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이 더해져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사회구성원 전체가 인식하고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
2017년 경제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녹록지 않다. 대내외적 정치, 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도 크기 때문에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심리적 위축뿐 아니라 실제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가 과도할 정도로 위축돼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이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2%대로 장기간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급기야 제조업 평균가동률이 18년 만의 최저치인 70.3%로 떨어졌다.
주력산업 구조조정 더딜수록 한국경제 복원력 더 떨어져 외환보유고, 단기 외채비중 등 대외지불능력과 재정여력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이 더해져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부동산과 건설경기를 띄운 결과 가계부채 1,300조원 시대가 열렸다. 이를 연착륙시키지 못할 경우 국민경제 전체에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또한 세계경제가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국경제가 중속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최장기간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는 점도 한국경제 저성장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20년 가까이 주력산업의 변화가 없는 역동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저성장 기조 탈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조선과 해운을 필두로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될수록 한국경제의 복원력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빠른 속도(velocity)와 파괴적 기술이 전 산업에 걸쳐 나타나는 동시에 광범위성(scope), 생산, 관리, 거버넌스를 포함한 시스템의 영향(system impact)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후발주자이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를 고려한 미래변화 예측과 중장기적 비전과 전략 수립이 요구된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기술수준, 교육수준, 인프라수준, 법적 보호 등 5개 요소로 4차 산업혁명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국가들을 평가한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국은 전체 순위에서도 42위로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노동시장 유연성(83위), 법·제도의 시스템(62위) 측면에서 특히 낮은 평가를 받았다.
미래사회의 모습을 단편적인 한두 가지 척도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 요소들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UBS의 평가결과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말해주고 있다.
가장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조만간 직업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노동시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돼 일자리 사다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도 드물다. 이는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적으로 만들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고, 결과적으로 어떤 산업도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으로 부상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만을 강조하기도 어렵다. 유연성 못지않게 안정성(stability)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어중간하게 섞어 놓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미래 노동시장의 모습이다. 노동시장의 안정성이 중요한 이유는 소득이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노동시장에서 소득의 안정성은 직업의 안정보다는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확충을 위한 국민부담의 증가가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노동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를 사회구성원 전체가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부담-중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서비스산업 발전 없이는 저성장 탈출 어려워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서 법·제도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차원의 규제를 마련할 필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 발생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원천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빅데이터(big data)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묶어 두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은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원칙 금지, 예외적 허용(positive system)’에서 ‘원칙 허용, 예외적 금지(negative system)’로 규제원칙을 바꾸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지금까지 입법과정이 평균 30개월 가까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사안은 빠른 시일 안에 법제화가 추진돼야 한다. 특히 규제산업으로 특징지어지는 서비스산업 발전 없이는 저성장 국면 탈출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아울러 보다 근본적으로는 규제를 포함한 평가·보상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GDP 대비 R&D 지출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에 속하면서도 기술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중요한 이유가 평가·보상시스템이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에 걸친 현실안주형 인센티브 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새로운 성장동력과 관련된 분야만이라도 우선적으로 인센티브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2017년은 대선이 있는 중요한 해다. 거버넌스 부재로 인한 혼란이 어느 정도 불가피해 보이지만 장기 불황을 극복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 산적한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금은 새로운 성장원천을 찾고 이를 내재화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