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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고추 없인 못 살아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5년 08월호

한국인은 고추를 정말 좋아한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고 하면 외국인은 농담으로 듣는다. 한국인의 밥상을 처음 본 외국인은 ‘상이 빨갛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고춧가루가 안 들어 간 음식이 드물어서다. 말간 감잣국에도 고춧가루를 띄워 마시고, 외래 음식인 짜장면에도 고춧가루를 팍팍 친다. 단무지가 심심해서 고춧가루 듬뿍 들어간 매콤한 쓰촨식 짠지인 ‘자차이(짜사이)’를 짜장면 반찬으로 먹곤 한다. 군대 시절 여름에 김치가 떨어지면 단무지가 나왔는데, 예의 고춧가루를 듬뿍 쳤다. 수입도 없을 때라 그 비싸던 시절에 말이다. 

1970년대에 한국 전체가 고추 농사를 망친 해가 있었다. 고추에 진심인 한국인답게 민심이 요동치자 당시 박정희 정권은 급히 외국에서 고춧가루를 대량으로 수입, 가정에 유상 배급했다. 집집마다 배급 딱지를 더 받겠다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고추 농사를 지은 지 수백 년이 됐는데 지금도 신품종이 쏟아져 나온다. 안 그래도 매운데 더 매운 걸 만드느라 박사들이 밤을 새우며 고생했다. 그 결과 나온 게 청양고추다. 이 고추는 동남아의 매운 종과 교잡한 것으로 사실 너무 매워 우리 실정에 안맞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고추의 베스트셀러가 청양이다. 

농촌이 고령화되면서 온갖 작물이 폐농되자 노령 농민도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 농사 짓는 시스템을 갖추는 식이다. 고추는 일찌감치 한국형 종자를 개발해 보급했다. 크기가 더 크고 살집이 두툼해서 가루가 많이 나오는 종자다. 수확이 빠르고, 허리를 덜쓰고도 많은 고추를 딸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고추 말고는 그런 고려를 해서 나오는 종자가 흔하지 않다. 고령의 농촌에서 하는 수 없이 다른 농사는 작파해도 고추만큼은 짓는 집이 아직 많아 종자회사들도 눈치를 본다. 김장은 그래도 우리 집 고추로 해야지, 대처 나간 애들한테 딴 건 몰라도 고춧가루는 내 손으로 지어 보내야지, 이런 정서도 한몫하는 것이다. 

왕년에 재래시장에서 제일 잘나가던 농산물 업종이 기름이랑 고추였다. 그만큼 소비자도 예민해서 태양초니 수입이니 따져 묻는 게 또 고추다. 대부분의 양념은 원산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데 고춧가루는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국산 고춧가루를 쓰면 원가 부담이 큰데도 그냥 국산 쓰는 식당도 많다. 그런 집은 아주 대문짝만하게 ‘고춧가루 국산’이라고 써 붙인다. 식당에서 국산의 자부심은 배추김치와 고춧가루에 집중돼 있다. 그러고 보니 배추김치도 결국은 고춧가루로 담그는 것이다. 

6ㆍ25 전쟁 때 피란민이 내려오자,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 방을 내주고 밥을 해준 게 남한의 시골 사람들이었다. 피란민이 첫 번째로 놀란 게 인정이고, 다음으로 밥상에 고춧가루 듬뿍 쓰는 것이었다고 한다. 북한은 추워서 고추 농사가 쉽지 않아 소출이 적다. 이북 음식을 흔히 ‘슴슴하다’고 하는 건 고춧가루를 적게 넣어 자극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고추가 실은 남한에도 그다지 잘 맞는 작물이 아니다. 한창 자랄 시기에 장마다 해서 습기가 많고, 일조량도 비슷한 위치의 동남아에 비해 훨씬 적다. 고추는 원산지인 멕시코처럼 고온 건조한 곳을 좋아한다. 그런 고추의 특성을 꺾고, 다습한 땅에도 잘 견디는 종을 전파하고 잘 가꾸어 엄청난 양을 생산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오늘도 매운 고춧가루 쳐서 속 따뜻하고 훈훈하게 한 끼 하셨는지. ‘이열치열’이라는 것도 가만 보면 고춧가루가 ‘열 일’하는 관습이다. 육개장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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