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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의 저성장, 일본과는 다르다… 성장의 핵심은 건설업과 관광산업 육성”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6년 04월호
                              

1990년대 초 일본경제의 버블이 꺼질 무렵, 현지에서 누구보다 앞서 일본의 저성장을 연구한 학자가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역임하고 30년 넘게 일본을 공부해 온 김현철 서울대 교수는 학자로서 소망이 있다면 “한국이 일본처럼 저성장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나에노믹스로 저성장의 늪을 탈출하려는 일본의 이야기와 일본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직접 경험한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최근 한일경제를 비교한다면.
포스코 장학재단의 도움으로 199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을 배워 오라는 게 당시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의 부탁이었다. 그땐 나고야시가 속한 아이치현의 GDP가 우리나라 GDP보다 높았을 정도로 일본경제가 호황이었다. 하지만 유학 간 순간부터 일본경제는 급격히 무너졌고 지금까지 30년 넘게 헤매고 있다. 그 사이 한국은 한강의 기적에 이어 1990년대 세계화의 기적을 통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2024년 기준 우리가 일본의 1인당 GDP를 추월했고 최근에는 1인당 순자산액도 높다.

사나에노믹스는 아베노믹스를 계승한다고 하는데, 적극 재정과 산업 성장을 축으로 하는 사나에노믹스가 아베노믹스와 다른 점은?
아베노믹스는 재정정책보단 통화정책이 중심이었다. 그것도 강력한 양적 완화 등으로 디플레이션에 빠진 경제를 부양하려 했다. 아베는 돈을 풀어 환율을 약세로 전환하려 했는데,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는 동안 고환율이 일본경제를 한 번씩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아베가 의도한 엔화 약세는 수출 대기업의 실적을 올리고 주가를 상승시켰지만 수입 물가도 함께 상승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가계를 압박하는 반작용이 발생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시다 정권에서는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하는 임금 주도 성장 정책을 시행했다. 엔저로 혜택을 본 대기업에 임금을 올리도록 해 어떻게든 실질임금을 높이고 자영업자 등에도 낙수 효과가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다카이치도 기시다-이시바 정권의 흐름을 이어받아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의 선순환을 만들려 한다.

앞으로 사나에노믹스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한다면?
자민당은 기존 여소야대 국면을 벗어나고자 더욱 강경한 보수파인 일본 유신회와 손을 잡았다. 이들은 경제 온기가 덜 도달한 이들을 위해 소비세를 면제하는 감세 정책을 요구했다. 적극 재정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건 좋은데 감세까지 하면 재정은 어떻게 충당할지가 다카이치 내각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일본 예산안은 크게 국채비용, 고령화 등 복지비, 지방 교부금, 산업 육성 등 네 부분으로 나뉜다. 소비세 감세로 세수는 줄고 부채는 느는 상황에서 방위비까지 증액하면 성장산업 육성이 제대로 될지가 또 하나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강한 일본’을 꿈꾸는 일본의 대외정책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2012년 아베 집권 이후 강경 보수파의 안보정책은 일관돼 왔다. 다카이치는 대만 발언 등으로 중국과의 갈등을 키웠고 우경화된 일본의 강한 지도자로 거듭나 총선에서 압승했다. ‘보통국가 일본’이라고 하는 건 일본이 강력한 군사력을 통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겠다는 표현이다. 강경 보수파는 기존 GDP의 1%였던 방위비 예산을 2% 이상으로 늘리고 군사력을 갖지 못하도록 규정한 「헌법」을 개헌해 자위대를 국군화하려 한다. 동북아 정세는 아직까지 문제없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 중이고 미국·이란 전쟁마저 발생하며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아베는 일본의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위해 미국과 함께 중국을 봉쇄하는 대외정책을 펼쳤다. 이전 정부에서는 한국이 이에 동참해 한·미·일 삼각 연대가 북·중·러와 대립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개방형 통상국가인 우리에겐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한 시장인데, 당시 아베가 설계한 구도로는 한국이 지정학적 대결 구조의 첨병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지금 정부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라는 목표하에 친일·반중 같은 편향된 노선을 택하지 않고 있다. 국제 관계라는 게 한쪽 손은 주먹을 쥐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악수를 하는 것이다. 미국도 중국과 대립 중이지만 완전히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하기보다는 계속 거래를 하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피보다 진한 게 돈이다(웃음). 

사나에노믹스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사나에노믹스가 지원하는 17개 산업은 대부분 우리와 경쟁 분야다. 하지만 미중이 경쟁하며 협력하듯 우리도 일본과의 경쟁 속에서 협력 분야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수소차 육성은 전기차 다음으로 각광 받는 분야다. 한일 양국은 수소 연구개발(R&D)의 핵심 국가이므로 수소 공동 육성 등에 협력하면 글로벌 수소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의 주요 과제인 저출산·고령화는 일본도 앞서 했던 고민이기 때문에 일본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배우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 기업이 일본과 협력할 때 중요한 점이 있다면.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간파했듯 꽃도 있지만 칼도 있는 일본의 이중성을 이해해야 한다. 교류라는 것은 지피지기다. 한국의 ‘우리가 남이가?’와 달리 일본은 친절하고 웃는 얼굴 뒤에 칼도 숨기고 있다. 2024년 네이버 라인 사태(일본 정부가 보안사고를 이유로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압박하며 촉발된 경영권 및 기술 유출 갈등)와 같이 과거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무조건적인 협력만으로는 안 된다. 협력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경쟁할 부분은 또 다른 전략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저성장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을까?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과 달리 아직 한국은 저성장 탈출의 희망이 있다. 지난해 성장률이 갑자기 1%대로 추락한 만큼 추경 등을 통해서라도 한국경제를 끌어올려야 한다. 지난해 추경으로는 성장률을 0.8%에서 1%까지밖에 끌어올리지 못 했는데 올해는 더 강력한 정책으로 어떻게든 성장률을 2%대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을 제언한다면.
지금 우리 정부는 기술 주도 성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I와 같은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겠다는 건데, 이 성장의 결과는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단기 성장 엔진으로 장착한 게 주가 부양이다. 이로써 장단기 성장정책이라는 제1, 제2의 엔진은 갖췄는데 중기 발전이라는 제3의 엔진이 빠져 있다. 제3의 엔진 중 하나가 건설업이다. PF 대출과 부동산 규제가 강화되면서 위축된 건설 투자를 끌어올리고 계획한 신도시를 신속히 착공하는 등 건설경기를 빠르게 진작해야 한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중요성을 많이 간과하고 있는 관광산업의 육성이다. 과거 아베는 엔저를 활용해 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관광을 일본경제의 주춧돌로 만들었다. 일본의 주력이었던 전자산업이 무너졌기에 이제 관광산업은 자동차산업과 함께 일본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우리도 원화 가치가 하락한 지금이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좋은 때다. 

우리 관광산업은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
일본의 관광산업이 성공한 이유는 고객 관점으로 시스템을 재설계했기 때문이다. 도쿄만 가는 관광객으로는 관광산업을 부양할 수 없다. 결국 지방을 키워야 하는데, 그 방안으로 지역을 클러스터로 묶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역 관광산업을 육성한다고 하면 부산은 부산대로 경주는 경주대로 진흥안을 내놓는데, 일본은 오사카-교토 존, 후쿠오카 존 등으로 클러스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후쿠오카 내 골프 여행 코스, 식도락 맛집 코스, 온천 휴양 코스 등 특화된 프로그램을 내놨다. 그 결과 관광객이 1천만 명에서 3천만 명으로 급등할 수 있었다. 우리도 클러스터를 만들고 테마별 관광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필요하다.

올해 대표 간사로 임명된 민간 협력체 ‘한일 포럼’은 어떤 곳인가.
1994년 이후 매년 개최된 한일 포럼은 학자, 기업인 등 다양한 구성원이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한 협력 사업 등을 양국 정부에 제언한다. 올해는 한일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은 만큼 더 안정적인 한일 교류협력 관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특히 올해와 내년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30주년을 앞둔 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에 손을 내밀면서 오랜 기간 악화됐던 한일 관계가 좋아졌는데, 선언 30주년을 기념해 내년까지 협력 방안을 구체화해 한일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계획이다. 
 
오성록 『나라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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