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시평AI 시대 한국경제 생산성 혁신의 조건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2026년 11월호
AI가 보고서를 쓰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연구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얼마 전까지 전문가의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던 일들이 이제 컴퓨터 화면 안에서 순식간에 이뤄진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한국경제의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 같다. 인구가 줄어들어도 생산은 늘어나고, AI가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 새로운 산업이 성장 동력을 제공하는 미래다. 그러나 같은 기술을 보며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청년 일자리가 사라지고 중산층의 기반이 흔들리며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미래다.

두 전망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AI가 미래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의 수준을 확인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기술 발전이 어떤 경로를 거쳐 사회적·경제적 성과로 이어지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기회를 얻고 누가 어려움을 겪는지 살펴봐야 한다.

AI가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한국에 특히 절실하다.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생활 수준을 높이려면 생산성을 끌어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성을 높여야 할 곳과 새로운 기술을 쉽게 도입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AI 도입 과정에서 경제에 새로운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AI의 성과가 한국경제의 오랜 과제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사이의 생산성 격차를 해소하고 경제 전반으로 확산돼 생산성 향상을 이끌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이 맥락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약한 고리(weak link)’다. 경제활동은 여러 작업이 연결돼 이뤄진다. 일부 작업을 아무리 효율적으로 수행하더라도 다른 작업이 병목으로 남아 있으면 전체 업무는 효율화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내는 속도가 획기적으로 단축되더라도 임상시험과 생산, 그리고 의료현장에 도입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AI가 회의 자료를 몇 초 만에 작성해도 검토와 결재에 몇 주가 걸리면 사업 판단은 빨라지지 않는다. 민원에 대한 답변 초안이 자동으로 만들어져도 그 이후의 여러 절차가 변하지 않으면 민원인이 답변을 받는 시간은 줄어들기 어렵다. 문서 초안이 빠르게 만들어지는 것과 업무 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효율화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AI 시대의 생산성과 경쟁력은 최고 성능의 모델을 확보하는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 생산과 서비스에 기술을 연결하면서 병목을 풀어내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반도체와 기술에 대한 투자가 경제의 토대를 강화한다면, 조직과 제도를 바꾸는 투자는 그 토대 위에서 실제로 성과가 나오게 하는 역할을 한다.

AI가 널리 도입되고 이용되는 상황에서 업무 현장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질문해야 한다. 핵심은 기존 업무에 AI를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입에서 산출까지 이어지는 업무 경로 전체를 재검토하고 일하는 방식 자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다. 이는 여러 기업에 기회이자 부담이다. 어떤 기업은 빠르게 성과를 낼 것이고, 높은 전환 비용을 치를 기업도 있을 것이고, 결국 도태될 기업도 있을 것이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변화와 역량 제고를 전제로 하는 면도 있다. 

우리는 앞선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는 능력을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이제 새 기술을 이용해 일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역량이 필요하다. AI가 보여주기 시작한 가능성을 사회와 경제 전체의 성과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한국의 미래 성장 과제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