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됐다. 저마다 “새해부터는…”이라고 품어왔던 여러 결심들(new year’s resolution)이 실행을 요구하는 출발점이다. 운동, 공부, 금연 등 나의 인적자본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결심들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시작하기가 어려운 것일까? 그래서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도 있고 “모든 시작은 어렵다(Aller Anfang ist schwer)”는 독일 속담도 있는 것이다.
새해부터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운동해서 지방을 빼고 근육을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하자. 건강, 체력, 몸매, 해냈다는 자긍심까지 높여줄 수 있는 멋진 계획이다. 그 전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늦잠을 자는 것보다는 일찍 일어나 운동하는 것이 훨씬 더 효용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알람이 울리는 순간 바뀐 나의 선호, 늦잠의 효용에 더 큰 만족
알람이 울린다. 평소 같으면 단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상태에서 얼른 생각한다. 내가 더 자는 것이 좋나, 일어나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것이 좋나? 분명히 자기 전까지만 해도 일찍 일어나 운동하는 것이 좋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다르다. ‘차라리 좀 더 자는 것이 컨디션에는 더 좋을 것이다, 무리해서 좋을 것 없다, 내일부터 해도 괜찮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알람이 울리는 순간 바뀌어버린 나의 선호를 나의 기특한 뇌가 순식간에 합리화해준다. 이것이 독하지 않은 우리들의 평범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당장 편한 것을 택했을 때보다 계획을 지켰을 때 자신의 만족도가 더 크다는 것을 사후적으로 안다. 계획을 지켰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나 당장 편한 것을 택한 후에 날이 밝아 허둥지둥 일과를 시작하면서 느끼는 후회를 생각하면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이었는지는 오래지 않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전까지도 더 좋았고 다음 날 오전에도 더 좋았을 선택이 있는데, 알람이 울리는 시점에서는 이상하게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림 1〉에서 A를 늦잠의 효용이라고 하고 B를 새벽 운동의 효용이라고 하자. 그것이 각각 실현된 시점에서는 분명 A보다 B의 효용이 크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미래에 실현될 효용은 현재 시점에서 낮게 느껴진다. 돈을 나중에 받을수록 이자가 더 붙는 이유다. 따라서 A와 B는 미래의 실현 시점에서 과거로 멀어질수록 효용의 현재가치가 줄어들지만, 그림에서 0으로 표시된 현재 시점(자기 전이다)에서도 A보다 B의 효용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알람이 울리며 늦잠을 잘 것인가, 운동을 할 것인가의 기로 앞에 서자 선호가 바뀌었다. 실현이 임박한 A, 즉 늦잠의 효용이 B의 효용보다 커져버린 것이다. B의 효용은 운동을 하고 난 후의 뿌듯함이나 더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운동 효과인데, 일순간 눈앞에 온 A의 효용에 가려져 버린 것이다. 알람을 끈다. 이러한 현상은 〈그림 2〉에서 더 높은 건물 앞에 있는 낮은 건물 쪽으로 사람이 걸어갈 때 느끼는 착시와 비슷하다. 객관적으로도 그렇고 분명 멀리서 볼 때는 뒤에 있는 건물이 더 높았는데, 앞에 있는 건물 쪽으로 계속 다가서다 보니 어느 순간 앞 건물이 뒷 건물을 다 가려버려서 마치 앞 건물이 더 커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여행 중에 멀리서 어떤 멋진 건축물을 보고 더 가까이서 사진으로 잘 담아보려고 계속 접근하다 보면 어느새 앞쪽에 있는 평범한 아파트나 낡은 사무용 건물(되도록이면 앵글에서 빼려고 했던 신 스포일러들)이 그 멋진 건축물을 가려버린 것을 알게 된다. 분명 뒤에 있는 건축물이 더 높았는데도 그렇다. 건물을 올려다보는 우리의 시야가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인데, 눈앞의 유혹에 굴복하는 우리의 모습도 작아 보인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쌍곡형 할인(hyperbolic discounting)’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전통경제학에서 미래에 실현될 가치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비율(시간이 멀든 가깝든 기간의 길이에 따라 동일하게 적용되는 금리를 생각하면 된다)로 할인하는 ‘지수형 할인(exponential discounting)’을 가정한 것과 대비된다. 지수형 할인에서는 미래의 효용이 현재 시점으로 올수록 할인돼 현재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A와 B의 가치가 중간에 역전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지수함수보다 더 심하게 휜 활 모양인 쌍곡선형의 할인은 〈그림 1〉에서처럼 선호의 역전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A가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때가 바로 새벽에 알람이 울린 순간이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강을 건너는 것이다”
필자는 수강신청 기간에 엄청난 초과수요가 존재하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수업을 화, 목 1교시로 해봤다. 새벽 기상은커녕 새벽 취침이 많은 기숙형 대학의 학생들에게 1교시는 기피 대상이기에 행복 수업에 대한 간절함을 초대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화, 목 기상시간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알람을 끄는 선택을 자주 한 학생도 있었다. 후자의 학생은 마지막 수업 소감에서 때로는 자신이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는 순간, 수업보다는 이불 속에 있는 행복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 학생이 다음에 ‘행동경제학’ 강의를 듣는다면 그것이 쌍곡형 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들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중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을 것이다.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이나 시작은 하는데 작심삼일에 그치는 사람들은 결정의 기로 앞에서 갑자기 커져버린 오랜 관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셈이다. 그것이 첫날인지 넷째 날인지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알람이 울릴 때 5부터 1까지 숫자를 거꾸로 세며 결정을 하면 더 쉽게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깐깐한 친구와 새벽에 운동장에서 만나는 약속을 하고 결심을 깼을 경우 벌금을 엄격하게 부과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운동방법을 다 아는데도 비싼 회비를 내고 개인 트레이너(PT)와 약속을 잡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필자의 연구년 시절에 친하게 지낸 인도인 교수는 각종 학회 발표 논문 모집공고를 열심히 보고 미리 응모해 제출 마감까지 스스로에게 논문을 쓸 강제력을 부과하곤 했다. 그리고 논문들을 모아 최근에 멋진 저서를 냈다. 필자도 시작이 어려운 경우가 꽤 있다. 많은 일들이 밀려 있을 때, 특히 가장 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니 그중 시간과 노력이 가장 많이 투입돼야 하는 일인 경우가 많았다. 금방 끝낼 엄두가 안 나다 보니 시작을 계속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여러 가지 행동과학적 처방들을 생각해 보면서도 떠올리는 말이 있다. 인디언 최후의 추장 제로니모(Geronimo, 1829~1909년)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강을 건너는 방법은 강을 건너는 것이다.” 모 스포츠용품 회사의 광고 카피 “Just do it”의 원조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