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공무원……. 올 여름 서울시청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에너지를 아끼려 이런 파격적인 복장을 구상하게 됐단다. 서울시는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을 벌이는데 공무원부터 앞장서야 한다며 이런 결단을 내렸다. 물론 강제 복장 규정은 아니고 이런 파격적인 옷차림도 허용한다는 차원이다.
원전에 대한 종합적 시각
원자력 발전은 대체로 석유·석탄을 연료로 쓰는 화력발전보다 발전 단가가 훨씬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발전소(이하 원전)를 지을 때 뭉칫돈이 들긴 하지만 그 후엔 우라늄을 활용하여 싼값에 전력을 생산한단다. 매연·분진 등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장점도 지녔다고 원전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원전 반대론자들의 반대 근거도 만만찮다. 원전이 폭발하거나 방사능 누출사고가 일어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3월 11일 일본에닥친 동일본대지진, 쓰나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등 대재앙에서 그 사례를 확인한 바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탈핵 여론이 거세지면서 선진국들은 잇따라 원전 폐기를 발표했다. 독일은 ‘2022년 무(無) 원전 시대 ’를 선언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사건을 교훈 삼아 안전성을 더욱 강화하면 된다. ”면서 “올해엔 원자력 기술 100% 를 우리 힘으로 이룰 수 있게 돼 세계 원전 5대 강국에 들어간다. ”며 원전산업 육성론을 펴고 있다. 선진국의 탈(脫)원전 흐름을 ‘원전수출 기회 ’로 보는 것이다.
이런 민감한 상황에 출판된 『원전 없는 미래로 』라는 책은 원전에 대한 종합적인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먼저 저자인 이이다 데츠나리 (飯田哲也) 일본 환경에너지정책연구소 (ISEP) 소장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그는 교토대학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한 후 약 10년간 원전 기술자로 일했다. 그 후 반핵 운동가로 삶의 진로를 바꾸었다. 원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절감했기 때문이다. 또 북 유럽에 유학하면서 자연에너지 활용 사례를 보고 감명을 받은 것도 계기가 되었다.
자연에너지 혁명
원자력을 대체할 자연에너지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 책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원전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지금의 에너지 공급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연에너지를 활용할 것!
저자는 일본의 원전 옹호론자들을 ‘원자력 마피아 ’로 부른다. 관련 공학자·기업·관료들이 마피아 그룹을 형성해 원전을 확대했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현재 일본에 있는 54기의 원전은 지난 5월 5일을 기해 모두 가동이 중단되었다. 원자력 없이는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만 같았지만 원전을 중단해도 에너지 대란은 없었다. 일본 각지에 설치된 태양광발전기·풍력발전기 등 자연에너지 덕분이다. 물론 작년 여름에 일본 국민들은 찜통더위에 시달렸다. 올 여름에 몇 개 원전을 다시 가동할 움직임도 보인다. 하지만 원전 없어도 버틸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유럽의 작은 마을들에서 시작된 자연에너지 활용사례들이 이제는 전 세계 에너지 정책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자연에너지의 시장규모는 2000년엔 세계 전체로도 1조 엔에 지나지 않았다. 2010년에는 22조 엔 시장으로 성장했다. 10년 만에 20여 배나 늘어났다. 미국 싱크탱크에 따르면 앞으로 10년간 시장규모는 10배인 200조 엔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그 후 10년간 몇 배 더 커진다면 2030년 시점에서 세계 GDP의 10%를 점하는 거대산업군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폭발적인 확대는 가히 ‘자연에너지 혁명 ’이라고 부를 만하다. 농업혁명·산업혁명·IT혁명에 이은 ‘제4의 혁명 ’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겠다.
가미노세키 (上關) 원전건설 문제로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야마구치 (山口) 현의 이와이 섬에 ‘자연에너지 100% 프로젝트 ’가 시작됐다. 하트 모양을 한 이와이 섬의 남쪽에 민가들이 모여 있다. 현재 주민수는 500여 명이지만 한때는 4천여 명이 살았다. 이 촌락에서 4㎞ 떨어진 앞바다에 원전 건설이 추진된 바 있다.
가마나카 히토미 감독이 만든 다큐영화 〈꿀벌의 날개소리와 지구의 회전 〉에는 이 섬의 원전건설 계획을 둘러싼 상황이 담겼다. 가마나카 감독, 이 책의 저자인 이이다 데츠나리, 섬 주민대표가 3인 공개 토론회를 가졌다. 자연에너지 100%를 지향하는 스웨덴의 고트랜드 섬 사례가 소개됐더니 “우리 섬마을도 그렇게 해보자. ”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아직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돌아간 사람들도 방사능의 두려움에 떨고, 가족도 일도 지역경제도 뒤죽박죽이 됐다. ”면서 “이런 정도의 대참사에 직면하고도 바꾸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미래세대에 대한 범죄 ”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 한국에 온 저자는 “한국에서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3·11 일본 지진 이전의 일본 인식 수준과 비슷한 듯하다. ”면서 “한·중·일 3국 중 어느 한군데서 원전 사고가 나면 피해자들은 전력회사, 핵연료 제조업체 등에 막대한 손해보상 소송을 벌이는 등 무한책임을 물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제 원전과 관련된 정치·경제·안전·기술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할 때가 왔다.
『원전 없는 미래로 』는 언론인 한승동, 시인 양은숙 부부가 탁월한 언어구사력으로 번역해 매끄럽게 읽힌다. 반바지 차림으로 더위를 이기며 읽을 만한 양서이다.
고승철/책평론가·소설가/koyou33@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