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6,600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중남미 멕시코 유카탄반도에 지름 10~15킬로미터의 운석이 떨어졌다. 지금 10~15킬로미터에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독자가 분명히 있을 테다. 운석은 생각보다 훨씬 무섭다. 지름 300미터 정도의 운석이 떨어지면 한반도 정도는 즉시 초토화된다. 지름 3킬로미터 운석만 떨어져도 인류 문명의 지속성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 10~15킬로미터의 운석이 떨어진 일은 당시 지구에서 살던 동식물을 포함한 생명체 전체에 재앙이었다. 실제로 운석이 떨어지고 나서 그 충격의 여파로 충돌 지점뿐만 아니라 그 반대편 인도양과 아프리카, 인도 등에서 화산이 폭발했다. 지구 전체가 화산재에 뒤덮이면서 햇빛이 차단되고, 기온이 떨어지고, 상상할 수 없는 기후 재앙이 시작됐다.
당연히 지구에서 번성하던 동식물을 포함한 생물종의 4분의 3 정도가 멸종됐다. 이런 대멸종 사건은 이전에도 네 번 정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래서 이때를 다섯 번째 대멸종이라고 부른다. 이때 끝장난 동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공룡이다. 그렇다. 다섯 번째 대멸종은 공룡 시대를 끝장냈다.
잊을 만하면 여름에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바로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월드>로 이어진 공룡 영화다. 1993년 아직 소년이었을 때, 처음 <쥬라기 공원>을 보고 나서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다. 뼛조각을 모아서 추정한 그림으로만 상상했던 공룡이 스크린 속에서 실제로 움직이니 얼마나 신기했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할리우드 영화는 엉성한 이야기와는 달리 공룡 묘사만큼은 진심이었다. 개봉하는 영화마다 당대의 공룡 연구 성과를 모아놓았단다. 이번에 새로운 영화도 개봉했으니, 우리가(특히 30~40대 이상이라면) 미처 몰랐던 공룡 얘기를 한번 해보자. 우선, 영화의 주인공인 티라노사우루스와 벨로시랩터부터 시작하자.
티라노사우루스와 벨로키랍토르가 싸운다면?
공룡에 관심이 별반 없는 사람도 티라노사우루스 정도는 알 테다. 사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 시대를 끝장낸 운석이 떨어질 때 그 장면을 직접 목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중생대 백악기 후반의 최상위 포식자가 바로 티라노사우루스였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유일한 적은 티라노사우루스였다. 배고프고 화가 나면 동족 포식도 서슴지 않았다.
워낙에 유명한 공룡이었기에 티라노사우루스는 한때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덩치가 큰 티라노사우루스는 빠르고 똑똑한 공룡이었을까? 아니면 제 덩치를 이기지 못해 작은 육식 동물이 사냥하고 남은 시체나 뜯어먹는 신세였을까? 앞에서 언급한 공룡 영화 시리즈에서도 어떨 땐 빠르고 똑똑한 공룡으로 나오다가 어떨 땐 둔해서 존재감 없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어느 정도 학계의 결론이 나왔다. 티라노사우루스는 1초에 8미터 정도를 뛸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이 정도면 시속 30킬로미터 속도로 달릴 수 있으니 재빠른 사냥꾼으로 부를 법하다. 영화에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자동차 뒤를 쫓는데, 과장이 섞이긴 했어도 사실과 동떨어진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티라노사우루스만큼이나 공룡 영화 시리즈로 유명해진 공룡이 벨로시랩터, 라틴어로 발음하면 벨로키랍토르다. 하지만 이 공룡은 영화 탓에 잘못 알려졌다. 영화의 원작을 쓴 마이클 크라이튼(1942~2008년)이 1990년대 초반 학계에서 통용되던 오류를 정정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잘못된 지식이 유포됐다. 진실은 이렇다.
원래 벨로키랍토르는 크기가 거위만 한 작은 공룡이다. 사람과 비슷한 크기로 집단 사냥을 하고 심지어 문도 여는 영화 속의 똑똑한 공룡은 벨로키랍토르가 아니라 데이노니쿠스다. 화석으로만 보면 사람보다 덩치는 약간 작지만, 집단 사냥을 했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니 영화에서 벨로키랍토르가 등장하면 ‘저 공룡은 사실 데이노니쿠스야!’ 하고서 아는 체를 해도 좋다.
데이노니쿠스 여럿이 티라노사우루스에 대적하는 영화 같은 일이 가능할까? 현실이라면 불가능하다. 성난 세 살짜리 개 열 마리가 호랑이, 그것도 코끼리 같은 크기의 빠르고 똑똑한 짐승을 상대할 수는 없다. 결정적으로 이 두 공룡이 살던 시기는 겹치지도 않았다. 데이노니쿠스는 백악기 전기에, 티라노사우루스는 백악기 후기에 살았다.
공룡 영화 시리즈가 진화하면서 바다나 강에서 사는 괴물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아주 덩치가 큰 악어 같은 이 동물은 공룡이 아니라 도마뱀이다. 실제로 공룡 시대에는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더 큰 악어 같은 도마뱀이 주로 물속에서 서식했다. 파충류 가운데 직립 보행 할 수 있었던 공룡은 육지를 활보했지만, 도마뱀은 그렇지 못해서 주로 물속에 자리를 잡았다.
닭이 공룡의 후손이라고?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해야겠다. 혹시 공룡 고기 맛이 궁금하지 않은가? 물론 공룡 고기를 직접 먹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제 치킨에 맥주 한 캔을 마셨던 독자라면 공룡 고기 맛을 유추할 수 있다. 오늘날 살고 있는 동물 가운데 공룡의 직계 후손이라고 할 만한 동물이 바로 닭을 포함한 조류이기 때문이다.
짧은 동영상 콘텐츠에서 농담처럼 봤던 닭이 공룡의 후손이라는 주장이 사실이냐고? 사실이다. 파충류 가운데 공룡 무리에 속했던 수많은 종 가운데 다섯 번째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일부가 진화해 닭을 포함한 조류가 됐다. 이제부턴 “공룡은 멸종됐다”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상식이 부족하군. 공룡 가운데 일부는 살아남아서 지금의 조류가 됐지.” 하면 된다.
실제로 티라노사우루스와 사촌뻘인 공룡 가운데 덩치가 작은 게 많았다. 그렇게 덩치 작은 공룡 가운데는 깃털이 달린 것도 있었다. 이런 공룡이 날다람쥐처럼 활공했든 아니면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나는 법을 익혔든 결국 날게 됐고, 그것이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 하늘을 지배하는 조류가 됐다.
아직도 못 믿겠다고 한다면 공룡 복원 프로젝트에 조류, 즉 새를 활용하는 방법도 덧붙이자. 아직 병아리의 형상을 갖추기 전 달걀 속 닭 배아에는 티라노사우루스와 공유했을 법한 공룡의 유전자 흔적이 있다. 만약 이 공룡의 흔적을 되살릴 수 있다면 현대에 공룡을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고자 지금도 과학자들이 연구 중이다.
이 글을 마감하는 7월 초 한반도는 무시무시하게 덥다. 이중삼중의 요인이 겹친 더운 날씨지만, 넓게 보면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테다. 운석이 최초의 원인이었지만, 결국 공룡 시대를 끝장낸 것도 그 이후에 찾아온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였다. 아주 비관적인 과학자가 지금 우리 인류가 여섯 번째 대멸종의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