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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경제교육(종간)
도덕적 해이와 대리인 문제
이승훈/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2011.01.03

라면을 끓이려고 냄비를 가스 불에 얹어 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다가 친하게 지내던 반가운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오랫동안 적조했으니 급히 만나자고 한다. 너무도 반가워서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생각하니 가스 불을 켜둔 채 나온 것 같아서 불안하다.

이런 일은 누구나 실생활에서 흔히 겪는다. 어떤 사람은 되돌아가서 확인하고 어떤 사람은 껐겠지 하고 가던 길을 그냥 간다. 반드시 되돌아가서 확인하는 영이는 그렇게 하지 않는 철이보다 화재를 당할 확률이 당연히 더 낮다. 영이와 철이가 화재보험에 가입한다면 보험회사는 화재 위험도가 더 낮은 영이의 보험료는 할인해 줄 것이다.

문제는 보험에 가입한 뒤의 일이다. 일 보러 집을 나선 영이가 가스 불을 켜둔 채 나왔는지 끄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영이는 어떻게 행동할까? 평소에 반드시 되돌아가서 확인할 영이지만 보험에 가입한 이후에는 이전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불이 나더라도 모두 보상해주는 보험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처럼 보험 가입 후 조심성이 이완되는 현상을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고 한다.

그러나 보험회사는 영이의 조심성 높은 점을 인정하여 보험료를 할인해 주었다. 정작 보험에 가입한 뒤에 영이도 조심성 부족한 철이와 다를 바 없어진다면 보험회사로서는낭패다. 보험회사가 영이의 생활을 항상 관찰함으로써 평소
처럼 조심성 높게 생활하도록 관리할 수 있다면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관리는 불가능하다. 현실의 보험은 그 대신 도덕적 해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화재 발생 시 영이도 그 피해를 일부 부담하도록 하고 한 번 화재를 일으키면 그
다음의 보험 계약에서는 보험료를 인상하도록 한다.

도덕적 해이의 본질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일을 저지르는 사람(영이)과 일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보험회사)이 다르다. 둘째, 일이 잘못되지 않도록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최선을 다 했는지에 대해 일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은 파악할 수 없다. 도덕적 해이의 두 번째 본질을 정보 비대칭성(asymmetry of information)이라고 한다.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일 저지르는 본인은 알지만 일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은 모르는 비대칭적 구조를 지칭한다.

 

나의 부주의를 알리지 말라! 정보비대칭
정보비대칭성은 일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했더라도 그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게 만든다. 영이의 조심성이 이완된 탓에 불이 났더라도 이 사실을 입증할 수 없는 보험회사는 그 손실을 모두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일을 저지른 사람은 스스로 잘못하여 일이 잘못되었더라도 정보비대칭성의 뒤에 숨어서 면책의 특권을 누린다. 그러므로 일을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일이 잘되도록 최선을 다할 유인이 없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상황은 보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일을 감당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업무량이 많아지면 일부를 대리인에게 위임하기 마련이다. 대리인은 주인인 나를 위하여 일을 수행해주기로 약속하지만 나는 그가 항상 이 약속을 지키고 일하는지 파악할 능력이 없다. 예컨대 외근 나온 직장인은 일이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나더라도 바로 사무실로 돌아가서 회사 업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사적인 일로 친구를 만나거나 사우나를 즐기고 늦게 돌아가도상사에게 들키지 않는다. 이처럼 주인을 위하여 일하기로 약속한 대리인이 정보비대칭성을 이용하여 주인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시간에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챙기는 문제를 주인대리인문제(principal-agent problem), 또는 간단히 대리인문제(agency problem) 라고 부른다.

대리인문제 가운데 가장 널리 거론되는 것 중의 하나가 주식회사의 주주와 고용사장 사이의 관계다. 주주가 회사경영을 위임한 고용사장은 회사경영상태는 물론 자신이 어떻게 경영했는지를 잘 알지만 주주들은 모른다. 예컨대 부품조달 과정에서 다소 품질이 떨어지는 부품을 고용사장이 자신과 친분 있는 업체라고 해서 구입해 주더라도 주주들은 알 수가 없다. 고용사장이 이 점을 악용하면 기업에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고서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업경영의 대리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 기업지배, 또는 기업 거버넌스(corporate governance) 구조이다.

기업경영상의 대리인문제는 경영자가 정보비대칭성의 배후에 숨어서 기업에 해를 끼치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경영자만 아는 정보를 주주들도 알기 위하여 주주들은 이사와 감사를 선출하여 경영자를 감독한다. 경영자가 너무 많은 사적 이익을 빼돌리면 좋은 기업이라도 그 주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대리인문제만 제거하면 그 기업의 주가는 다시 오른다. 이 기업의 주식을 지금의 싼 값에 많이 사들여서 경영권을 장악하고 현재의 경영자를 내쫓은 다음 경영을 정상화하면 주가를 올릴 수 있다. 사들인 주식을 오른 주가에 내다 팔면 큰 차익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기업사냥꾼들은 대리인문제가 심한 기업을 사냥감으로 찾아다닌다. 이사회, 감사, 그리고 기업사냥꾼들의 활동은 경영자가 과도한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견제한다.

 

대리인을 감시하는 방법, 기업 거버넌스
최근에 빈발하는 금융위기도 금융기관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탓이 크다. 금융기관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돈을 모아서 대신 투자한다. 내 돈 10조 원을 투자한다면 더없이 신중할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10조 원을 투자한다면 달라진다. 좀 위험도가 높더라도 투자에 성공하면 내가 얻는 수수료 수입이 1천억 원인데 실패하면 내 지위만 잃으면 된다. 아무리 신중한 사람이라도 무분별한 투자의 유혹을 이기기 어렵다. 무분별한 투자가 많아질수록 실패하는 투자도 많아진다.

일은 내가 저지르는데 그 책임은 딴 사람이 진다면 일 저지를 사람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도덕적 해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확실한 거버넌스를 탐구하는 것은 현대 경제학의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shoonle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