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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문가 기고AI 모델을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잘 쓰는나라‘가 AI 강국
박승훈 오마주 AI 대표, 재정경제부 인공지능자문관 2026년 08월호

40년 전 대한민국은 IT 불모지였다. 오랜 연구 끝에 1986년 국내 기술로 만든 전전자교환기(TDX, 교환원 없이 다이얼이나 버튼을 인식해 상대방의 번호를 찾아 통화를 연결하는 전자 장치) 고유 모델을 상용화했지만 세계 최초는 아니었다. 해당 분야의 강국도 아니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이 한참 앞서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머지않아 디지털을 세계에서 가장 잘 쓰는 나라가 됐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 답안에 AI 시대 대한민국의 전략이 들어 있다.

정부는 ‘AI 3대 강국’ 도약을 국가 비전으로 내걸었다. 방향은 옳다. 다만 ‘3위’라는 목표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거대 모델과 반도체, 데이터센터 같은 공급 역량의 순위 경쟁이다. 이 영역에서 우리는 또다시 미국과 중국을 뒤쫓는 추격자다. 추격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추격만으로 1등이 되기는 어렵다.

TDX의 교훈, 최초 개발이 아닌 보급과 활용이 핵심…
온 국민이 AI를 제대로 쓰면 잠재성장률 달라질 것

발상을 바꿔보자. 우리가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영역은 따로 있다. 바로 AI 리터러시, 즉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AI를 자기 일과 삶의 도구로 다루는 역량이다. 정부도 비전의 첫 번째 원칙으로 ‘모두를 위한, 사람 중심의 포용적 AI’를 내세웠다. ‘강국 3위’를 좇기 전에 ‘AI 리터러시 1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1980년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으로 TDX 개발에 참여했다. 우리가 만든 교환기는 세계 최초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그다음에 왔다. 국산 TDX가 전국에 깔리면서 만성적이던 전화 적체가 풀리고, ‘1가구 1전화’가 빠르게 현실이 된 것이다. 핵심은 ‘최초 개발’이 아니라 ‘전 국민 보급’이었다. 그렇게 깔린 인프라 위에서 대한민국은 초고속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에 올랐고, 디지털을 가장 잘 쓰는 나라가 됐다.

AI도 같은 길 위에 있다. AI 모델 1위가 아니라 그 모델을 가장 잘 쓰는 국민 1위인 나라가 진짜 강국이다. 전 국민 AI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다. 한 사람이 AI를 쓰면 생산성이 오르고, 온 국민이 쓰면 잠재성장률 자체가 달라진다.

이는 추상적인 통찰이 아니다. 정부의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첫 대표 과제가 바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이른바 ‘독파모’다. 2030년까지 우리 기술로 국산 AI 모델을 확보하겠다는 사업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모델도 쓰일 곳이 없으면 또 하나의 ‘공급 1위’ 경쟁에 그친다. 전 국민의 AI 활용 생태계, 그중에서도 시니어와 대학이 독파모의 든든한 내수시장이자 시험 무대가 돼야 한다. 더구나 시니어가 평생 쌓은 현장 지식은 미중 AI 모델이 갖지 못한 한국 고유의 데이터다. 모델을 ‘만드는’ 강국 3위 전략과 모델을 ‘쓰는’ 리터러시 1위 전략은 그렇게 하나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보급에서 가장 소외돼 있으면서도 가장 큰 잠재력을 품은 집단은 누구인가? 바로 시니어다. 대한민국은 2024년 말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하며 전체의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주목할 점은 이들 상당수가 여전히 일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경험을 살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할 뿐이다. 필자는 AI로 시니어 돌봄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며 그 잠재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시니어 AI 교육은 단순한 ‘사용법’ 강의여서는 안 된다. 핵심은 개인 맞춤 프로젝트다. 평생 쌓은 현장 경험과 도메인 지식(제조 노하우, 영업 감각, 행정 경험, 돌봄의 손길 등)을 AI에 녹여내는 작업을 시니어 본인이 주도하게 하는 것이다. 40년 경력의 숙련공은 자신의 판단 기준을 AI의 학습 데이터로, 평생 환자를 돌본 간호사는 돌봄 상담 AI의 검수자로 나설 수 있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던 암묵지가 AI 모델에 담기는 순간, 그 지식은 은퇴와 함께 사라지지 않고 사회의 자산으로 남는다. 

시니어를 ‘수혜자’에서 평생 쌓은 암묵지의 ‘생산자’로,
대학은 전 세대가 평생에 걸쳐 드나드는 열린 배움터로

이는 재정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복지 지출은 고령층이 소비의 대상으로만 머물 때 부담으로 쌓이지만, 그들이 생산의 주체로 돌아오면 성장과 세수의 기반으로 바뀐다. 초고령사회 재정이 지속 가능하기 위한 열쇠가 여기에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포용적 AI’의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다.

이 전환을 담아낼 무대로 대학만 한 곳이 없다. 다만 그러려면 대학의 역할과 정의부터 다시 써야 한다. 청년들을 4년간 가르쳐 사회로 내보내던 기존 교육 시스템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한계에 부딪혔고, 지방대학은 빈 강의실과 텅 빈 기숙사를 떠안은 채 존립을 걱정한다.

이제 대학은 ‘청년만의 대학’에서 ‘모두를 위한 대학’으로 나아가야 한다. 입학과 졸업으로 닫힌 공간이 아니라 전 세대가 평생에 걸쳐 드나드는 열린 배움터로 그 정의를 넓히는 것이다. 정부가 ‘모두를 위한 AI’를 말한다면 그것을 현실에서 가장 잘 구현할 장소가 바로 ‘모두를 위한 대학’이다.

구체적으로 대학이 시니어를 위한 학습·기숙 공간을 열고 AI 프로젝트를 매개로 청년과 시니어를 한 팀으로 묶어보자. 청년의 패기에 시니어의 경험이 더해지면 어느 한쪽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시너지가 생기고, 대학과 지역에는 새로운 활력이 돈다. 대학은 공간과 교육을, 지자체는 정주 기반을, 기업은 과제와 일자리를 맡는 3자 협력이면 충분하다. 정부는 그 마중물만 놓으면 된다.

정부가 인프라와 산업에 쏟는 의지의 일부만이라도 ‘사람’에게, 그중에서도 변화가 가장 절실한 시니어에게 돌린다면 가장 빠르고 넓게 효과가 퍼질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AI 3대 강국이 목표라면 그 토대는 AI 리터러시 분야의 세계 1위이고, 그 1위는 화려한 모델 경쟁이 아니라 시니어와 청년이 ‘모두를 위한 대학’에서 함께 배우고 만드는 세대 융합의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40년 전 TDX의 보급이 그러했듯 승부는 누가 먼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가장 널리 나누고 잘 쓰는가에 따라 갈린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AI 시대에 가장 먼저 1등을 차지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사람답게 나아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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