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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자전거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것, 꿈도 원래 그렇게 이뤄가는 것
김세윤 방송작가 2014년 07월호

 

자전거는 두 바퀴로 굴러갑니다. 물론 외발 자전거, 세발 자전거, 더러는 네 바퀴 자전거도 있어요. 하지만 두 바퀴로 굴러가는 자전거가 가장 흔합니다. 자전거를 굴리는 건 두 발이죠. 물론 한쪽 다리 잃은 사람도 자전거 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발로 굴리는 풍경이 가장 흔합니다. 국어사전도 자전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어요.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림으로써 움직이게 하는 탈것’. 


영화 <와즈다>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와즈다(와드 모하메드 분)의 두 발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한 건 그 때문일 겁니다. 모두 검정색 단화만 신고 걷는 또래 아이들 틈에서 홀로 캔버스 운동화 신고 걷는 와즈다. 녀석의 작고 야무진 두 발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해내는지 지켜보라는 뜻이죠. 무엇을 밟고 무엇을 움직이고 무엇을 바꿔 가는지.  

 

자, 여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자들이 자전거 페달에 두 발을 얹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나라. 그 땅에서 나고 자란 10살 소녀 와즈다는 이웃집 소년 압둘라(압둘라만 알 고하니 분)의 자전거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녀석이 히잡을 빼앗아 달아나도 자전거가 없어 따라잡지 못하는 게 화가 납니다. 히잡을 쓰지 않고 학교에 왔다고 자신만 혼내는 선생님 때문에 더 화가 납니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앞으로도 계속 여자로 살아가야 하는 게 제일 화가 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뾰로통하던 와즈다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도네요. 단골가게 앞. 주인을 기다리는 새 자전거. 예쁘고 날렵한 초록색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자기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압둘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질주를 상상해 봅니다. 상상만으로도 짜릿합니다. 저 자전거, 꼭 손에 넣어야겠습니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졸라봤지만 소용없어요. 여자가 자전거 타면 아이 못 낳는다며 절대로 안 사주신대요. 그럼 스스로 돈을 마련해야죠. 밤새 팔찌 만들어 선생님 몰래 아이들에게 팝니다. 비밀 연애하는 커플 심부름해주고 수고비도 받습니다. 하지만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 자전거 값 800리얄에 턱없이 모자라는 돈만 모였습니다. 


 

그때였어요. 눈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 들려온 것은. 학교에서 코란 퀴즈대회가 열린답니다. 상금이 무려 1000리얄! 자전거를 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5주! 문제는 와즈다가 이 학교에서 코란의 가르침을 가장 가벼이 여기는 학생이라는 사실. 와즈다에겐 이 세상에 코란보다 지루한 책은 없다는 사실. 그런데도 코란 퀴즈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까요? 설마 우승을 하게 될까요? 그래서 자전거를 사게 될까요? 설령 그리 된다 한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자가, 자전거를, 마음껏 타고 다닐 수 있을까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문화권 중에서도 유난히 엄격한 율법을 따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성에게만 유독 가혹한 율법이죠. 영화에서도 와즈다의 반 친구는 스무 살 넘은 남자와 결혼하죠. 아직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인데 그렇습니다. 우연히 남자와 눈이 마주쳐도 손가락질 받는 건 여자. 자기 집 창문 열고 바람 쐬다가도 다른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숨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나라. 여자는 자동차도 운전할 수 없어요. 와즈다 엄마가 매일 직장까지 남의 차 얻어 타며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끝내 직접 운전할 엄두는 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창문으로 가려진 자동차 운전석에도 앉지 못하는데 고스란히 몸을 드러내고 타는 자전거가 허용될 리 없죠.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은 자전거를 탈 수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영화 <와즈다>가 세상에 공개되기 전까지는. 

 

2013년 4월, 사우디아라비아 권선징악청(이런 정부부처가 실제로 있다네요)은 “앞으로 여자도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발표합니다. 온전히 영화 한 편의 힘, <와즈다>의 힘이었죠. 와즈다의 자유로운 질주를 응원하는 전 세계 관객들이 한목소리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를 압박했고 마침내 이슬람 율법의 견고한 벽에 의미 있는 틈 하나를 만든 거예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때론 영화 한 편이 이처럼 세상의 작은 풍경 하나를 바꿔 놓기도 합니다. 그렇게 바뀐 작은 풍경들을 차곡차곡 이어붙이면 결국 세상의 큰 그림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거겠죠.

 

<와즈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촬영한 최초의 장편영화입니다. 영화를 만든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감독이죠. 극장이 없고 영화 상영 자체가 금지된 나라에서 감히 영화를 꿈꾸고 기어이 그 꿈을 이룬 감독. 그녀에게 영화란 와즈다의 자전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든 꿋꿋하게 카메라를 움켜쥔 감독의 두 손은, 자신의 꿈이 쓰러지지 않도록 열심히 페달을 밟는 와즈다의 두 발을 닮았습니다. 사람들 시선을 피해 자기 집 옥상에서 몰래 자전거를 배우고 익히는 와즈다의 모습은, 위협하는 남자들을 피해 차 안에 숨어 무전기로 연출을 지시한 감독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전거 타는 건 힘이 들죠. 자신의 두 발로 쉼 없이 페달을 밟아야 겨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자동차, 기차, 비행기 같은 탈것을 움직이려고 땀을 뻘뻘 흘릴 일은 없습니다. 자전거랑 제일 비슷하게 생긴 오토바이도 속도 좀 높인다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진 않죠. 하지만 자전거는 온전히 사람의 힘만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빨리 달릴수록 더 숨이 차고 땀이 납니다. 바로 그 이유로 어떤 이는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어떤 이는 자전거만 타고 다닙니다. 자전거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 꿈은 원래, 그렇게 이루어 가는 겁니다.

 
쉽게 이룰 수 있는 꿈은 없습니다. 쉽게 바뀌는 세상도 없습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데도 악착같이 페달을 밟는 용기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어떤 이의 꿈이 균형을 잡을 때까지 뒤에서 붙잡고 함께 달려 줄 친구도 필요합니다. 페달을 밟는 와즈다의 두 발이 참 야무져 보입니다. 와즈다와 함께 달리는 압둘라의 미소가 참 예뻐 보입니다. 따르릉 따르릉, 신나게 달리는 아이들의 자전거가 어른들의 편견을 향해 비키라고 소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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