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벤 버냉키(Ben Bernanke) 의장의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QE) 축소 발언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다. 2008년 이후 약 5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가 바뀐다니 그만큼 충격이 컸던것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 조치를 단행하면서 양적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그 효과가 얼마나 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따지고 보면 양적완화정책이 시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알려진1990년대의 침체기를 겪은 일본은 2001년 3월 디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으로 이미 양적완화 조치를 단행했었다. 당시에 취해진 양적완화정책은 일본 국내 문제에 국한된 것으로 여겨져 지금처럼 국제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금리가 1990년대 중반 이후 0%대에 진입하고 있어 교과서에 기술된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시중 금리가 0%와 다름없는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위해 공개시장에서 국공채 매입을 통해 통화량을 확대하는 정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은행은 양적완화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금리가 0%에 근접한 이후 국내외적으로 양적완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어도 일본은행이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은 이와 같은 정책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경기회복은 커녕 디플레이션이 지속되자 일본은행은 기존의 입장에서 선회하여 2001년 3월 처음으로 양적완화 조치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버블 붕괴 이후 지속적인 금리 인하로 단기금리가 0%에 이르렀는데도 장기간의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중은행의 부실채권 문제가 누적되면서 일본은행은 더 이상 금리를 매개로 한 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일본의 양적완화정책은 이후 2006년 3월 종료 시점까지 5년 동안 지속되었으나 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양적완화정책이 시행된 5년 동안 소비자물가가 오히려 1.57% 하락한 것만 봐도 그렇다.
2000년대 중반 양적완화정책이 종료된 이후에도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여전히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허덕이다가2012년 말에 이르러서는 소비자물가가 2001년에 비해 2.6% 하락하게 된 것이다. 최근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이전에 비해 공격적인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한 것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이 물가상승률 목표를 2%로 잡고 통화량을 두 배까지 늘리겠다면서 디플레이션 극복 의지를 표명한 것은 우리나라에도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일본의 통화량 증가로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그만큼 우리나라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저하되어 수출부문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미국의 양적완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양적완화 조치를 단행하면서 양적완화는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이슈로 대두됐다. 미국의 경우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08년 11월에 주택저당증권(MBS)을 6천억 달러 매입한 것이 양적완화정책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12월에는 미국의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1%에서 0.25%로 인하하여 미국의 경우에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단기금리가 0%에 근접하게 됐다. 이후 미국 Fed는 양적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위기 직전 8천억 달러 수준이었던 보유자산 규모를 2009년 3월에 두 배 수준인 1.75조 달러로 늘렸고 2010년 6월에는 2.1조 달러까지 확대했다.
미국의 양적완화를 보면 기존의 통화정책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미국과 우리나라에서 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인상하거나 인하해 경기를 조절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책금리는 모두 단기금리에 해당한다. 미국의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는 은행들 사이에 하룻밤에 이루어지는 초단기금리이고 우리나라의 정책금리인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금융기관과 7일물 환매조건부증권(RP) 매매등의 거래를 할 때 기준으로 삼는 단기금리이다. 중앙은행이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수행하는 통상적인 통화정책은 단기금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금리가 이미 0%에근접하고 있다면 통상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발상의 전환이랄까? 미국은 단기금리에서 장기금리로 시야를 돌렸다. 즉 단기금리를 통해 장기금리를 조절하기보다는 직접 장기 국공채를 매입함으로써 장기금리를 하락시킨 것이다. 이와 함께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의 주역이었던 주택저당증권을 대규모로 매입하면서 금융기관의 자금 사정을 호전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점에서 버냉키 의장은 미국과 일본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일본이 2000년대 중반까지 추진했던 정책이 양적완화라면 미국이 펼치고 있는 정책은 신용완화로 불리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일본이 추진했던 양적완화정책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한 것이겠지만 미국의 1차 양적완화의 효과도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미국의 실업률이 2009년 10월에 10.0%까지 오른 후 2010년 하반기에도 9.5% 수준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10년 11월 향후 8개월 동안 추가적으로 6천억 달러의 재무부 증권을 매입할 계획을 발표하면서두 번째 양적완화(QE2) 정책을 시행했다. 그리고 2012년 9월에는 매달 400억 달러의 주택저당증권을 매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세 번째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했다. QE3라고 불리는 이번 양적완화정책은 기한을 따로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선 양적완화정책과 차이가 있다. 이와 더불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연방금리를 0%에 가깝게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은 2012년 12월, 미국은 주택저당증권 매입 규모를 매달 400억 달러에서 850억달러로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경기회복을 위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 경쟁적 양적완화, 그 영향은?
2009년 이후 영국과 일본이 양적완화정책에 가세하면서 일각에서는 환율전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양적완화를 통해 자국의 통화를 절하시킨다면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 증대를 통한 경기회복을 꾀할 수 있다. 이는 자국의 경기회복을 위해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양적완화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흥국이나 저개발국은 희생을 강요받 을 수 있다. 그렇다고 신흥국이 선진국처럼 양적완화정책을 펼수도 없다. 선진국의 경우 경기침체와 함께 디플레이션 우려가 대두됐으나 신흥국의 경우 선진국의 양적완화정책으로 인해 외국 자본이 대거 유입되면서 자산 가격이 상승해 오히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조치가 얼마나 지속될지, 그리고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2013년 6월 버냉키 의장은 미국 경제가 호전되었다는 판단 아래 조만간 매입 규모를 85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로 축소할 뿐만 아니라 기한을 두지 않았던 매입정책을 2014년 중반에 중단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주식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의 주가는 발표 당일에만 4.3% 하락했고 우리나라의 종합주가지수도 닷새 동안 6.3% 하락했다. 이후 7월 중순 버냉키 의장은 자신의 발언을 뒤집었다. 경제지표가 다소 호전되긴 했지만 아직도 미흡한 상태이고 당장에 인플레이션 우려도 높지 않아 경기부양정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는 제3차양적완화정책을 단기간에 중단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장경호 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 kjang@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