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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양구의 과학토크비만 치료제가 바꿀 욕망의 지도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6년 04월호

요즘 한 가지 고약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지인 가운데 갑작스럽게 살이 빠진 이가 보이면 슬쩍 물어본다. “맞지요?” 그러면 100%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위고비(Wegovy)? 마운자로(Mounjaro)?” 어느새 대세는 마운자로로 기운 듯하다. 조금 흥이 오르면 위고비와 마운자로를 직접 경험해 본 후기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무슨 말인지 아직도 감이 안 오는 독자라면 평생 살찔 걱정은 해본 적 없는 사람일 것이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매주 주사 한 방으로 식욕을 억제해 마치 위를 절제한 것과 비슷한 정도로 체중 감소 효과를 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약이다. 위고비가 2021년 6월, 마운자로가 2023년 11월에 비만 치료제(제품명 젭바운드)로 승인받았다.

사실 두 약 모두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나왔으나, 각각 3년 6개월(위고비)과 1년 6개월(마운자로)의 시차를 두고 체중 감량 효과에 초점을 맞춘 비만 치료제로 승인받은 것이다. 임상시험에서 위고비는 체중을 평균 15% 안팎 감량했고, 마운자로는 무려 20% 이상 감량에 성공했다. 내가 만난 지인 여럿의 갑작스러운 체중 감량이 그 생생한 증거다.

‘기적의 다이어트약’으로 홍보되는 위고비와 마운자로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도 이들이 어떤 원리로 체중을 줄이는지 물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가능한 한 쉽게 들려줄 생각이다. 한 가지 귀띔하자면, 앞으로 10년쯤 후에는 살이 찌지 않은 사람도 정기적으로 위고비나 마운자로 성분의 알약을 계속해서 복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식욕 스위치를 고정하는 ‘가짜 열쇠’
어제 회식 때 과식했던 김 과장의 몸에서 일어난 일을 살펴보자.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를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포만감이 든다. 그 포만감은 장에서 나오는 인크레틴(Incretin) 계열 호르몬이 만든다. 인크레틴 호르몬은 뇌의 시상하부를 비롯한 여러 영역을 자극해서 ‘배가 부르니 그만 먹어!’라는 신호를 보내고,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을 분비함으로써 혈당을 조절한다.

상당수의 경우 이런 포만감이 금세 사라지고 다시 음식에 손을 대 끝내 과식하게 된다. 이유가 있다. 배가 어느 정도 찼을 때 분비되는 인크레틴 호르몬은 단 2~3분 만에 분해돼 아주 짧은 시간 머물다가 곧바로 몸속에서 사라진다. 소주 한 잔을 더 따르는 그 짧은 망설임의 순간에 호르몬은 자취를 감추고, 우리는 다시 젓가락을 들게 된다. 결과는 과식과 지방 가득한 복부 비만이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한 과학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대담한 도전에 나섰다. 인크레틴 호르몬 가운데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 ‘GLP-1(Glucagon-Like Peptide-1)’과 비슷한 구조의 유사체를 만들어 몸에 넣어본 것이다. 이 인공 호르몬은 몸속에서 처음에는 하루, 나중에는 일주일까지 파괴되지 않고 지속하도록 개량됐다.

그렇게 등장한 GLP-1과 비슷한 인공 호르몬이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다. 그리고 이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상품명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위고비다. 비유하자면, 우리 몸속 식욕 조절 스위치(GLP-1 수용체)에 딱 맞는 진짜 열쇠(GLP-1) 대신에 그것과 흡사한 가짜 열쇠(위고비)를 만들어서 오랫동안(약 일주일) 그 스위치를 ‘배부름’ 상태로 잠가두는 것이다.

위고비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맞으면 포만감 상태가 계속 유지되니 식욕이 당길 리가 없다. 식욕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체중도 감소한다. 이것이 위고비를 맞고 나서 체중이 줄어드는 비결이다. 비슷한 원리의 ‘삭센다(Saxenda)’에 이어 위고비까지 만들어낸 노보 노디스크는 한때 주가가 엄청나게 오르면서 시가총액이 덴마크 연간 GDP를 넘어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시점에 이미 비슷한 원리의 또 다른 약이 개발 중이었다. 인크레틴 호르몬 가운데는 GLP-1뿐만이 아니라 GIP(Glucose-Dependent Insulinotropic Polypeptide)도 있다. GIP 역시 GLP-1과 함께 작용해 몸속 지방 조직의 대사를 개선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도 나오자마자 몸속에서 짧은 시간 안에 파괴된다.

세계적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한 과학자는 GLP-1의 스위치뿐만 아니라 GIP 스위치까지 ‘배부름’ 상태로 고정하는 인공 호르몬을 몸속에 넣을 방법을 고안했다. 이렇게 GLP-1과 GIP 두 가지를 동시에 공략했더니 결과는 놀라웠다. 식욕 억제(GLP-1)에 더해 지방을 태우는 에너지 소비 효율까지 높여 시너지가 커졌다. 게다가 위고비를 투여했을 때의 부작용인 메스꺼움도 완화했다.

이렇게 세상에 등장한 인공 호르몬이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이고, 이 성분의 신약이 바로 마운자로(혹은 젭바운드)다. 식욕 억제에 지방 연소 효과까지 장착한 마운자로는 위고비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크고(최대 20% 이상) 부작용(메스꺼움)이 적어 더욱더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시장의 강력한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주인공이다.

체중 감량을 넘어 뇌까지 재설계한다?
위고비나 마운자로는 비만을 유전의 결과나 개인의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일종의 질병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임상 시험을 하던 중에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이 약을 투여받으면 식탐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갈구하던 다른 욕망도 사그라지는 증상이 나타났다. 술꾼이 알코올에 시큰둥해하고 도박이나 게임에 몰입하던 사람도 그 욕망이 시들해졌다.

명확한 이유는 아직 연구 중이다. 위고비나 마운자로가 보낸 가짜 신호가 식탐을 관장하는 뇌의 시상하부나 도파민이 나오는 보상 회로 같은 곳을 자극해서 다른 중독에도 시들하도록 이끄는 것일까? 위고비나 마운자로와 비슷한 원리의 약이 각종 중독 치료,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같은 정신 질환 치료제로 변신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또 다른 인상적인 연구 결과도 있다. 위고비나 마운자로가 뇌세포의 대사를 활발하게 자극하면서 염증 반응과 단백질 찌꺼기를 줄여주는 효과도 관찰되고 있다. 최근 의학계에서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약을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예방하거나 그 진행 속도를 늦추는 용도로 사용해 보려는 시도가 진행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여러 제약사가 이들 약물을 위산에 녹지 않고 제대로 몸에 흡수되는 알약 형태로 개발 중이다. 만약 이런 시도까지 성공한다면 각자의 용도에 맞게 누군가는 체중 관리를 위해서, 누군가는 당뇨나 고지혈증 예방을 위해서, 또 누군가는 중독 치료나 치매 예방을 위해 위고비나 마운자로를 하루에 한 알씩 먹는 일이 가까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미래를 놓고서 엉뚱한 상상도 해볼 만하다. 체중 관리를 위해 마운자로를 투여받고 있는 지인이 있다. 그는 모든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약을 투여받고 나서 말수가 적어졌단다. 일종의 의욕 상실! 모두가 알약을 먹으면서 살짝 소심해진 상태로 살아가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욕망이 거세된 건강은 과연 축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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