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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희삼의 인적자본론자녀교육과 부모교육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KDI 겸임연구위원 2018년 08월호



“죄송합니다….”
자기 몸에 불을 질러 끝내 숨졌던 고 2 학생이 남긴 유서에는 별 단서가 없었다. 가족을 위해 장시간 화물차 운전을 하는 아버지, 우등생들만 따로 모아 공부시키는 학교 기숙사에 아들 친구들이 먹을 야식까지 넉넉하게 준비해서 찾아오곤 했던 어머니, 이렇게 헌신적인 부모의 뒷바라지를 받아온 착한 우등생이었다. 그런데 그는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을 힘들어했다.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내신만 잘 나오는 멍청이라고 자기를 비하했고, “부모님이 해주시는 것에 비해 나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고 친구에게 토로했다.
“아버지, 기숙사에서 나오면 안 될까요?”
아이는 부모에게 이렇게 자신의 공부 스트레스를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대화를 하는 대신 아이를 다독거려 그날은 택시를 태워 보냈다. 그래서 학교 기숙사에 잘 돌아갔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중간에서 내려 주유소에서 직접 휘발유를 샀다. 그리고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골목에서 자기 몸에 끼얹고 불을 질렀다. 목격자가 불을 껐을 때는 이미 늦었다.


학벌주의를 믿는 우리 사회, 자녀의 성적에 민감한 부모
전신 중화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2011년 3월에 방영된 TV 다큐멘터리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필자는 학부모 강연 때 자주 이 이야기, ‘교사를 꿈꾸던 1등 엄친아는 왜 분신했을까?’를 들려줬다. 헌신적인 부모, 착한 아이, 공부 스트레스의 조합이 자기비하와 우울증으로 이어져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말로 끝난 이 비극을 나눌 때마다 학부모 청중들은 숙연해졌고 반성과 두려움이 섞인 듯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필자는 그 아이를 알고 있는 학생을 2016년 우연히 만나 그에 관한 얘기를 더 들었다. 학생의 전언에 따르면, 그 아이는 결국 감염 등으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내성적이지만 매우 착한 친구였고 왕따 문제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부모의 기대와 학업 스트레스가 너무 컸고, 부모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한다. 야간자습이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가 만들어온 갖가지 김밥이 엄마로서는 힘내라는 격려였지만 그 아이에게는 이거 먹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압박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공부 목표와 관련된 부모의 요구가 있을 때 자신은 반항을 했지만 그 아이는 수용적인 태도로 받아들이고 혼자 힘들어했을 것 같단다.
아직 많은 사람이 학벌주의를 믿는 우리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의 성적에 민감하다. 아이는 자기 꿈이 없어도 부모에게 혼날까 봐 공부하고 부모에게 칭찬 들으려고 공부한다. 그리고 대화의 많은 부분이 공부와 성적으로 채워지고, 일방향의 잔소리나 부담스러운 격려로 변질되며, 아이는 이런 뻔한 대화를 점점 기피한다.
필자는 2017년에 한국, 중국, 일본, 미국 4개국 대학생 각 1천명, 총 4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다음과 같은 문항을 넣어봤다. “귀하에게 다음과 같은 상황(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해야 할 경우, 갑자기 많은 돈을 빌려야 할 경우, 낙심하거나 우울해서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경우)이 발생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습니까? 가족 및 친척과 그 외의 사람(친구, 이웃 등)으로 나눠서 응답해 주십시오.”
한국 대학생은 몸이 아파 집안일을 부탁해야 할 경우나 갑자기 많은 돈을 빌려야 할 경우에는 가족 및 친척의 양호한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쪽으로는 의지할 사람을 혈연관계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인식했고, 이것은 다른 나라 대학생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림 1〉에서처럼 한국 대학생은 다른 나라 대학생과 달리 정신적으로 힘들 때 이야기 상대가 돼줄 존재를 가족 및 친척보다는 친구 등 그 외 사람에게서 훨씬 더 많이 찾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족 간의 소통장애가 다른 나라보다 심할 가능성을 암시한다. 대학에 올 때까지 성적 문제로 부모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이렇게 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아이에게 기대를 걸고 헌신하는 부모가 반드시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어떤 부모에게는 혼란이고 상처일 수 있다.
자녀교육에 대해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 배운 바가 없는 부모들에게는 ‘맹모삼천지교’가 금과옥조일 수 있다. 포장이사도 없던 시절에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자의 어머니는 ‘대전동’(사교육을 위해 전세로 사는 대치동)이나 위장전입의 원조처럼 느껴질 수 있다. 또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모처럼 집에 온 어린 아들에게 암흑 속의 떡 썰기와 붓글씨 쓰기의 다소 불공정한 배틀(‘생활의 달인’을 보라!)을 통해 압박을 가했던 것이 자녀를 억지로 학원에 보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우선 불안하니 학원 정보를 꿰차고 반장 노릇을 하는 옆집 ‘돼지맘’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유아의 건전한 성장 발달은 초·중등교육 단계의 성취와 적응에 긍정적
직전 학기 필자의 ‘교육의 경제학’ 수업에 한 학생이 낸 기말 에세이 제목은 ‘유아교육의 투자효율과 부모 의무교육’이었다. 이 학생의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취학 전 유아 단계는 그 후의 생을 좌우할 중요한 능력의 발달이 크게 이뤄지는 시기이므로 투자 효율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이 시기의 젊은 부모는 경제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경우가 많으므로 공적 투자의 확대가 필요하다. 더욱이 아이의 전인적인 성장 발달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배운 바가 없으므로, 부모를 대상으로 한 의무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부모 의무교육 이수를 위한 시간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부모교육 전문인력을 확보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아이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공식교육기관을 자연친화, 예체능, 문화, 놀이 등으로 다원화하고 비공식교육에 대한 지원도 함께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실제로 유아의 건전한 성장 발달은 초·중등교육 단계의 성취와 적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인지능력의 분화가 3~5세에 두드러지는 것을 보더라도 이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해가는 시대에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의사소통 및 협업 능력과 사회성 등 비인지능력의 발달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도 지난 20년간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는 〈그림 2〉처럼 취약계층에서 태어난 자녀가 학교와 노동시장을 거치면서 평생 겪을 생애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조기 개입이 효과적임을 역설했다.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직업훈련 등 재교육이 필요하다. 가령 잘 다니던 조선소나 완성차 조립 공장이 문을 닫으면 해고 노동자들은 새로운 것을 배워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에 있던 GM 공장이 2008년에 폐쇄된 후 해고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직업전환 실태를 5년간 추적한 「제인스빌(Janesville: An American Stroy)」(에이미 골드 스타인 저)에 소개된 결과는 직업훈련의 성과를 낙관하지 못하게 한다. 첫째는 소득 문제로, 직업을 바꾼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전보다 소득이 떨어졌고, 직업훈련을 받은 사람이 안 받은 사람보다 소득이 더 많이 하락했다. 그래서 해고 노동자들 중 일부는 타지의 GM 공장에서 일하며 주말에만 집에 오는 삶을 택하기도 했다. 둘째는 새 직장에 대한 적응 문제였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적응과 여기서 또 실패하면 끝이라는 불안감 등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재기에 성공한 드문 사례로 소개된 어떤 해고 노동자는 새 직업인 교도관을 2년 만에 관뒀지만 가족들의 지지와 인내로 학사학위를 따서 발달장애인을 돕는 커뮤니티 매니저가 됐다. 그는 “돌아보면, 공장 폐쇄가 내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다”면서, 이를 계기로 새로운 도전을 했고 행복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다는 신념도 얻었다고 한다. 이 사례는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 특강에서 했던 말을 연상하게 한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에서 오는 중압감이 초심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전에 비해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전성기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기회가 되었습니다.”


자녀에 갖는 조바심이 자녀의 미래 보장해주지 않아
한국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갖는 조바심도 결국 자녀가 나중에 어떻게 평생 먹고살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다. 부모에 따라 자녀의 입신양명으로 자랑거리가 되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녀의 자립에 대한 걱정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한 자라도 더 가르치고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더 앞서가도록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1962~1967년 미국 디트로이트 외곽에 사는 빈곤 가정의 흑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페리 프리스쿨(Perry Preschool) 실험 결과는 바람직한 아동기 교육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2년 동안 한 집단의 아동 60명에게는 읽기와 셈하기 등 인지적 교육을, 다른 집단의 아동 60명에게는 성실성, 자제력, 사회성 등 비인지적 교육을 주로 실시하고, 40년 후 성인기의 삶을 추적한 것이다. 그 결과 비인지적 교육을 주로 받았던 집단이 어른이 됐을 때 소득, 사회적 성취도, 행복감 등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로버트 풀검의 책이 괜히 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성인기의 재교육도 당사자가 새로운 배움에 대해 열려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뒷받침될 때 좋은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실패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출구를 찾는 회복탄력성이 있고, 새로운 배움을 두려워하거나 힘들게만 느끼지 않고 즐거워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기술(social skill)을 가진 사람으로 아이를 키워낼 수 있다면, 부모로서는 최상의 자녀교육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부모로서 또는 예비부모로서 자녀에 대해 조바심을 버릴 수 없다면, 그 조바심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으나 현재의 부모와 자녀 관계를 망치기 십상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자녀는 부모의 ‘확장된 자아’가 아니기에 부모의 미망을 대리 실현할 책임이 없으며, 앞으로는 부모의 노후대비책도 아니다. 본격적인 부모교육은 의무화가 되건 안 되건 인생의 필수과목으로 여기고, 관련 교과서가 생긴다면 그 서문에 실릴 법한 글 한 쪽을 음미해보자.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과 딸입니다.
    그대를 거쳐 태어났지만 그대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대와 함께 지낸다 하여도 그대에게 속한 것은 아닙니다.
    그대는 그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그대의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그들에게 육신의 거처는 줄 수 있어도 영혼의 거처는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그대가 방문할 수도, 꿈꿀 수도 없는 내일의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되, 그들을 그대처럼 만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삶이란 뒤로 가는 것도, 어제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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