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을수록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조금씩 바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지난 8월 26일 히말라야산맥의 빙하가 무너져 산 아래 강줄기를 따라 마을을 휩쓴 재난의 한복판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평생 그 공포를 잊지 못할 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서 자기만 살아남았다면 공포에 죄책감까지 더해져 남은 삶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다.
만약 생존자의 기억 가운데 재난의 생생한 기억만 골라내 삭제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기억을 지운다고 한들 재난의 흔적이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삭제된 기억의 자리에 무미건조한 정보만 채워 넣는다면 최소한 남은 삶을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오디세이>로 한국에서만 1천만 관객을 동원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2010)처럼 타인의 머릿속을 조작하는 일이 지금 세계 곳곳의 실험실에서 진행 중이다. 놀랍게도 <인셉션>이 나오기 직전인 2009년부터 그 성과도 나왔다.
기억을 지우고 켜고 덧칠하다
가장 먼저 기억 조작의 문을 연 이들은 캐나다 토론토대의 시나 조슬린(Sheena Josselyn) 팀이다. 조슬린 팀은 뇌의 편도체에 주목했다. 편도체는 공포나 불안 같은 감정이 묻어 있는 경험을 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몬드 모양으로 생긴 뇌의 한 부분이다. 이곳이 손상되면 공포나 불안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조슬린 팀은 쥐의 편도체 신경 세포 일부의 유전자를 조작해 외부 자극에 좀 더 쉽게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만약 그 쥐가 공포스럽게 기억할 만한 상황에 직면한다면 다른 신경 세포보다 이 유전자를 조작한 세포가 우선 반응할 것이다. 공포 기억 형성에 일차적으로 관여하는 세포를 가려낼 수 있도록 태그를 붙인 셈이다.
이어서 연구진은 그 쥐에게 공포 기억을 심었다. 쥐를 낯선 상자에 넣고 특정한 소리를 들려주면서 미세한 전기 충격을 주는 방법이다. 이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면 쥐는 전기 충격이 없어도 그 소리만 들으면 얼어붙는다.
여기서부터 기막힌 연구 결과가 나왔다. 조슬린 팀은 태그를 붙여 둔 신경 세포, 즉 공포 기억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큰 세포만 미리 준비해 둔 방법으로 제거했다. 그러자 쥐는 그 공포를 유발한 소리를 들어도 더는 얼어붙지 않았다. 공포 기억이 뇌에서 지워진 것이다.
조슬린 팀의 연구 결과에 고무된 MIT의 야심만만한 2030 과학자 스티브 라미레스(Steve Ramirez)와 쉬 류(Xu Liu)는 기억을 지우는 대신 원할 때 불러내는 일, 즉 기억 ‘켜기’에 도전했다. 이들 역시 쥐에게 공포 기억을 심었다. 그 공포 기억이 일차적으로 저장되리라 짐작되는 뇌의 해마에 있는 신경 세포에 모종의 태그도 달아놓았다.
그렇게 공포 기억을 심은 쥐를 안전한 상자로 옮겼다. 그 상자에는 쥐를 겁에 질리게 할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쥐도 평소처럼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던 참이었다. 바로 그때 이들은 태그를 달아놓은 해마의 신경 세포에 자극을 줘서 활성화했다. 자극을 줄 때 쓰는 방법이 빛을 쪼이는 일이기에 ‘켠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와 흡사하다.
공포 기억이 들어 있는 신경 세포를 켜자마자 쥐는 갑자기 얼어붙었다.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공포 기억을 강제로 켜자 그 기억이 쥐를 사로잡았다. 둘은 같은 실험을 수차례 반복해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연구 결과는 2012년 『네이처』에 발표됐다. 특정 기억을 삭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켜는 일도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기억을 통째로 지우는 대신 그 기억에 묻어 있는 공포, 후회, 죄책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 덜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부정적 기억이 옅어질 때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예전에는 한번 뇌에 새겨진 기억은 좀처럼 바뀌지 않으며, 시간이 지나 옅어지는 것은 기억이 조금씩 지워지거나 새 기억에 밀려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런 식이라면 부정적 기억을 다루는 방법은 가능한 한 빨리 지워지도록 유도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연구가 거듭되면서 우리 기억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우선 과거의 부정적 기억은 생각보다 끈질기게 뇌에 남아 있다. 그렇다면 왜 시간이 지나면 그 날카로움이 무뎌질까?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잠시 불안정해졌다가 다시 저장된다(재공고화). 그런데 기억을 떠올리는 상황은 매번 다르다.
전쟁과 같은 혹독한 경험을 치렀던 어르신이 오랜 시간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자녀나 손자에게 그 기억을 들려주면 어떻게 될까? 애초 경험할 때의 끔찍함은 덜어지고 생활 감각에서 비롯된 여유가 덧붙는다. (‘혹독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쟁의 기억은 처음보다 훨씬 부정적 감각이 덜어진 상태로 매번 다시 기록된다.
과학자들은 (쥐가 아니라) 사람에게 이 원리를 적용해 봤다. 전기 충격으로 공포 기억을 심은 피험자에게 이튿날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10분 뒤 충격 없는 안전한 경험을 거듭 덧붙였다. 그러자 공포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고 효과는 1년 뒤까지 이어졌다. 기억에서 부정적 감정을 덜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셈이다.
기억 조작이 덮어버리는 것들
지금쯤 눈살을 찌푸리는 독자도 있겠다. 하다 하다 이제 기억까지 조작하다니! 이런 연구를 옹호하는 과학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처럼 부정적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범죄에 악용되거나 감당하기 싫은 기억을 회피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더구나 트라우마를 유발한 폭력이나 재난에 사회적 책임을 묻는 대신, 오직 개인의 뇌 신경망 문제로 환원해 버리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이번 빙하 붕괴 재난의 생존자를 다시 떠올려 보자. 만약 그가 알약 하나로 그날의 생생한 공포와 상실감을 깨끗이 지워낼 수 있다면 개인의 고통은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통과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나 다시는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연대가 자라날 수 있을까? 기억은 단순한 뇌 속의 신경 회로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고통의 기억을 완벽히 통제하고 삭제할 수 있는 세상은 어쩌면 인간의 정체성까지 조작하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