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이란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일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지만, 실제 금융의 세계는 무척 복잡하고 변화도 빠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체 윤곽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금융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오늘날 매우 크고, 날로 커지고 있다. 세계경제, 국가경제 같은 큰 규모의 경제뿐 아니라 가계나 개인까지도 금융의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기 일쑤다.
금융을 알아야 위험을 피할 수 있다
최근 집값, 주식 값, 펀드 평가액의 폭락으로 전세계의 기관이나 개인 투자가들이 손실을 입는 걸 봐도 금융에 잘 대응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만만하지 않은 일인지 실감할 수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큰 빚을 져서라도 아파트를 사고 은행 예ㆍ적금을 꺼내 펀드에 투자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는데, 최근 한두 해 적극 투자한 경우는 명백히 금융의 파고를 잘못 읽은 소치였다.
그럼 금융을 안다는 사람들은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그렇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투자전문가 마크 파버(Marc Faber)는 이미 2007년 6월 20일 파이낸셜타임즈(the Financial Times)에 ‘전세계의 자산(주식이나 부동산 등) 거품이 마지막 단계에 와 있고 지금은 자산을 팔 때’ 라고 경고했다. 마크 파버는 1987년에 일어났던 미국의 주가 폭락 사태 ‘블랙 먼데이(Black Monday)’ 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견해서 국제 금융계에 나타나는 비관적 사태를 잘 예측한다 해서 ‘닥터 둠(Dr. Doom)’ 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이번 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그의 경고는 사실 진작부터 나온 것이었다.
마크 파버처럼 금융의 흐름을 볼 줄 알면 요동치는 금융의 파고 속에서 소리 없이 다가오는 위험을 피하는 능력이 높아진다. 그러니 경제에서 성공하려면 개인, 기업, 국가 할 것 없이 늘 금융의 흐름을 읽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
최근 주가 폭락으로 손해 본 투자자 중에는 주가가 ‘갑작스럽게’ 폭락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지만, 이번 폭락은 따지고 보면 예견할 수 없었던 게 아니다. 워낙 낙관적인 전문가 혹은 자신이 속한 금융회사의 이해 때문에 낙관적 전망을 남발하는 전문가들이 없지 않지만, 올해 경제에 위험이 많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관측도 분명히 있었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문제는, 금융이니 경제니 몰라도 얼마든지 아파트 사고 주식 사고 펀드 들어 돈 벌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투자의 세계에서는 별다른 전문지식 없이도 배포 있는 투기로 큰돈을 버는 이들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일수록 금융 상황에 급격한 변화가 올 때면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는 대열에서도 빠지지 않는 법이다.
경제적 위험의 주범, 금리
- 금리가 경기를 주저앉히는 이치
금융 상황이 급변해서 투자가나 기업 나아가 경제 전체에 찾아오는 위험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는 금리가 뛰는 것이다. 금리(interest rate)란 이율 혹은 이자율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남에게서 돈을 빌리면 그 대가로 이자를 치르는데, 이자가 원금의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 금리다.
이자는 금리가 높을수록 많다. 때문에 여윳돈은 항상 금리가 높은 쪽, 즉 이자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쪽으로 더 많이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런 뜻에서 금리는 금융을 촉진하는 엔진과도 같다.
보통 금융이 원활할 때는 금리가 높지 않다. 금융기관이 빌려줄 자금이 풍부하므로 기업들은 투자나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저금리로 쉽게 구하고, 가계도 쉽게 돈을 마련해 투자하고 소비한다. 투자, 소비가 왕성해져 생산과 고용의 규모가 커진다. 곧 경기가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금리가 오른다.
금융이 원활해서 화폐 공급이 늘고 신용이 팽창하면 부동산이나 에너지, 원자재, 귀금속 같은 실물상품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가 뛴다. 이 상황이 그대로 가면 경기가 꺾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쓰기 마련이다.
금리가 오르면 돈벌이 능력이 시원찮거나 빚을 많이 진 기업, 가계의 경제가 취약해진다. 갚아야 할 돈을 제때 갚지 못하는 기업이나 가계가 늘고,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빌려줬던 돈을 제때 못 받거나 떼이는 일이 많아진다. 나중엔 기업, 가계 심지어 금융기관조차 필요한 돈을 제때 마련하기 어렵게 된다. 금융이 원활히 되지 않는 것이다.
금융이 원활해야 투자와 생산, 소비가 활발히 움직여 경제가 활력을 유지하는데 금융이 원활치 않으니 투자, 생산, 소비가 부진해지고, 이어 판매와 고용도 부진해지면서 경기는 결국 침체할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도 문제지만, 단기적으로 더 큰 문제는 금융이 원활하지 않게 될 때 금리가 단기 폭등하곤 한다는 점이다. 금융이 원활치 않을 때는 자금을 구하는 이는 많은데 구할 길은 적기 때문에 신용경색(credit crunch)이 나타날 수 있다. 신용(信用)이란 간단히 말하면 돈을 빌려준다는 얘기인데, 신용을 얻을 길, 곧 돈을 빌릴 길이 막히고 굳는 게 경색(梗塞)이다. 바로 ‘자금줄이 막혔다’ 고 표현하는 상황이다.
신용경색은 반드시 경기가 나쁠 때만 생기는 현상은 아니다. 경기와 상관없이 금융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나타날 수 있고, 일단 나타나면 금리가 단기 폭등한다. 여느 때 같으면 기업들이 은행에서 연 10% 금리로 빌리던 돈을 20%, 30%의 고금리를 줘도 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 그러면 문제가 시작된다.
기업들은 흔히 상품을 만들어 팔고 미처 대금을 받지 못했더라도 원재료를 사들여 생산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생산비를 마련하기 위해 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고, 연중 이자를 무는 회사가 많다. 그런데 금리가 단기간에 너무 빨리 큰 폭으로 뛰면 금융비용 부담이 커진다. 수익에서 생산비를 제하고 금융비용까지 내고 나면 남는 이득이 줄고, 돈벌이마저 시원찮을 때는 이득이 더 적어진다. 이쯤 되면 기업은 투자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 생산 규모와 고용이 줄어든다. 그러면 가계도 자금 사정이 빡빡해져 소비를 줄여야 한다. 가계 소비가 줄면 판매가 줄기 때문에 기업은 생산 규모를 더 줄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금리가 오르면 투자와 고용, 생산, 소비, 판매 등 경제 전반이 잇달아 위축된다. 경제가 위축되면 기업의 돈벌이가 시원찮아지고, 그러면 금융비용 부담은 기업을 더욱 무겁게 짓눌러 상황을 악화시킨다. 결국 자금 수요가 줄면서 경기가 나빠진다. 신용경색이 심할 때는 이 과정이 한층 빠르고 격렬하게 진행된다. 금리는 폭등하고 경기는 급속히 주저앉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 신용경색이 나타나 금리가 폭등했다. 기업은 말할 나위 없고, 가계도 연 10%대였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단숨에 30%대까지 뛰어 큰 고통을 받았다. 지금도 그때처럼 신용경색과 금리 오름세가 나타나고 있다. 금리가 경기를 짓누르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