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일정한 유형의 소리들이 단어 첫머리에서 잘 실현되지 못하는 제약이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두음법 칙(頭音法則)’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표기법을 알아보기 전, 두음법칙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말에는 단어 첫머리에 둘 이상의 자음군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영어 ‘strike[straik]’를 보면 첫머리 에 자음이 세 개까지도 나타납니다. ‘스트라이크’와 같이 우리식으로 소리를 내면 첫머리에 자음이 하나만 오는 것 과 대조됩니다. 둘째, 우리말에는 단어 첫머리에 [ㅇ] 소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ㅇ’이 받침으로 쓰일 때만 소리가 난다는 것은, 달리 말해 첫소리에서는 실현이 안 된다는 말이고 단어 첫머리에서도 실현되지 않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현상도 두음법칙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셋째, 우리말, 특히 한자어의 단어 첫머리에서는 [ㄹ]이 발음되지 못하고 [ㄴ]으로 소리가 바뀝니다.
예를 들어, ‘老人’을 본음으로 적으면 ‘*로인’이지만 첫머리에서는 [ㄹ]이 발음되지 않으므로 ‘노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어 첫머리에 나오는 [ㄴ] 또한 모음 ‘ㅣ, ㅑ, ㅕ, ㅛ, ㅠ’ 등의 앞에서는 탈락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즉, ‘料金’ 은 본래 ‘*료금’이지만 ‘*뇨금’으로 바뀌었다가 최종적으로는 ‘요금’이 되는 것입니다. ‘女子’는 ‘*녀자’에서 바로 ‘여자’로 바뀐 것입니다. ‘녀석’이나 ‘로봇’처럼 고유어나 외래어에는 원칙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말의 두음법칙은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 는데, 한글맞춤법과 관련이 깊은 것은 셋째에 해당합니다. 한글맞춤법에서는 한자 원음 ‘ㄴ’이 ‘ㅇ’으로 바뀌는 경우, ‘ㄹ’이 ‘ㄴ’을 거쳐 ‘ㅇ’으로 바뀌는 경우, ‘ㄹ’이 ‘ㄴ’ 으로 바뀌는 경우로 나눠 다음과 같이 표기법을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ㄹ’이 단어 첫머리에 나오지 않는데도 ‘신혼려행’으로 적지 않고 ‘신혼여행’으로 적습니다. 이 말은 ‘旅行’이 먼저 두음법칙의 적용을 받아 ‘여행’으로 바뀐 다음 ‘신혼’과 합쳐진 것입니다. ‘會計年度’도 마찬가지입니다. ‘年度’가 우선 두음법칙을 적용받아 ‘연도’로 바뀐 후에 ‘회계’와 결합한 것이므로 ‘회계연도’로 적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단어 첫 머리에 나오지 않았더라도 두음법칙을 적용한 것입니다.
‘렬(烈, 列…)’, ‘률(律, 率…)’과 같은 말들은 단어 첫머리에 나오지 않더라도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질 때 는 ‘열, 율’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출산율’이 맞고 ‘*출 산률’은 틀리는 것입니다. 반면, ‘出生率’은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경우가 아니므로 한자 본음에 따라 ‘출생률’로 적어야 합니다. ‘량(量)’, ‘란(欄)’도 단어 첫머리에 나오지 않아도 고유어나 외래어 뒤에서는 ‘구름양, 알칼리양’, ‘어린이난, 스포츠난’과 같이 두음법칙을 적용합니다. 한자어 뒤에서 는 ‘산소량’, ‘경제란’과 같이 본음을 살려 적습니다.
끝으로 ‘릉(陵)’은 ‘능지기, 능마루’와 같이 단어 첫머리 에 나올 때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지만 ‘선릉, 태릉, 서오릉’처럼 특정 무덤의 이름으로 쓰일 때는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태릉, 선릉, 서오릉’을 [태능, 선능, 서오능]으로 발음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표기에 맞게 발음도 [태릉, 설릉, 서오릉]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