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길어지면 누구나 그 방에 들어선다. 고독이 먼저 들어와 앉아 있는 방. 중앙아시아를 떠돌던 어느 해, 투르크메니스탄 통과 비자를 받지 못해 발이 묶였다. 그 나라를 지나 제3국으로 빠져나간다는 걸 서류로 증명해야 닷새만 머물게 해주는, 인색하고 까다로운 비자였다. 관청 문턱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는지 모른다. 겨우 비자를 받아 든 날, 다리에 힘이 풀려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숙소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이토록 고단한 일이라니.
숙소에 들어서자 외로움이 마중 나왔다. 빈방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뉘엿했다. 곁에는 아무도 없고, 탁자엔 어제 마시다 만 콜라 한 병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외로움 아닐까? 제 발로 집을 떠나 사서 하는 이 고생이 웬 말인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침대 끝에 걸터앉아 돌아가는 길을 그려봤다. 정해진 날짜도, 끊어둔 비행기표도 없는 여행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짐을 싸 한국행 표를 끊으면 그만이었다. 종종 하던 상상. 그 상상은 그날만의 것도 아니었다. 즐겁고 흥겨운 날에도 외로움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고, 하루도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더 떠돌고 싶은 마음과 집이 그리운 마음, 그 둘이 쌍둥이처럼 내 안에 함께 있었다. 텅 빈 방은 두 마음이 정면으로 마주 앉는 자리였다.
외로움은 허기를 불러오곤 했다. 칙칙한 방을 벗어날 핑계 삼아 가까이서 군것질이라도 할 생각으로 방을 나서며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누가 내 뒷머리카락을 확 잡아챘다. 등골이 서늘했다. 방엔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돌아보니 정말 아무도 없었다. 나를 당긴 건 어깨에 멘 카메라 끈이었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이 카메라 끈에 당겨진 것이었다. 헛웃음이 났다. 외로움은 제 머리카락에도 기겁을 하게 만드네. 이렇게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었다. 여행이 이만큼 길었구나. 떠나올 때 챙긴 옷가지는 대부분 낡아서 버렸으니 몸에 걸친 건 전부 여행지에서 산 것들이었다. 비누는 몇 개째며, 손톱은 또 몇 번이나 깎았던가. 긴 시간을 혼자서 여행했으니 외로움이 비집고 들 자리는 넉넉했다.
세계 최초 히말라야 8천m급 고봉 열넷을 오른 메스너…
자신을 갉아먹는 고독과 채우는 고독에 이름 붙인 책
검은 고독, 흰 고독. 여행에서 수없이 겪고도 좀처럼 이름 붙이지 못한 야릇한 감정에 라인홀트 메스너가 붙인 이름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의 8천 미터급 고봉 열넷을 모두 오른, 살아 있는 등반의 역사다. 그의 책 『검은 고독 흰 고독』에는 나의 빈방과는 비교도 안 될 무시무시한 고독이 가득 들어차 있다. 에베레스트를 인류 최초로 무산소 등정하고 찬사가 채 식기도 전, 그는 6주 만에 다시 배낭을 멘다. 고작 15킬로그램짜리. 목적지는 낭가파르바트. 셰르파도 파트너도 산소통도 없이 단독 등반으로. 8년 전 눈사태가 동생 귄터를 삼킨, 그에게는 운명의 산이었다. 왜 하필 그 산이었을까. 동생을 잃은 자리로 혼자 되돌아가는 일은 애도 같기도 하고 형벌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는 동안 그는 다시 짐을 꾸렸다. 의지할 것을 하나씩 덜어내고 끝내 제 몸 하나만 남기는 방식으로. 오래 떠돈 여행자도 그 감각을 조금은 안다. 짐이 줄수록 외려 여행이 또렷해지던 순간들을.
단독 등반은 누가 대신 짐을 들어주지도, 앞서 길을 터주지도 않는다. 높이 오를수록 고독은 짙어진다. 길이 끊어지고, 산소가 모자라 환상과 현실이 뒤엉키고, 죽음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한다. 혼자라는 사실이 사람을 갉아먹는 것이다. 메스너는 이것을 검은 고독이라 불렀다. 그런데 책 속에서 그 고독이 어느 순간 빛깔을 바꾼다. 똑같이 혼자인데, 그것이 결핍이 아니라 충만이 되는 순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그를 무너뜨리는 대신 떠받치고, 도리어 더 큰 무언가와 하나가 되게 한다. 그것이 흰 고독이다. 같은 고독이, 하나는 사람을 부수고 하나는 사람을 채운다.
“고요에 이끌려 나는 슬며시 정상을 만진다. 나와 정상은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르다.”
정상과 하나가 됐다는 그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췄다. 그는 끝내 무언가와 하나가 됐구나. 돌이켜 보면 내 빈방이 그토록 검었던 건, 거기서 나는 무엇과도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과 떠나 있고 싶다는 마음이 한 몸 안에서 밤새 서로를 물어뜯었으니. 똑같은 고독이 그에게는 하나됨이었고, 내게는 갈라짐이었다. 메스너는 그 합일을 좇아 닿을 수 없는 곳을 스스로 올라갔고, 나는 빈방에서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선택한 고독과 밀려든 고독. 그런데 그 경계가 무너지던 자리들이 있었다. 혼자라는 사실이 나를 갉는 대신 채우던 자리들. 하나는 카자흐스탄의 톈산산맥이었다.
톈산산맥 깊숙한 곳 해발 3,500미터의 산장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나를 가득 채웠다
중앙아시아에 넓게 펼쳐진 톈산산맥 깊숙한 곳, 해발 3,500미터에 산장이 하나 있다. 차는 산 중턱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하루를 꼬박 눈을 헤치고 올라야 닿는 집. 해가 뉘엿해질 무렵에야 겨우 문 앞에 섰다. 살림이라곤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집이었다. 그런데 그 문턱에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본 순간, 하루치 피로가 싹 가셨다. 검붉은 바위산과 흰 눈과 하늘. 세상이 딱 세 가지로만 이뤄져 있었다. 그 드넓은 산역(山域)에 사람 사는 지붕이라곤 등 뒤의 산장 하나뿐이었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문명의 흔적은 눈에 단 하나도 걸리지 않았다. 전깃줄도 길도 먼 불빛도 없었다. 거기서 사흘을 묵었다. 일행이 둘 있었지만 그 흰 적막 속에서는 저마다가 혼자였다.
밤이 되자 기온이 곤두박질쳤고 하늘에는 별이 미어지게 돋았다. 고도 탓에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숨이 찼고 침낭 속에서 발가락을 아무리 비벼도 온기가 돌지 않았다. 그 추운 어둠 속으로, 멀리 바람이 산의 벽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지구가 갓 태어났을 무렵의 밤도 이런 소리였을까. 이상한 일이었다. 빈방에서 나를 갉아먹던 바로 그 혼자라는 사실이 여기에선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이 결핍이 아니라 충만함이 된다던 메스너의 말을 그 밤에 몸으로 알아들었다. 혼자 있음의 환희라니.
흰 고독의 정체를 한 번 더 배운 건 뜻밖에도 사람들 한가운데서였다. 미국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 900미터 수직 화강암 벽으로, 세계의 클라이머들이 성지로 떠받드는 바위다. 암벽에 입문한 지는 오래지만 실력이 여태 초보를 못 벗어난 나로서는 혼자라면 근처에도 못 갈 곳이었다. 내 밑천을 뻔히 아는 노련한 선배들이 원정대에 끼워준 덕에 겨우 바위 앞에 섰다.
고독은 곁에 있는 사람의 수를 세는 일이 아니라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 앞에 서는 일
등반은 애초에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의 몸을 자일로 묶고, 앞선 이가 로프를 걸어주고, 아래에서 확보를 봐준다. 우리가 오르려는 벽은 로프 길이에 맞춰 열세 번을 끊어 올라야 했고, 중간에 내려올 샛길이 없어 한번 붙으면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 어스름에 헤드랜턴을 밝히고 바위 밑동에 붙었다. 바위가 갈라진 틈에 손을 밀어넣어 몸을 끌어올렸고, 손가락 한 마디만 한 돌기에 발끝을 얹고 일어섰다. 발밑으로 허공이 수백 미터씩 깊어져 갔다. 겁 많은 나는 수없이 얼어붙었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사실이 점점 또렷해졌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정작 이 벽에는 나뿐이라는 것. 줄은 추락을 받아줄 뿐 이 한 뼘을 오르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았다. 얼어붙은 몸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도, 끝내 다음 손잡이를 붙드는 것도 오직 나였다. 밤이 돼서야 땅을 다시 밟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벅찼다. 거대한 벽을 함께 오른 일행이 있었어도 나는 온종일 완전하게 혼자였다.
메스너의 책을 다시 읽을 때 흰 고독이 조금 달리 읽혔다. 고독은 곁에 있는 사람의 수를 세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 앞에 서는 일이었다. 메스너는 셰르파도 파트너도 로프도 없이 그 고독을 통째로 살았고, 나는 자일에 묶인 채 그 한 조각을 훔쳐 배웠다. 그의 것에 대면 부스러기였겠지만 결은 같은 것이라 믿는다. 검은 고독은 빈방으로 밀려드는 것이었다. 흰 고독은 그렇게 제 발로 걸어 들어가야 만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