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엔 여러 학교가 몰려 있다. 지하철 역사 안 편의점은 학생들로 늘 북적인다. 그 편의점의 구색이 좀 다르다고 느낀 적이 있다. 뭐랄까, 학교 매점 같다. 즉석라면과 과자가 유독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매장 손님의 기호를 반영해 판매대를 구성하지 싶다. 한번은 소년들이 김치도 없이 즉석라면을 먹는 게 안쓰러워 김치 한 봉지를 사다 줬다. 이 얘기를 집에 했다가 혼이 났다. “애들이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니다, 아이들 입맛을 존중해라, 불쑥 음식을 내미는 방식은 불편한 것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다.
흔히 편의점, 삼각김밥, 즉석라면이 상징하는 건 ‘빈곤’이다. 정식으로 밥 한 끼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의 식사라는 걸로 정리되곤 한다. 절반만 맞다. 우선 이런 음식의 함의는 속도다. 바빠서 밥 먹을 시간조차 없는 사람의 메뉴라는 의미다. 거기에 그 음식 자체의 맛이다. 맛은 음식을 먹는 상황과 조건도 포함한다. 말하자면 군대 라면 같은 것으로, 맛이란 매우 심리적인 대목으로 읽을 수 있다.
다른 해석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로 이른바 ‘B급 구르메(gourmet·미식)’다. 고급이 아닌 대중음식에도 맛의 미학이 있다는 뜻이다. 라멘, 야키소바, 규동, 편의점 음식 등을 즐기는 문화인데, 핵심은 ‘싸서 어쩔 수 없이 먹는다’가 아니라 ‘오히려 맛이 좋다’는 취향의 적극적 긍정에 있다. 싸구려를 싸구려로 즐기는 태도, 거기서 오는 일종의 해방감이랄까.
일본 편의점 문화가 세계적으로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된 것은 이 맥락에서다(한국 편의점도 일본에서 왔다). 한국 청년들의 편의점 문화에는 지금 이 두 가지가 섞여 있다. ‘어쩔 수 없음’과 ‘이게 좋음’. 빈곤의 흔적과 취향의 선언. 유튜브를 보면 안다. 편의점 만찬이라던가 즉석라면의 다채로운 조합과 배달 음식에 대한 브이로그가 널려 있다. 단순 식사 기록이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소비된다. 조회수가 수백만을 넘는다. 보는 사람은 대리만족을 얻고, 영상을 올리는 사람은 정체성을 표현한다. 학자들은 이것을 편의성 소비문화 혹은 초가공식품 문화의 한 형태로 분석하지만 현장의 감각은 좀 더 복잡하다. 이런 개념과 함께 영미권에서 쓰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는 말도 들어왔다. 건강에 좋지 않고 수준도 높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다는 역설적 쾌감을 뜻한다. 편의점 식문화에는 이 감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음식문화가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니다. 사회의 분석적 시선에 의해 또렷해졌을 뿐이다. 나 역시 이런 음식을 즐기고, 먹어가며 살아왔다. 단무지 접시를 따로 주는 것조차 호사이던, 두어 쪽의 단무지를 국수 그릇에 함께 던져주던 학교 매점 우동은 왜 그리 맛있던지. 친구랑 둘이서 라면을 여섯 개 끓여 먹는다거나 설탕을 뿌려 식빵을 구워 먹던 기억 역시 거창하게 말하면 길티 플레저 아니었을까. 거기에다 떡볶이와 만두, 순대 같은 길거리 음식으로 내 몸을 살찌우고 뼈를 키웠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 고급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받는 오해가 있다. 식사도 고급으로 즐기지 않을까 하는. 스테이크를 썰고 버터와 랍스터를 넣은 파스타를 먹지 않을까 하는.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제육 백반이고 김치를 곁들인 라면이며 국밥이다. 서양 셰프들로 치자면 샌드위치와 빅맥과 타코인 셈이다.
우리는 누가 봐도 우수한 식단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민이 힘들게 기르고 집에서 만든 건강한 음식이 필요하다. 길티 플레저란 이런 음식을 먹을 권리를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이 용어 자체가 일종의 일탈이다. 건강한 음식 사이, 쉬어가듯 일탈의 재미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