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우리 기업이 인도시장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인도가 강조하는 제조업 육성, 공급망 안정, 기술협력, 현지생산 전략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91년 경제개혁 이후 인도의 통상정책은 단순히 자유화와 보호주의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당시 인도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과감한 시장 개방에 나섰지만 개방 경험이 곧 전면적인 자유무역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난 30여 년 동안 인도의 통상정책은 개방과 보호를 끊임없이 조정하며 자국 산업 경쟁력과 경제안보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최근 인도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확대하면서도 관세, 품질 규제, 산업보조금 정책을 병행하고 있는 모습은 이러한 변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외환위기 계기로 시장개방 등 경제개혁 실시했으나
농업 분야는 보호정책 유지하는 등 경제안보도 중시
인도의 통상정책은 1947년 독립 이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수입대체 산업화로 시작된다. 당시 인도는 외환 부족과 산업 보호를 이유로 강력한 수입 규제체계를 구축했다. 고율 관세, 수입 라이선스 제도, 외환 통제, 공공 부문 우선 정책 등이 결합된 체제에서 인도경제는 사실상 폐쇄경제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됐다. 1990년 인도의 평균 관세율은 약 125%, 최고 관세율은 355%에 달했으며 제조업 대부분은 국내 기업을 중심으로 보호받았다.
1991년 외환위기는 인도의 경제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걸프전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외환보유액이 수입 2~3주분 수준까지 감소하자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지원과 함께 전면적인 경제 자유화를 단행했다. 이에 따라 관세율은 대폭 인하됐고 외국인직접투자(FDI) 개방도 본격화됐다. 인도의 최고 관세율은 1991년 355%에서 2007년 10% 수준까지 하락했으며, 무역 규모 역시 GDP 대비 20% 미만에서 40% 이상으로 확대됐다.
이 시기 인도는 WTO 체제에도 적극 참여했다. 1995년 WTO 창립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 시장 개방을 확대했지만, 농업 분야에서는 높은 수준의 보호정책을 유지했다. 제조업 관세는 빠르게 인하된 반면 농업 평균 관세는 30% 안팎을 유지했고, 유제품·곡물·설탕 등 민감 품목은 여전히 보호 대상이었다. 이는 인도가 개방과 산업 보호를 동시에 추구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후 인도는 싱가포르, 아세안(ASEAN), 한국, 일본 등과 잇달아 FTA를 체결하며 아시아 공급망에 편입됐고, FTA를 성장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 발효된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은 양국 경제협력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 기업들은 이를 기반으로 인도 내 생산과 투자를 확대했고 양국의 공급망 연계도 강화됐다.
그러나 인도의 FTA를 활용한 수출 확대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고, 무역적자로 인해 인도 내 FTA 회의론도 존재했다. 특히 인도·아세안 FTA가 중국산 제품의 우회 수출 통로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는 일부 제조업계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도 측에서는 한국과의 CEPA에 대해서도 실익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제기했지만, 최근 개선 협상에서 공급망 협력과 디지털 무역 등 새로운 의제가 논의되며 전략적 경제협력 체제로 진화하고 있다.
FTA 효과에 대한 일부 회의론이 제기되며 인도의 통상정책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는 인도의 2019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탈퇴에 영향을 미쳤다. 인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FTA 출범을 눈앞에 두고 최종 협상 단계에서 참여를 포기했는데, 여기에는 중국산 제품 유입 확대 가능성, 농업·유제품 시장 개방 부담, 서비스 분야에서의 실익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1천억 달러를 넘어서는 상황에서 공급망 의존도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는 인도가 단순한 시장 개방보다 산업 경쟁력과 경제안보를 우선시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관세 인하 중심 아닌 공급망 안보형 FTA 추진…
우리 기업, 공급망·산업협력의 핵심 파트너 돼야
RCEP 탈퇴 이후 인도의 통상정책은 또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모디 정부는 ‘자립 인도’를 국가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어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제도를 도입하며 산업정책과 통상정책을 결합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배터리, 전자, 자동차, 태양광 등 전략산업에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관세와 필수 인증 등을 활용해 수입 경쟁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편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도가 보호정책을 강화하면서도 FTA 체결에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는 아랍에미리트(UAE), 호주와 무역 협정을 맺은 데 이어 EU에 가입하지 않은 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 4개국이 만든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 협정을 체결했다. 지난해 영국과는 FTA를 체결했고, 올해 초 EU와도 FTA 타결 후 양국 간 비준 절차를 준비 중이다. 최근 인도가 추진하는 FTA는 단순한 시장 개방보다 공급망 안정과 투자 유치, 경제안보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며, 원산지 규정과 세이프가드 조항에도 보다 무게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UAE·인도 CEPA는 일정 수준 이상의 부가가치 기준과 직접 운송 요건을 포함해 제3국 경유 우회 수출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돼 있다.
결국 오늘날 인도의 통상정책은 무조건적인 자유화도, 전면적인 보호주의도 아니다. 인도는 개방의 혜택과 부작용을 모두 경험한 뒤 자국의 산업 경쟁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보호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전략산업과 공급망 협력이 필요한 분야에는 선택적으로 개방을 확대하는 ‘선별적 개방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시장 개방형 FTA에서 공급망 안보형 FTA로의 전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기업이 인도시장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단순한 수출 확대를 넘어서는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인도가 강조하는 제조업 육성, 공급망 안정, 기술협력, 현지생산 전략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인도시장 공략의 핵심이 관세 인하와 시장 접근성이었다면, 앞으로는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통상정책 변화는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인도는 더 이상 단순히 시장 개방을 추구하는 국가가 아니다. 개방과 보호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자국의 산업 경쟁력과 경제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 역시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단순한 수출 파트너를 넘어 공급망과 산업협력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