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는 남미에서 천연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이면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지형적으로는 6천미터급 설산, 초현실적 풍경의 우유니 소금 사막, 핑크 돌고래가 사는 아마존 밀림 등 지구에서 가장 건조하고, 가장 짜고, 가장 습도 높은 지역들을 골고루 품고 있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시간 맞춰서 도착했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 버스는 연착이다. 한국에서처럼 버스의 정시 출발과 도착을 기대한다면 차라리 여행을 포기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행복한 남미여행의 지름길은 한국적인 생각의 틀을 버리는 것이다.
낡은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해발 3,660미터의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등에 지고 중절모를 머리에 얹은 할머니들이다. 여자는 중절모를 쓰는데 미혼일 경우는 옆으로, 기혼일 경우는 똑바로 쓴다. 작은 키에 검게 탄 피부, 동양인에 가까운 이목구비. 피부색이 짙고 선이 굵은 얼굴은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라파스는 볼리비아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건물들이 무허가 판자촌처럼 낡고 허술했다.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외벽에는 조악한 붉은 벽돌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거리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고 좁은 도로에는 낡은 차들이 무질서하게 엉켜 있다. 이곳에서는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높은 곳에 살게 되는데, 해발 4천미터까지 동네가 만들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도시를 둘러싼 언덕배기에 빼곡하게 들어찬 낡은 집들이 어딘가 초현실적인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라파스에서 재미난 일은 남미스타일의 시장을 구경하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제일은 마녀시장이다. 네그로시장에서 산타크루즈(Santa Cruz) 거리의 언덕길을 내려가면, 람푸(Llampu) 거리와의 교차로에서부터 리나레즈(Linares) 거리에 들어설 때까지 가게에서 파는 물건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마녀시장이다. 볼리비아는 3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까닭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넘쳐나지만, 아직도 수도 한복판에 주술사를 위한 마녀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주술용품보다는 시장의 특별한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마녀시장은 원주민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으로 썼던 희귀한 약초와 가루들, 부정을 막기 위해 부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을 팔면서 형성됐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새집을 지을 때 말린 야마의 태아를 마당에 묻으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 상점 곳곳에는 말린 야마의 태아가 주렁주렁 걸려 있다. 각종 주술용품과 부적, 말린 토끼, 야마, 벌레 등이 다소 무섭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으스스하지는 않다. 마녀에 대한 이미지라면 역시 큰 항아리에 무언가를 끓이며 주문을 외우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이곳에 그런 마녀는 없었다. 관광객에게 행운과 여행의 안녕을 기원해 주는 주술세트를 팔고 있을 뿐.
초록색 앵글선반 위에는 붉은 황토로 빚은 인형들이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순서대로 가득 진열돼 있다. 초록색과 붉은 색의 선명한 대비로 주술인형들이 다소 무섭게 느껴진다. 그 옆에는 말린 야마가 차곡차곡 쌓여 전시돼 있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박제된 동물을 파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매장 입구에는 볼리비아 전통 옷을 차려입은 주인들이 앉아 있는데 그 주변으로 진열된 상품들이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들인 것 같다. 주 품목은 여행객들을 위한 볼리비아 전통 옷을 입은 주술인형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온갖 주술용품들이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주술형태별로 구분돼 있는데 건강을 기원하거나 부부 금실이 좋아지는 부적, 사업이 잘되게 하는 부적 등 나름 과학적으로 구분해 놓았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전시돼 있지만 남미 특유의 강렬함이 살아 있는 진열형태를 띠고 있다.
여행자들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척박한 땅이며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볼리비아. 하지만 잉카제국의 후손들이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행복지수만큼은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 높은 곳. 찬란한 역사를 기억하지만 가난한 오늘을 사는 볼리비아 사람들.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문득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