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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혁신을 만나다사양길로 접어든 신발산업에 승부를 걸다
김성휘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기자 2025년 08월호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

TKG태광, 창신INC, 화승엔터프라이즈, 트렉스타···. 어떤 분야인지 말하지 않아도 아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발이다. 이른바 ‘빅3’인 태광, 창신, 화승의 연간 매출은 총 5조 원 규모로 추산된다.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지금도 이들 ‘신발 거인’이 생산한 제품을 전 세계에 공급한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부산·경남에 밀집해 있다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대표 격으로 당대 수출을 주도하며 부산을 국내 2위 도시로 만든 신발산업이 전성기를 지난 것은 분명하다. IMF 외환위기 때 생태계가 큰 타격을 받았고, 공장을 해외로 옮긴 까닭에 과거처럼 국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지도 못한다. 지금도 ‘신발’ 빼고 부산·경남 경제를 논할 수 없지만, 더 이상 신발만으로 지역경제를 지탱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첨단기술로 전통 주력산업을 혁신하려는 청년이 있다. 신발 디자인은 물론 브랜드사와 제조공장을 매칭하는 과정을 디지털로 바꿔 거래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인 크리스틴컴퍼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신발업계에 과감히 뛰어든 이민봉 대표를 만났다. 

신발 제조 솔루션으로 브랜드와 제조공장 매칭 과정 디지털화,
AI 기반 신발 디자인 툴도 선보여 


신발업계 참여자는 크게 세 축이다. 기본적으로 ‘브랜드사’와 ‘제조공장’ 업계가 분리돼 있다. 두 업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모든 공정을 ‘에이전시’ 업계가 연결해 준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생산방식인데, 과거에는 이 방식이 영광을 가져다줬을지 몰라도 지금은 유행에 대응하는 속도를 늦추고 중간단계에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AI 도입은커녕 작업공정의 디지털화부터 난제였다. 

크리스틴컴퍼니는 신발 제조 솔루션 ‘신플(SINPLE)’을 국내외 신발업체에 공급한다. ‘신발을 심플하게’라는 뜻의 신플은 다양한 신발 브랜드와 공정별로 세분된 생산업체를 신속하게 조합해 연결한다. 

기획에서 제조까지 8~9개월씩 걸리던 것을 두 달가량이면 뚝딱할 수 있게 됐다. 제조공장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인 가운데 에이전시를 통해 복잡하게 진행되던 기존 방식을 혁신한 결과다. 

청년 기업이 전통적인 고리를 깨고 나서자 업계에 파란이 일었다. 이 대표는 기존 에이전시들의 반대와 불편한 시선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크리스틴컴퍼니가 잇따라 투자를 유치하고 성과를 내면서 지금은 기존 업계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변화가 생기고 있다. 신발업계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 고객이 경험하는 문제나 불편함)’를 단번에 짚은 이 비즈니스모델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민봉 크리스틴컴퍼니 대표는 과거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신발산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과거 부산에서 태광, 화승 등에 신발 자재를 납품하던 사업가였는데, IMF 외환위기 당시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 아버지가 그에게 “신발산업에는 발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신발산업에 있었다. 이 대표는 처음부터 신발공장과 신발산업이 친숙했던 ‘신발 덕후’였다. 무엇보다 신발업이 사양길이라면 청년의 힘과 기술로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목표가 그를 붙잡았다. 

“회사를 계속 다니든 창업하든 후회하는 건 마찬가지라면, 좋아하는 일을 하며 후회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처음에는 대출을 받아야 했고요. 직장 다니는 걸 자랑스러워하시던 부모님께는 한동안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첫 투자 유치를 위해 70여 곳의 투자사를 찾아다니며 IR(Investor Relations; 기업이 투자자나 이해관계자에게 경영 및 재무 상황, 성과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하는 활동)을 했지만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신발산업이라고 적힌 표지만 보고 아무도 자료를 넘겨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네이버와의 만남이었다. 마침 신발산업이 뜰 것이라고 보고 지금의 크림(KREAM)과 같은 신발 커머스를 준비하고 있던 네이버의 기업형 벤처캐피털 D2SF의 눈에 들었다. 네이버가 크리스틴컴퍼니에 투자하자 부산 지역 액셀러레이터(AC)인 부산연합기술지주 등의 시드투자가 이어졌다. 크리스틴컴퍼니라는 ‘새 신발’이 마침내 디자인 단계를 넘어 완제품이 돼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크리스틴컴퍼니는 이미 자체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 ‘크리스틴’과 애슬레저(athletic + leisure) 슈즈 브랜드 ‘에콰’를 운영하며 B2C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에콰는 요가, 필라테스 강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제 디지털을 넘어 AI 기업을 꿈꾼다. 신발에 특화된 AI 모델을 구축해 약 20만 건에 달하는 학습 데이터로 “신발 디자인만큼은 최고로 잘하는” AI를 개발하고 있다. 바로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AI 기반 신발 디자인 툴 ‘슈캐치(ShoeCatch)’다. 슈캐치는 생성형 AI로 텍스트 기반 신발 디자인을 자동 생성하고, 브랜드 이미지에 어울리는 신발 디자인을 결합해 맞춤형 디자인을 추천한다. 이 대표는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신플을, 올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최대 기술박람회 ‘비바 테크놀로지 2025’에서 슈캐치를 잇따라 선보이며 국내 대표 패션테크 기업으로서의 존재감도 각인했다. 

“사라져가는 것 살리는 일도 스타트업의 역할”

그는 수많은 신발을 기획하고 생산해 신발산업의 중심에 서는 동시에 한국 패션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K디자인과 K패션이 글로벌시장에서 인정받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존의 대기업에도 “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당부하며 “크리스틴컴퍼니와 같은 기술 기업과 협업하면 신발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부산시도 대표 브랜드를 선정해 기술개발, 판로 개척을 지원하는 등 신발 분야 향토 기업의 위기 극복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테크노파크 또한 신발 기업이 신발 성능 시험 장비 등을 활용해 기능성 신발 기술을 개발하도록 돕고 있다. 이 대표의 꿈에 업계뿐 아니라 지자체, 전국의 벤처캐피털 등이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다.

이 대표의 또 다른 꿈은 신발산업 자체가 자부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 신발 제조업이 일할 만한 산업이 되도록 인프라를 강화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사라져가는 것을 살리는 일도 스타트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가 신발산업에 유입되고, 부모님 세대가 자식들에게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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