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를 이야기하면 유사한 단어가 하나 떠오른다.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의미하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다. CSR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사업 영역에서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환경적 관심사들을 분석하고 수용하며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이해 당사자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이룬다는 점에서 ESG와 기본 개념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CSR 활동은 기업 입장에서 ‘하면 좋은 것’ 정도지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ESG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자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적 책임이다.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정량적 지표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ESG 활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계량화·정량화된다. 문제는 ESG가 투자자 관점에서 진행되다 보니 사회적 책임과 수익성 사이에서 딜레마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이 지난해 발생한 ‘다농 CEO 퇴임 사건’이다.
에비앙 생수로 유명한 프랑스 식품기업 다농의 전 CEO 에마뉘엘 파베르는 ‘ESG의 전도사’로 불릴 만큼 ESG 활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다농의 경영이념은 ‘One Planet, One Health(하나뿐인 지구, 하나뿐인 건강)’로 경영철학 자체가 ESG인 기업인데, 그런 토대를 마련한 사람이 파베르 CEO다. 유기농식품 제조사 화이트웨이브를 인수했고,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한 글로벌 기업연대를 발족시키는가 하면, 주당순이익(EPS) 개념에 탄소배출량을 반영하는 회계기법도 개발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그라민은행과 함께 그라민다농이라는 사회적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다. 방글라데시 아이들의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라민다농은 필수 영양소가 담긴 요구르트를 100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요구르트를 만드는 공장에는 현지인을 채용하고, 판매는 ‘그라민 레이디’라고 불리는 방문 판매를 활용해 여성 일자리를 제공했다.
회사 정관에 ‘지구와 자원을 보전한다’는 목표를 넣는 등 파베르 CEO의 ESG 경영으로 다농의 MSCI ESG 평가는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고 있다. 파베르 CEO에게 다농의 존재 이유는 이윤창출이 아닌 ‘인류의 건강 증진’과 ‘지구 환경 보전’에 있었다. 그는 연 120만 유로인 퇴직금도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일반 직원들과 같은 종류의 퇴직연금을 수령하기로 했다. 또 2020년 팬데믹 시기에는 급여의 30% 삭감을 자청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2021년 3월 15일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실적 부진, 주가 하락을 이유로 다농 이사회가 파베르 CEO의 해임을 결정한 것이다. 2020년 다농 매출은 코로나19 여파로 2019년 대비 6.6% 감소한 281억 유로(약 37조9천억 원)를 기록했고 주가도 30% 가까이 폭락했다. 이로 인해 유제품과 유모차, 생수 사업 등은 공장을 폐쇄하고 2천여 명을 감원하는 등 큰 타격을 받았다. ESG 경영을 열심히 해온 사람에게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경쟁사인 네슬레는 코로나 국면에서도 발빠른 대처로 2020년 3분기 유기농 제품 매출이 4.9% 상승했고 2020년 상반기 순이익도 전년 대비 18.3% 증가한 64억6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다농 사태는 ‘무엇을 위해 ESG 경영을 실행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기업에 더욱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
ESG는 장기적 관점에서 분명 환경 및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자본 비용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단기적 측면에선 당장 기업에 비용 부담으로 다가온다. ‘경영’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활동인데 ‘ESG’는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 두 개념의 충돌로 상당수 기업은 ESG 경영 수행에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ESG 경영으로 환경과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서 실적과 기업 가치도 올려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 같은 현실적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임인년의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