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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세이온 (Mouseion)넘나드는 풍경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최우용 건축가 2015년 11월호

 

영욕의 역사가 서려 있는 땅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경복궁 동쪽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땅은 구한말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사건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망국의 비탄이 힘없는 제국을 덮쳤을 때 종실의 권위를 관(官)으로 받치고 있던 종친부(宗親府: 조선시대 때 역대 국왕의 계보와 초상화를 보관하고, 국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왕의 친척을 다스리던 관청) 건물들은 원래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모더니즘 정신에 입각해 지어진 경성의학 전문학교가 자리 잡았다. 이 네모반듯한 붉은 벽돌 건물은 군사정권을 통과하며 보안사령부를 거쳐 국군기무사령부로 사용됐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서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미술관’ 또는 ‘서울관’)은 대중의 접근이 불편한 과천 소재 ‘동물원 옆 미술관’인 과천관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세워졌다. 우리나라 미술계는 서울관 건립이라는 숙원을 2009년에서야 확정지을 수 있었다. 미술관은 종친부 건물 유구의 발굴과 복원, 기무사령부 건물의 철거 또는 보존 등의 여러 갈등들을 완벽하게 해소하지 못한 상태에서 2013년 가을 개관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질곡의 역사가 새겨진 이 땅에는 복원된 종친부 건물 일부[경근당(敬近堂)과 옥첩당(玉牒堂)]와 존치된 기무사령부 건물 그리고 새로 지은 미술관이 한자리에 들어앉게 됐다.


미술관은 한곳으로 들어가서 선을 따라 관람한 후 한곳으로 나가게 되는 일반적인 선형(線形)미술관이 아닌, 여러 전시관들이 섬처럼 띄엄띄엄 무리를 이룬 군도형(群島形)미술관으로 계획됐다. 건축가 민현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도형미술관의 동선구조는 선형이 아니라 네트워크입니다. 흔히 그물망 구조인 네트워크형 동선은 우리 도시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하나의 지점에서 다른 지점에 이르는 길은 여러 길이 있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크 동선의 공간구조는 과거 잃어버린 도시의 골목길과 같은 효과가 납니다.… 골목길의 주인이 주민인 것처럼 미술관의 주인은 관람자입니다.”


건축가의 생각과 미술관 측의 요구는 관람자가 미술관의 주인이 되는 지점에서 일치했다. 그리하여 미술관은 덩어리를 섬처럼 쪼개고 흩뜨려서 그 사이사이에 여러 마당과 길을 만들었다. 그 마당과 길은 바깥에서 무시로 접근하고 또 머무르거나 건너갈 수 있는 공간이다. 담장과 경계 없는 미술관의 외부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미술관의 내부는 어떠한가? 여기저기에 흩어진 지상층 덩어리는 지하층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 연결은 일방향적 흐름으로 관람객을 유도하지 아니하며, 여기서 시작하여 저기 또는 거기 등에 이르는 복수 이상의 선택적 접근과 관람을 허용한다. 관람객은 미술품에서 미술품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독해에서 벗어나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관람객 스스로가 관람과 휴식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미술관은 그 규모에 비해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설계와 시공이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문화유산과 근대의 문화유산 그리고 새로운 문화자산 사이 벌어진 갈등은 원만한 조화에 이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세 개의 각기 다른 건축물들은 미지근한 갈등관계 속에서 겸연쩍은 동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매표에서 관람으로 종결되는 진부한 미술관의 형식을 털어내고, 관람객이 주인이 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미술관의 얼개를 성공적으로 엮어내고 있다. 경복궁과 북촌을 찾는 많은 이가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넘나드는 풍경이 이를 증명한다. 이 넘나드는 풍경의 힘과 시간의 풍화작용이 미지근한 갈등관계를 천천히 봉합해 좀 더 여유롭고 또 넉넉한 미술관으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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