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허남웅의 신나는 시네“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김세윤 방송작가 2015년 11월호

 

스파이 브릿지

 

한 남자가 있습니다. 매일 그림을 그리지만 정작 화가는 아니고 줄곧 뉴욕에 살면서도 실제 미국인은 아닌 남자. 스파이. 소비에트연방공화국, 줄여서 ‘소련’이라 불리는 나라를 위해 미국의 기밀을 수집하는 첩보원. 그의 이름은 루돌프 아벨(마크 라이런스 분)입니다.


1957년의 어느 날 FBI에 체포된 뒤 아벨은 철저히 혼자가 됩니다. 아무도 그를 편들지 않고 누구도 그를 돕지 않습니다. 모든 미국인이 그를 증오합니다. 당연합니다. 미국과 소련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가던 냉전시대.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에게 ‘따뜻한 남쪽나라’의 관용을 보여 줄 여유 따윈 없으니까요.


법원과 검찰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재판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만 최소한의 모양새는 갖춰야 하겠기에 아벨에게도 변호사를 붙여줍니다.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 분)이 좋겠습니다. 시국 사건 경험이 없는 일개 보험 전문 변호사. 적당히 변론하는 척만 하면 됩니다. ‘스파이에게도 공정한 재판을 보장한 미국’을 홍보할 수 있게 눈치껏 구색만 맞춰주면 됩니다. 도노반이 그렇게만 해주면 아무 문제 없이 곧 끝날 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쓸데없이(?) 최선을 다하는 그로 인해 일이 좀 복잡해집니다. 인권을 무시한 수사관행에 제동을 거는 변호사. 절차를 무시한 재판 과정에 목소리를 높이는 도노반.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는” 것들을 차례로 문제 삼죠. 일사분란하게 일사천리로 마무리될 사건이 단 한 사람 때문에 다 틀어지게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도노반이 외로워집니다. 철저히 혼자가 된 아벨을 변호하느라 그 또한 철저히 혼자가 되고 맙니다. “빨갱이를 변호하는 사람도 빨갱이”라며 사람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회유와 협박, 미행과 테러의 표적이 된 그에게 CIA요원까지 찾아옵니다. 그렇게 열심히 변호해 준 덕에 아벨이 당신을 신뢰하게 되었으니 그가 당신을 믿고 따로 털어놓은 기밀이 있지 않으냐, 아주 대놓고 캐묻습니다. 그때 도노반이 참 멋진 말을 합니다.


“호프만? 이름을 보니 당신은 독일계이군요. 나는 아일랜드계입니다. 독일계와 아일랜드계는 완전히 다른데, 무엇이 우리를 같은 ‘미국인’으로 만들어줄까요? 룰(rule). 규정입니다. 헌법이라는 하나의 규정을 같이 지키는 한 우리가 같은 미국인일 수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가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제1막입니다. 영화엔 1막이니 2막이니 하는 구분이 없지만 제가 보기엔 여기까지가 첫 번째 챕터입니다. 알려졌다시피 이 영화는 ‘냉전시대, 정부를 대신한 비밀 협상으로 미국과 소련의 첫 스파이 맞교환을 성사시킨 어느 변호사의 실화’를 다룹니다. 그러므로 ‘스파이 맞교환을 위한 비밀 협상’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핵심적인 이야기에 앞서 스필버그 감독은 언뜻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매우 공들여 찍었습니다. ‘스파이 맞교환에 힘쓰는 변호사’가 되기 이전, ‘스파이 변론에 힘쓰는 변호사’의 모습을 꽤 비중 있게 다룬 겁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 영화에서 제1막의 이야기가 갖는 의미는 대체 뭘까요?


자, 누명 쓴 피의자를 편드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게 누명이란 걸 밝히는 게 어려워 선뜻 편들기 망설여지겠지만,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진심은 늦게라도 박수를 받으니까요. 영화 <변호인>을 향해 천만 관객이 지지와 응원을 보낸 것처럼. 만일 억울한 누명 때문에 사형까지 선고받은 이가 있다면, 사람들은 사형제 폐지에도 선뜻 힘을 보탤 겁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며 실제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만일 그들이 누명 쓴 게 아니라고 가정할 땐 어떨까요? <변호인>의 대학생 진우(임시완 분)가 정말 체제 전복을 꿈꾸며 반국가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한 게 맞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살인피의자 윤수(강동원 분)가 정말 잔혹하게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맞다면? 그때도 우리는 진우의 변호인을 변함없이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을까요? 윤수를 편드는 유정(이나영 분)에게 공감하며 흔들림 없이 사형제 폐지에 동조할 수 있을까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전향하지 않은 빨갱이’와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를 변호한다는 건. 억울할 일 없는 피의자를 도운 대가로 변호인이 가장 억울한 처지에 내몰려야 하니까. 그럼에도 아벨은 스파이가 맞고 그래서 온 국민이 미워하는 범죄자인 걸 그 또한 뻔히 알고 있음에도, 제임스 도노반은 최선을 다해 아벨을 변호합니다.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고 항변합니다. 아벨이 밉다는 이유로 재판 절차를 어겨가며 그를 징벌한다면 아벨이 속한 전체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는 나라가 되고 만다는 겁니다.

 

전체주의와 대적하는 우리의 무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민주주의여야만 한다는 생각. ‘상대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언제나 더 튼튼한 참호가 되어줄 거라는 믿음. 알면서도 자꾸 잊고 마는 그 ‘생각’과 ‘믿음’을 영화 <스파이 브릿지>의 제1막이 친절하게 다시 일깨웁니다. 반세기 전 도노반이 미국인에게 선물한 그 두 가지 무기를 지금 한국에 사는 모든 이들의 손에도 쥐여 줍니다. “빨갱이를 변호하는 사람도 빨갱이”라는 혐오와 증오보다 “빨갱이에게도 변론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관용과 포용이 결국엔 더 힘이 세다는 걸 증명하는 제1막. 스필버그가 공들여 찍은 그 첫 번째 챕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한낱 철지난 무용담에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제1막이 의미심장한 법정드라마라면 제2막은 흥미진진한 첩보스릴러입니다. 첫 번째 챕터에서 제임스 도노반이 얼마나 괜찮은 인간인지를 확인한 덕분에, 두 번째 챕터에서 그가 내리는 모든 선택과 결단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성실한 연기, 우아한 촬영, 치밀한 미술 그리고 세련된 연출. 스티븐 스필버그는 여전히 영화를 참 잘 만드는 감독이더라구요.


어릴 적 로 ‘하늘을 나는 기쁨’을 알게 해준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제는 <스파이 브릿지>로 ‘땅 위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책임’을 일러주는 것 같아서 저는 좋았습니다. “헌법이라는 하나의 규정을 같이 지키는 한 우리가 같은 미국인일 수 있는 겁니다.” 관객들은 한동안 이 대사를 자주 떠올리게 될 겁니다.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 이 말의 가치를 극장 밖에서도 계속 지켜내려 애쓸 겁니다. 1957년의 빛바랜 실화는 그렇게, 바로 지금, 바로 이곳에서 매일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쓰일 겁니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