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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문가 기고150년 전 조선의 개화와 척사의 교훈, AI 시대 우리에게 다시 묻다
김의택 재정경제부 혁신정책담당관 2026년 10월호
AI가 아무리 뛰어난 답을 내놓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어야 한다. AI가 아무리 빠르게 행정 문서를 만들고 정책을 분석하더라도 국민의 삶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는 공직자와 인간이다. 
AI의 효율성이 인간의 존엄보다 앞설 수는 없다. 기술의 편리함 때문에 공정과 신뢰, 책임과 같은 사회의 기본 원칙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AI라는 거대한 신문물을 마주하고 있다. 정부와 기업은 AI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보고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으며, AI의 두뇌라 할 수 있는 반도체에도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행정과 산업, 교육과 국방까지 AI가 바꾸지 않는 영역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 150년 전 조선의 모습이 떠오른다. 서양의 과학기술과 새로운 제도가 밀려오던 시절, 조선에는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화파와 전통적 가치와 국가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는 위정척사파가 있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시 그들의 선택은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오래전 조선의 개화파와 위정척사파가 던지는 질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

19세기 후반 조선의 개화파는 세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김옥균·박영효·홍영식 등 젊은 개화파들은 서양과 일본의 발전된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여 조선도 근대국가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신문물은 단순히 새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새로운 무기와 통신, 교육과 행정제도, 산업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국가의 경쟁력을 잃고 외세의 위협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오늘날 AI도 마찬가지다. AI를 잘 활용하는 기업과 국가가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그렇지 못한 곳은 점점 격차가 벌어질 것이다. 특히 AI의 기반이 되는 반도체는 하나의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와 공급망, 경제주권을 좌우하는 핵심인프라가 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AI와 반도체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유행하는 신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미래 세계질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깝다.

한편 최익현을 비롯한 위정척사파는 외세의 힘이 새로운 문물과 함께 들어오는 상황에서 조선의 전통과 자주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물론 최익현의 주장을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에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게 있다. 바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면서 무엇을 지킬 것인가?’다. AI 시대에는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답을 내놓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어야 한다. AI가 아무리 빠르게 행정 문서를 만들고 정책을 분석하더라도 국민의 삶에 미칠 영향을 판단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는 공직자와 인간이다. AI의 효율성이 인간의 존엄보다 앞설 수는 없다. 기술의 편리함 때문에 공정과 신뢰, 책임과 같은 사회의 기본 원칙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150년 전의 역사를 단순히 개화파는 옳았고, 위정척사파는 틀렸다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개화파는 변화하는 세계를 읽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급격한 개혁과 외세 의존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위정척사파 역시 변화의 흐름을 지나치게 거부한 측면이 있었지만 국가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중요한 주장을 던졌다. 



개화와 척사의 대립을 넘어 ‘우리의 방식’ 찾아야…
AI 시대의 진정한 개화는 인간을 위한 기술에 있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개화와 척사의 대립을 넘어 ‘우리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개화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위정척사파의 마음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AI를 빠르게 받아들이되 우리의 판단력을 잃지 않아야 한다. 해외의 기술을 적극 활용하되 우리만의 기술과 산업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AI를 통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되 국민과 공직자 사이의 신뢰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떤 가치 아래 사용하는가’다.

150년 전 조선이 새로운 문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세계의 기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과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고, AI 기술을 세계시장에서 경쟁시킬 수 있는 역량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AI 기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AI를 만드는 나라, AI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라, AI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나라가 돼야 한다.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AI 인프라 확충도, 공공 부문의 AI 전환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일 때 빛을 발한다. 즉 AI 시대의 진정한 개화는 인간을 위한 기술에 있다.

개화파가 우리에게 “변화하는 세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다면, 위정척사파는 “그 변화 속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AI 시대의 대한민국은 이 교훈과 물음에 동시에 답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에는 가장 과감하게, 인간의 가치에는 가장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150년 전 조선의 개화와 척사가 오늘날 대한민국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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