일을 더 잘하는 쪽이 아니라 어차피 언젠가 나올 텐데 그때 뭘 하지 쪽으로 옮겨간다. 인터뷰한 미국 지인들이 직군을 가리지 않고 결국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균형점은 결국 목적에 있다고 생각한다. 목적 없이 AI를 돌리면 시간만 쓰게 되고, 절감한 시간에 또 다른 과업이 채워지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속도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나는 남는 시간을 사람 만나는 데 쓰기로 정했다. 주간 보고를 자동화해서 아낀 시간에 커피챗을 하고 행사를 연다. 이것이 내 경우엔 가장 대체되지 않는 활동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없다는 말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잘 모르겠다. 내 친구 중에 커서(Cursor)를 비서처럼 세팅해둔 사람이 있는데, 아침에 오늘 할 일을 정리해 보고받고 회의록은 알아서 정리돼 담당자에게 배분되고 위키까지 업데이트되게 만들어놨다.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출근했을 때 옆 창에 켜져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고. 한 번 시간을 내서 세팅해두면 그다음부터는 시간이 오히려 생기는 구조다. 문제는 그 처음 몇 시간을 못 내는 것이다.
하나 덧붙이면, 토큰을 많이 쓰면 AI 기업만 좋다. 그건 좀 웃픈 지점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많이 돌렸느냐보다 무엇을 위해 돌렸느냐를 스스로 자주 확인하려고 한다.
다음 세대에는 사람이 할 일과 AI가 할 일이 구분될 텐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내가 요즘 자주 쓰는 비유가 있다. AI는 곡괭이라는 것이다. 성능이 아무리 좋아져도, 내가 다이아몬드 광산을 못 찾으면 그 곡괭이를 쓸데가 없다. 그래서 사람이 할 일은 광산을 찾는 것이고, AI가 할 일은 캐고 다듬는 것이라고 본다.
이걸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지인에게 들었다. GPT에게 특정 주제의 논문 요약을 시키면 이미 출판된 연구 결과를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그런데 아무도 해석하지 않은 원본 데이터를 던져주고 여기서 새로운 패턴을 찾아보라고 하면 전혀 못 한다는 것이다. 언어모델은 가장 빠르게 인용할 수 있는 소스를 찾아 답을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재조합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건 다른 일이다. 그의 표현으로는 같은 데이터를 봐도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숫자 뒤에 숨은 이야기를 직감적으로 잡아내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어디를 봐도 10점 만점에 7점짜리 결과물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7점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일이었는데 이제는 누구나 만든다. 그래서 경쟁의 축이 옮겨갔다.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걸러내는 능력 쪽으로. 내가 읽은 글에서는 AI 시대에 희소한 건 생성이 아니라 거부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이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뭘 할지보다 뭘 안 할지를 아는 사람이 이긴다.
두 번째로 남는 건 도메인의 암묵지다. 이건 내가 비개발 직군에 있는 분들께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발자들은 이미 큰 파도를 맞았는데 비개발 직군에는 아직 안 왔다. 이유는 우리 업무가 비정형적이기 때문이다. 개발은 검증이 쉽다. 돌아간다, 안 돌아간다. 기준이 명확하니까 AI가 먼저 들어갔다. 영업 미팅은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패턴이 달라지니까 AI가 침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사이에 AI가 계속 좋아지고 있어서, 오면 눈덩이처럼 한 번에 올 것 같다는 것이다. 내가 인터뷰한 엔지니어의 말이 오래 남았다. 소프트웨어가 먼저 영향을 받은 건 맞는데, 다른 분야들은 더 세게 받지 덜 받을 리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자기 도메인의 암묵지를 데이터로 쌓아두라고 말하고 싶다. AI를 배척하는 게 아니라 내 도메인과 접목해서 나만의 데이터를 만들어두면, 나중에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그 데이터가 들어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봤다. 어느 식품 회사 CFO가 연세가 좀 있어서 아이디어를 늘 수첩에 손으로 적어 정리했는데, 그걸 파일로 만들어 에이전트로 구성했더니 그가 가진 노하우가 그대로 에이전트가 됐다고 한다. 정리되지 않은 지식은 AI가 못 쓰지만, 정리된 지식은 바로 자산이 된다.
세 번째는 서사다. 내가 좋아하는 래퍼가 본인 유튜브에서 AI 음악을 평론한 적이 있는데, 요즘 AI 음악이 곡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사람이 만든 것보다 좋을 때도 많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곡만 듣는 게 아니라 그 곡이 나오게 된 배경과 아티스트의 서사까지 같이 소비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게 음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제품도 있는 그대로 소비하지 않는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는지까지가 제품의 일부다. 기술은 복제되고 모델 성능 격차는 좁혀지지만, 사람들과 쌓은 관계와 브랜드가 가진 이야기는 복제가 어렵다. 지금처럼 기술이 강력해진 시대에 해자가 오히려 비기술적인 데서 나오는 게 역설적이다.
마지막으로 관계다. 메타에 있는 선배에게 꼭 현지에 가야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비즈니스는 여전히 관계로 돌아간다고 했다. 관계를 줌(Zoom)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고,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가 그 선배에게 편하게 연락해서 이런 깊이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다.
덧붙이면 만능 에이전트는 아직 없다. 우리 회사 실적이 왜 떨어졌는지 분석해달라는 광범위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에이전트는 10년 안에는 어려울 거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신 팀 단위, 업무 단위로 목적이 뾰족한 에이전트는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 뾰족한 목적을 정하는 게 사람의 일이다. 내가 인터뷰한 바이오 연구자, 금융 데이터 엔지니어, 빅테크 디자이너가 서로 전혀 다른 분야인데 똑같은 말을 했다. AI는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한다고 했다.
인류가 AI FOMO를 극복하고 AI와 공존할 방안이 있다면?
먼저 오해를 하나 풀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클로드 블루를 FOMO로 이해하는데, FOMO였으면 내가 클로드 FOMO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FOMO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모으지 않는다. 불안하게 만들어서 오게 하면 우리도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FOMO는 분명히 있지만 그걸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한순간이다. 짜릿한 마케팅 수단이지만 독이 든 성배에 가깝다고 본다. 불안을 자극하고 나면 그래서 뭐가 남는가. 와서 연결되고 인사이트를 얻고 결과적으로 성장하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그리고 나는 내가 FOMO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있던 현상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내 글이 유독 한국에서 크게 퍼진 이유를 오래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이게 AI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트코인과 NFT에서 먼저 배웠다. 일찍 들어간 사람은 벌었고 늦게 들어간 사람은 잃었다는 경험이다. 그전에는 부동산이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판이 열리면 일단 빨리 올라타야 한다는 학습이 몸에 배어 있다. 쓰레드(Threads)가 나왔을 때도 똑같았다. 오픈하자마자 3일 만에 팔로워 1만 명 만드는 법 같은 글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유튜브에 AI를 검색하면 지금 안 하면 평생 후회한다, 100년 만에 온 기회라는 썸네일이 넘친다. 사회 초년생이 그걸 보면 정신이 아찔해질 수밖에 없다.
왜 한국이 유독 심할까를 두고 나눈 이야기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다리가 하나라는 감각이다.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미국에서 다녀서 한국 학창 시절 문화를 다 알지는 못하는데, 군대에서 친구들이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철도선에서 벗어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인서울 4년제를 못 가면 꼬이고 대기업에 못 들어가면 또 꼬인다는 감각이다. 미국 레딧에 같은 글을 올렸을 때 반응이 갈렸던 이유도 여기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사다리가 여러 개라 이게 안 맞으면 저걸로 갈아탈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조금 더 구조적인 이야기인데, 우리가 과정을 돌아볼 여유 없이 결과를 냈던 역사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오래 사업한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의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행사 안전 수칙을 보고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가 되물었다고 한다. 일본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지 생각해봤느냐고 했다. 1970년대부터 쌓인 시위와 사고가 그 기준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급속 성장을 하면서 과정을 돌아보기 전에 더 좋은 결과가 먼저 나와버렸다. 그러다 보니 늘 앞선 나라를 벤치마킹하게 되고, 각자의 색깔이나 노하우 없이 남을 의식하고 따라가는 습관이 강해진 것 같다. FOMO는 그 습관의 최신 버전인 셈이다. 이건 내 가설이지만, 경제사와 사회심리가 겹치는 지점이라 『나라경제』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극복 방법을 말하면, 거창하지 않다. 내가 인터뷰한 미국 빅테크 디자이너가 링크드인을 두고 아주 좋은 표현을 썼다. '작은 불안의 강물' 같다고. 매일 피드를 열면 새로운 AI 뉴스와 누군가의 사용 후기가 흘러가고, 나만 놓치고 있나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이, 그럴 때 직접 손으로 뭔가를 하나 만들어보면 그 불안이 사라진다고 했다. 만들다 보면 자기만의 노하우가 생기고 뉴스보다 나은 인사이트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가장 실용적인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FOMO는 정보를 더 소비해서는 절대 안 줄어들고, 뭔가를 만들거나 사람을 만나야 줄어든다.
공존이라고 하면 거창한데, 나는 AI를 기술이라기보다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기술 배경이 아니라서 더 그런 것 같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야, 그거 AI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안 해봤고 모르는 일이라도 AI랑 함께라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커뮤니티를 하게 된 것도 그렇다. 우리는 커뮤니티 회사가 아닌데 AI 시대니까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방향을 잡을 때 도움이 되는 비유를 하나 들면, 십 년 전으로 돌아가서 엑셀이 나왔으니 엑셀로 사업을 해보자고 하지는 않았다. 이미 하고 있던 사업에 엑셀이 도움이 된 것이다. AI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AI로 뭘 할까가 아니라, 내가 이미 하고 있는 일에 AI가 어떻게 도움이 될까로 접근하는 게 훨씬 빠르다.
그리고 FOMO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역시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이건 내 경험이자 우리 커뮤니티에 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다. 방에 들어와서 누군가 나도 그거 겪고 있다고 말하는 걸 듣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게 풀렸다. 매일 AI와 상호작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