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에는 박쥐 이야기가 나온다. 들짐승과 날짐승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어, 이 둘 사이의 전쟁에서 어느 쪽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그 박쥐 말이다. 증권에도 박쥐가 있다. 채권과 주식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그런 증권이다.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BW)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증권은 평소에는 이자와 원금을 지급하는 채권의 모습을 가진다. 하지만 이 채권을 발행한 회사의 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주식으로의 변신이 가능하다. 투자자는 주가상승에 따른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만기 5년에 이자 연 5%를 지급하는 전환사채에 10억 원을 투자했다고 해보자.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 채권은 전환사채이므로 일반적인 채권과 다른 권리가 하나 더 붙어 있다. 만기 내에 투자자가 원할 경우 1주당 2만 원으로 주식으로 바꾸어 준다는 것이다. 그럼 10억 원을 투자한 투자자는 평소에는 매년 5천만 원의 이자(연5%)를 받게 된다. 그러다 주식으로 바꾸고 싶으면 이를 회사에 요구한다. 그럼 회사는 투자자가 가지고 있던 10억 원어치 채권을 주식 5만 주로 바꾸어 준다. 미리 정해진 가격인 1주당 2만 원으로 계산하면 10억 원어치는 주식 5만 주가 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언제 주식으로 바꾸려 할까? 회사의 주가가 2만 원 아래로 형성되어 있을 때는 굳이 주식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그냥 이자만 받으면 된다. 하지만 회사의 주가가 2만 원을 넘어서 3만 원, 4만 원 이렇게 올라갈 경우는 2만 원에 주식으로 바꾼다. 시장에 내다팔면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채권과 주식에 양다리를 걸쳐서 이익을 볼 수 있으니 이솝우화의 박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주식과 채권의 양면성을 지니다
그럼 회사는 왜 박쥐 같은 양다리 증권을 발행할까? 오로지 고생하는 투자자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일까? 당연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과 주식의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일단 발행하면 잘 팔린다. 따라서 시장상황이 나빠져 회사가 일반 채권 발행만으로는 자금조달이 어려울 경우 투자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발행하는 것이다. 또한 일반 채권보다 낮은 이자로 발행할 수 있다. 이 역시 투자자에게 채권과 주식의 양면성이라는 특별한 권리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일반 채권보다 이자를 좀 더 낮게 책정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회사는 보다 수월하게, 보다 낮은 이자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에 이러한 증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생긴다. 박쥐 같은 이 증권은 왜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이렇게 둘씩이나 있을까? 그 이유는 주식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이 둘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환사채는 채권이 주식으로 직접 바뀐다. 즉, 채권이 사라지면서 주식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주인수권부사채는 다르다. 애초에 채권 위에다 ‘주식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이 권리란 돈만 추가로 더 내면 미리 정해진 가격으로 미리 정해진 수량의 주식을 받아올 수 있는 것으로 이를 ‘신주인수권’, 즉 ‘워런트(warrant)’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워런트를 사용해서 주식을 받더라도 기존의 채권이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때 ‘그럼 주가가 오를 것 같더라도 투자자가 여분의 돈이 없으면 워런트로 주식을 바꿀 수 없느냐’는 의문이 든다. 맞다.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수량을 받아올 때 추가적으로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주식을 받을 수 없다. 투자자 입장에선 ‘이런 제길! 말년에 또 돈이 들다니!’ 차라리 전환사채가 더 낫지 않을까 고민스럽기까지 한 대목이다. 그래서 회사는 투자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즉, 투자자가 주식으로 바꾸겠다고 하면, 회사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채권 원금을 투자자에게 갚아준다. 그럼 투자자는 그 돈을 받아서 워런트를 행사하고 주식을 받는 것이다.
이를 정리하면, 전환사채는 채권이 자동적으로 주식으로 바뀌게 되어 ‘채권은 없어지고 주식이 생기고’,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을 상환해서 그 돈으로 주식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결국 과정은 조금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채권이 없어지고 주식이 생긴다는 점에서 이 둘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변신하는 기능이 일체형인 반면,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주식으로 변신하는 기능이 별책부록처럼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워런트가 별책부록 같은 성격이므로 따로 떼어 내어 제3자에게도 팔 수가 있다. 이렇게 워런트를 따로 떼어낼 수 있는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특히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이하 분리형)라고 부른다.
|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금지
우리나라에서 분리형이 발행할 수 있게 된 것이 1999년 1월부터다. 당시 금융당국은 회사들의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전환사채보다 유리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이것을 허용한 것이다. 분리형은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인 워런트를 채권에서 떼어내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기능이 하나 더 있기 때문에 보다 더 낮은 금리로 발행이 가능했다. 따라서 미래 성장성이 있는 회사의 경우 분리형이 자금조달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특히 주식시장 폭락기에 발행된 분리형은 다시 주가가 회복하면서 투자자에게도 큰 수익을 안겨 주었다. 채권은 정해진 수익만 얻을 수 있지만, 따로 떼어 팔 수 있는 워런트는 회사의 주가가 다시 상승하면 굳이 주식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워런트 자체로만 프리미엄이 붙어서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기아자동차가 발행한 ‘분리형’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당시 공모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기아자동차 주가상승에 힘입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2013년 8월부터 상장회사에서 ‘분리형’을 발행하는 것이 금지됐다. 회사 대주주가 편법으로 자녀들에게 지분을 상속하는 데 ‘분리형’을 악용하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제3자에게 따로 팔 수 있는 워런트를 다름 아닌 대주주들의 자녀들에게 사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워런트를 보유하고 있다가 필요한 경우 주식으로 바꾸어 대를 이어 대주주가 되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회사가 성장해 과거 ‘분리형’ 발행 때보다 주가가 더욱 상승한 상태라면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 되는 셈이다.
금융당국의 입장에서 당연히 이런 폐해를 막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의 편법 지분상속 방법이 이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감독을 엄격히 해서 이런 행위만 잡아내면 되지 ‘분리형’ 발행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좀 과하지 않았냐는 의견도 적지 않다. 1999년에 금융당국이 발행을 허용하면서 내세웠듯이 ‘분리형’이 미래 성장성이 있는 회사들의 자금조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적어도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분리형’이 15년간의 영욕(榮辱)의 세월을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금융당국의 규제가 현시점에서 적절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다만 1999년 이래 좋은 취지에서 허용되었던 ‘분리형’ 발행 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편법 상속 등으로 악용되어 사회 문제를 일으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금지된 제도를 어떻게든 악용해서 또 다른 기형적인 편법이 성행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김의경 금융칼럼니스트 / erniekim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