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나라경제 논단 & 특별기고효율의 시대가 끝난 자리에서
허장 재정경제부 제2차관 2026년 09월호
공급망과 자본시장은 서로 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같다.  둘 다 충격이 왔을 때 우리 경제가 얼마나 버티느냐를 가른다.  공급망은 물건이 끊기지 않게 하고 자본시장은 돈이 등을 돌리지 않게 한다.  그 둘이 버텨준 만큼 물가와 일자리, 국민의 살림이 덜 흔들린다.

올봄 나프타 수입에 차질이 생기면서 석유화학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졌다. 몇 주 뒤 문제가 불거진 곳은 뜻밖이었다. 포장재가 부족해졌고 주사기와 종량제봉투 수급에도 영향이 생겼다. 중동에서 시작된 전쟁이 국민의 장바구니와 병원 진료실까지 닿는 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지난 6월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에 서명했지만 긴장은 걷히지 않았다. 합의 문안을 둘러싼 이견이 이어지는 데다 해협 통항을 제한하려는 움직임까지 다시 나타나 국제유가가 재차 출렁이는 것을 보면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번 경험은 두 가지 숙제를 분명히 남겼다. 공급망, 그리고 시장의 신뢰다.

공급망 운영, 효율만으론 충분치 않고 구조 바꿔야…
회복탄력성 확보 위한 ‘전략적 비용’도 감수 필요

지난 수십 년간 글로벌 분업의 원리는 분명했다. 가장 싸게 만드는 곳에서 만들고 재고는 최소로 줄인다. 이중화는 낭비였고 단일 최적 공급처가 합리였으며 이러한 방식은 실제로 효과적이었다.

이번 사태는 효율만을 기준으로 한 공급망 운영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줬다. 원료 하나의 수급 차질이 석유화학을 거쳐 생필품까지 번지는 데 몇 주면 충분했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연쇄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품목 하나를 잘 관리하는 것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일정한 대응 기반을 마련해 왔다. 일본 수출규제와 요소수 사태 등 공급망 불안이 커지던 시기의 경험이 제도로 이어진 덕이다. 2023년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을 만들고 이듬해 공급망안정화기금을 설치해 둔 것이 이번에 힘이 됐다. 정부는 나프타를 경제안보품목으로 지정하고 긴급수급조정조치를 시행했으며 추경을 통해 수입단가 상승분을 지원했다. 기금에는 중동 피해대응 특별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해 중동 이외 지역에서 대체수입을 할 때 지원 규모를 늘리고 대출 만기도 연장했다.

돈만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대체 포장재를 구해도 표시 규제에 걸렸고, 페인트 원료 등 화학물질은 유해성 시험에 통상 3개월이 걸려 신속한 대체수입이 어려웠다. 이에 포장재 표시 의무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고 수급차질 발생 물질은 수입 전 등록 절차에 특례를 적용해 수입 소요기간을 대폭 단축했다. 당면한 위기는 이렇게 넘겼다.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효율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회복탄력성 확보를 위한 ‘전략적 비용’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 모든 품목을 국산화하거나 대규모로 비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핵심 품목의 특성에 따라 국내 생산 촉진, 비축, 해외 생산기반 구축, 수입 다변화 등 대응수단을 고민해야 한다. 국내에서 만들 수 있으면 만들고 어려우면 해외에 생산거점을 두거나 들여오는 길을 넓히는 식이다. 정부는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 2030년까지 경제안보품목의 특정국 의존도를 50% 낮출 계획이다.

공급망 위기 대응에서는 위기 징후를 얼마나 일찍 포착하느냐도 중요하다. 범부처 통합공급망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 위기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정보 공유와 부처 간 유기적 대응을 강화할 계획이다.

공급망은 정부 혼자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최종 수요기업과 중견·중소 협력사가 서로 기대어 버티는 구조가 국내에 안착돼야 한다. 공급망안정화기금이 대·중소기업 가치사슬이 중요한 이차전지, 원전 분야에 ‘공급망 상생금융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 것도 기업 간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공급망 전체의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위기에서 가치가 매겨지는 대외 신인도…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로드맵 등 추진해 투자 촉진

공급망이 재화의 숨통이라면 대외 신인도는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자금의 숨통이다. 중동 사태가 번지던 지난 3월, 원화가 흔들렸다. 그런데 시장 전문가들은 외환 수급 대신 심리를 짚었다. 실제 달러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불안이 앞선 것이며 상황만 풀리면 되돌아올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판단의 근거가 곧 대외 신인도였다.

신인도는 평시에 쌓아 위기에 쓰는 자산이다. 지난 4월 우리 국채가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된 뒤 6월 말까지 외국인의 국고채 순매수 규모는 30조 원을 넘어 지난해 같은 기간을 웃돌았고, 2월과 7월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은 역대 최저 가산금리를 경신했으며 국가신용등급도 역대 최고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전쟁과 유가 급등이 겹친 해에 얻은 성적이다.
이런 지표는 벽에 걸어두는 성적표가 아니다. 가산금리가 낮아지면 정부와 기업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무는 값도 함께 줄고, 그렇게 아낀 돈은 공공사업의 재원과 기업의 투자 여력으로 남는다. 신인도는 결국 국민이 부담하는 비용의 문제다.

재정경제부는 올 상반기 뉴욕과 런던, 파리,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금융 중심지에서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경제를 보는 눈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성장 전망과 산업 이야기가 오간 뒤, 질문은 곧 실무로 내려왔다. 계좌를 트는 데 서류를 일일이 제출해야 하는지, 공증을 받기 위한 요건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확인하거나 환전과 결제의 시차에 따른 부담을 호소했다.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이런 마찰이 투자를 가로막는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한 로드맵을 39개 과제로 잘게 나눈 까닭이 여기 있다. 법인식별번호 발급확인서 한 장으로 실명확인을 끝낼 수 있게 하고 계좌 개설 시 펀드별로 각각 거쳐야 했던 실명확인 절차를 수탁은행 명의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채권결제 마감 시간도 두 시간 연장해 보다 원활한 결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나하나 사소해 보이지만 투자자에게는 진입할지 말지를 가르는 문턱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난 7월 6일 외환시장을 24시간 체제로 열었다. 그동안 원화는 서울이 잠들면 거래가 멎는 통화였고 그 시간의 가격은 역외 차액결제선물환시장이 대신 매겼다. 24시간 개장으로 원화 가격이 매겨지는 자리를 원화 현물환시장으로 되돌린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원화 현물환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길도 넓어졌다. 이어 발표한 ‘원화 국제화 로드맵’은 규제받는 통화이던 원화를 자유롭게 교환되는 통화로 바꾸겠다는 선언이며, 내년 1월부터 본격 운영할 원화국제결제망 등이 그 받침대가 된다. 시장이 두터워지면 거래가 얇은 시간대에 주문 하나가 가격을 크게 흔드는 일이 줄고, 기업은 수출입 대금을 계획대로 다룰 수 있다. 제도를 만드는 일보다 시장에 자리 잡게 하는 일이 더 오래 걸린다. 투자자가 달라진 것을 실제로 체감할 때까지 세부사항을 계속 손볼 것이다.

공급망과 자본시장은 서로 먼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뿌리는 같다. 둘 다 충격이 왔을 때 우리 경제가 얼마나 버티느냐를 가른다. 공급망은 물건이 끊기지 않게 하고 자본시장은 돈이 등을 돌리지 않게 한다. 그 둘이 버텨준 만큼 물가와 일자리, 국민의 살림이 덜 흔들린다. 파고는 당분간 잦아들지 않겠지만 그 사이에도 구조를 바꾸는 일은 멈추지 않겠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