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집에서 LP 음반을 듣곤 했다. LP 음반을 하나씩 사서 모을 때마다 왠지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김광석의 LP를 레코드 가게에서 샀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용돈을 조금씩 모아 마침내 원하는 음반을 샀을 때의 기쁨이 아마도 ‘내가 나에게 선물하는 행복’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곡을 더 빨리 듣고 싶어 레코드 위로 바늘을 옮겨 메뚜기처럼 ‘건너뛰기’하며 듣던 기억도 새롭다. 좋아하는 곡을 듣고 또 듣느라 바늘을 자꾸 똑같은 트랙으로 옮기던 그 기억의 따스함. 그리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LP 음반의 커버가 있다.
한 남자의 걸음걸이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그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걸음걸이가 마치 그가 살아온 모든 시간을 말하고 있는 듯 아스라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자신감 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축 늘어져 있지도 않은 어깨. 그러나 바라보는 순간 왠지 그의 일평생이 말을 걸어오는 느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온다. 바로 쿠바의 재즈 그룹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앨범 재킷이 된 기념비적인 장면, 쿠바 가수 이브라힘 페레르의 모습이다.
쿠바 음악의 정수,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목소리
이브라힘 페레르는 뛰어난 가수였지만 오랫동안 노래할 무대를 찾지 못해 구두닦이를 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쿠바 음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가 제작한 앨범에 가수로 참여하게 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프로젝트는, 1940년대 쿠바 아바나의 사교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활동했었지만 이제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옛 동지들을 찾아 새로운 밴드를 구성해 앨범을 만드는 것이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들은 물론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마라카스, 트롬본 등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하모니와 리듬까지. 쿠바 음악의 정수를 담은 음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전 세계 음악인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가 바로 감독 빔 벤더스에게 수많은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이었다.
“꽃들에게는 내 인생의 괴로움을 알리고 싶지 않아 / 내 슬픔을 알게 되면 / 꽃들도 울고 말 테니까”라며 ‘실렌시오(침묵)’를 노래하는 이브라힘 페레르의 구슬픈 목소리. 그 아름다운 목소리는 한없이 애절하면서도 결코 침울하게 가라앉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을 노래할 때조차 밝은 희망과 설렘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무리 반복해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LP 앨범은 물론 영화도 좋아했던 나는 이브라힘 페레르의 나라 쿠바에 꼭 가보고 싶었고 마침내 그 소원이 이뤄졌다.
이제 쿠바에서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같은 옛 음악의 정취를 찾기는 어렵다. 이브라힘 페레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으로 대표되는 쿠반 재즈(Cuban jazz)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 장르가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음악과 춤이다. 나는 그 공연을 보러 갔고, 매일 이런 공연을 보고 싶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쿠바의 어딜 가도 그들의 음악과 춤이 살아 있다. 거리에서 만난 청소부도 나에게 다가오며 자연스럽게 춤을 춰 미소 짓게 했다. 그에게서 청소 노동과 춤을 추는 몸짓이 하나가 된 듯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삶도 그렇게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았으면. 이렇게 모두가 춤을 추듯 즐겁게 노동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쿠바의 잊힌 음악가들을 전 세계적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이브라힘 페레르는 슈퍼스타가 된 이후에도 소박한 미소와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이브라힘 페레르는 열두 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아버지는 훨씬 전에 돌아가셨기에 열두 살에 고아가 된 그는 평생 가난과 투쟁하고, 외로움과 싸웠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유품(나사렛 성인의 모습을 작은 지팡이로 만든 것)을 마치 살아 있는 어머니처럼 모시며 살아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삶이 주는 이 고통들, 꽃들에게는 보이기 싫어요. 내 고통을 알게 된다면 알게 된다면 꽃들도 나처럼 울 테니까요. 내 슬픔 꽃들에게 보이기 싫어라. 울고 있는 날 본다면, 꽃들이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꽃들이 자신의 슬픔을 알게 된다면 꽃들마저 슬픔으로 시들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꽃들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슬픔이 먹먹하게 가슴속에 스며든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보이지 않았던 슬픔과 들리지 않았던 고통이 비로소 깨어나는 듯하다.
수줍으면서도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정함
쿠바 음악이 슬프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곡들은 대부분 흥겹다. 쿠바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춤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흥겨움’이다. 쿠바 사람들이 노래하거나 춤추는 모습을 보면, 재능과 열정에 ‘일상’이 더해진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물론 노래와 춤에 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들이 많지만, 쿠바 사람들에게 이런 노래와 춤은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너무나도 얌전한 모범생으로 보였던 우리의 쿠바 가이드 클라우디아도 음악이 나오니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일어나 춤을 췄는데, 그야말로 춤 실력이 일품이었다. 동작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굳이 힘들여서 추지 않으니 너무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쿠바 사람들은 다 이 정도로 춤을 잘 추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이 정도는 보통이지. 대부분 춤을 잘 춘다.”고 했다. 그들에게 춤은 잘 추고 못 추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밥을 먹듯이, 매일 일어나고 잠들 듯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었다.
춤을 잘 춰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는 듯 보였다. 늘 당연한 일상이기에 꼭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 여행자 일행에게 스텝을 가르쳐주면서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음악을 들을 줄 아는 감각,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줄 아는 감각, 부끄러움 없이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감각. 그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일부러 멋진 드레스를 살 필요도 없이, 일상복을 입고 춤을 춰도 충분히 멋있었다. 멋진 드레스를 떨쳐입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몸이 음악과 상황에 맞춰 아름답게 물결치는 ‘춤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쿠바에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많이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도 거리를 걸어도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져서 ‘낯선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이 매우 어색해진 느낌인데 쿠바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한참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다 싱긋 웃고 가기도 하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기도 하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반갑다고 잘 왔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늘 먼저 인사하고, 먼저 다가오고, 수줍으면서도 빤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정함에 금세 반했다. 그들은 낯선 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이 있었다. 나 또한 누군가를 한참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귐의 시작임을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다른 사람을 오래오래 바라보기보다는 휴대폰이나 책, 노트북 등을 보며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의 어색함을 피하려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라봐야 비로소 모든 것이 시작된다. 바라봐야 만남이 시작되고, 바라봐야 우정도 시작된다. 오고 가는 시선, 한 사람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시선, 그 모든 시선의 찬란함을 나는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 쿠바에 다녀온 뒤 한동안 ‘다정한 미소 모드’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아무 데서나 환히 웃었다. ‘미소 띤 쿠바인 모드’를 오래 유지하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니 다시 무뚝뚝한 도시인 모드로 돌아오고 말았지만.
지금도 웃음과 눈물과 내 안의 촉촉한 감수성을 되찾고 싶을 때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앨범을 듣는다. 내 안에도 꽃들에게 들릴까 봐 슬픔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이 남아 있기를. 청소를 할 때도 가볍게 춤을 추며 노동의 고됨을 잊을 줄 아는 유머가 남아 있기를. 춤과 노래와 일상이 하나가 되는 쿠바인들의 열정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