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일시 : 2004년 8월 11일
장 소 : 보건복지부장관 집무실
대 담 자 :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정 : 요즘 경기침체가 지속되어 경제문제로 인한 가정해체, 자살, 결식아동, 단전·단수가구 증가 등 서민들의 고통이 심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장관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장관 : 말씀하신 것처럼 서민층의 고통이 매우 큽니다. 얼마 전 지역구 의원들을 만났어요. 그분 말씀이, 국회의원 선거 전에는 지역구 주민을 만나면 “잘해 주시오. 잘 못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요.”라고 했는데요, 요즘은 “제발 좀 살려주시오.”라고 말한답니다. 이처럼 서민의 생활경제가 매우 좋지 않고 그 고통이 심하다는 느낌입니다. 중산층에서 전락한 신빈곤층이 늘어나고, 청년층의 실업문제도 심각합니다. 열심히 사회활동을 해야 할 때에 어려운 상황에서 오는 좌절감 때문에 극단적으로 자살도 하게 되고, 여기에 사회지도층 인사가 한강에 투신한 사건을 언론이 선정적으로 보도하여 자살이 유행할 정도가 되는 이런 상황은 정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 : 사회지도층의 자살과 선정적인 언론도 문제가 있지만, 자살의 근본적인 문제는 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열증의 발병이유 중 하나는 어린시절 인간이면 누구나 받아야 할 기본적인 정서적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이 타인이나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사회로 확장시켜 보면 사회구성원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을 때 정신분열증 환자같이 최소한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안전망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 그 말씀을 들으니 ‘유영철 사건’이 생각납니다. 어려운 사람들이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게 되면, 좌절감에 빠지고 사회에 대하여 적개심을 가지게 됩니다. 생활이 더 어려워지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고요. 서로에 대한 불신과 대결, 적대감이 커지게 되면 사회가 분열되는 위기국면이 오게 됩니다.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잘 갖추어야 합니다.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의료급여제도 등을 통해 스스로의 노력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극빈층에게 소득ㆍ의료ㆍ주거ㆍ교육 등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령ㆍ질병 등의 위험으로부터 현재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민연금제도ㆍ건강보험제도를 시행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의 기본틀을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불안정할수록 사회안전망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경제가 국민소득 1만달러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2만달러 시대로 발전하려면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정 : 국민통합을 이루고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복지지출을 늘리는 사회안전망 강화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장관 :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력으로 민주화를 이룬 나라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누구나 두려움 없이 자기주장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해관계가 적나라하게 표출되어 대립과 갈등이 많아졌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타협하기보다 투쟁하려고 하고, 관철되지 않으면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리더십이 공백상태라고 할 정도이고, 도덕적 해이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통합을 이루고 다시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거대담론’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사회안전망 강화냐?” 합니다. 사회통합을 위한 거대담론이 한 쪽으로 밀려나 있는 느낌입니다. 불신과 대결의 사회를 믿음과 화합의 사회, 희망의 사회로 만들기 위한 진단과 처방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정 선생님은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진단과 처방을 하십니다. 보건복지부는 분열과 대결의 사회를 희망의 사회로 통합해 나가기 위해 진단과 처방을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정 선생님과 저는 동업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 : 동업자란 말씀을 들으니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단과 처방을 하는 데는 전문적인 기술(의술ㆍ행정)도 중요하지만 그 일과 대상인 사람에 대한 정신(마음가짐)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 체험행사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장관님께서도 현장을 돌아보셨는데요. 그 행사에서 전 큰 충격을 느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직접 살아보면서 느끼는 것들, 또 그것을 언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경험들은 우리 사회가 통합으로 나아가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정책을 담당하는 분들은 반드시 현장을 체험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관 : 옳은 말씀이십니다. 저도 1960년대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산 적이 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와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최저생계비로 한달 나기’ 체험을 하면서, 이가 없어서 도시락을 못 드시는 할아버지ㆍ할머니께 국을 배달해드렸습니다. 제가 전기고문을 당했을 때 이가 모두 들떠서 밥을 먹을 수 없었을 때 빵을 우유에 넣어서 말아먹은 생각이 났습니다. 공무원들이 이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현장을 느껴보고 따뜻한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저생계비가 대도시 기준으로는 부족하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데 재정의 한계, 도덕적 해이의 예방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정 : 경험을 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는 최적의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에게 ‘체험의 제도화’가 필요합니다. 의대교육 중에도 1일간 병원에 입원해서 ‘환자 경험하기’를 시행한 곳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굉장한 반응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보건복지정책은 생활밀착형 정책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체험을 많이 하면 정책도 그만큼 정교해지고 실질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장관 :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철학자는 감옥과 병원은 감시체계라고 하였습니다. 의사는 입원해서 환자가 되어보고, 법률가는 교도소 체험을,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곳,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곳이 보건복지부의 설 자리입니다. 공무원들이 현장으로 가서 느끼고 어려운 분들에 대한 느낌을 갖도록 시선을 역전시켜 보는 노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 : 정부의 정책을 최일선에서 수행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고통을 함께 하며 돌봐주는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입니다. 저도 정신과 환자의 사회적응을 돕는 일을 하면서 병원과 지역사회의 사회복지사들과 일을 오랫동안 같이 해봐서 잘 압니다. 정말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관 : 보건복지부 공무원들도 이 찜통더위에 고생이 참 많습니다. 오후 6시가 되면 냉방이 꺼지고 사무실도 비좁아서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 됩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공무원들이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도록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좋은 정책결정을 바란다면 공무원이 존중받는 여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정 : 사람들은 모두가 존중받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살의 경우도 그런데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누구 한 사람만 그 고통을 공감해 준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자살은 주관적 절망감 때문에 일어납니다. 가족이라는 1차 정서적 지지집단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족처럼 다가가 그런 역할을 해 주는 사람들이 사회복지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노력하는 것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수가 공무원의 60% 수준이라던데요. 그들이 생활걱정을 안 하고 일할 수 있어야 사회의 1차 지지망이 탄탄해질 것입니다.
장관 : 사회복지사 문제는 만나서 고민해 보겠습니다.
정 : 장관님께서 국 배달을 말씀하셨는데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주 적고 세심한 배려가 수용자의 복지체감도 증진에 큰 역할을 합니다. 재정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복지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이지요.
장관 : 수요자 입장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결식아동 급식문제를 보면, 정부에서 주는 식권을 받는 아이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밥을 굶는다고 하니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개인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복지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 : 아이의 그런 자존심은 사치한 것이 아니라 ‘최저생존 감정’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밥은 굶어도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만은 다치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 아닐까요. 정책 속에 그런 인간의 감정을 배려하는 철학이 배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 정책에 있어서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공감이 갑니다. 보건복지부에 정신보건과가 있습니다. 정책과정에 정 선생님이 자문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책 속에 국민을 생각하는 정신, 수요자의 입장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정신이 정말 필요합니다. PPA(페닐 프로판올 아민) 성분 감기약 사건이나 만두파동을 보고, 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공무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고 고생도 많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하는 일은 국민의 불신과 의혹을 증폭시킵니다. 국민 모두가 사용해 온 PPA 성분 감기약에 대한 사용금지는 국민들에게 굉장히 큰 심리적 충격을 주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토요일날 발표했어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국민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 국민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정 : 만두파동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데요?
장관 :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생기면 언론이라든지, 정치권 등 주위에서 압력이 심하지요. 뭔가 빨리 내어놓으라고 압력을 가하지요. 언론이나 정치권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아마 원칙을 지키기가 힘든 압력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원칙을 지키며 꿋꿋하게 견뎌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항상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정 : 질병, 노후소득 보장 등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사회안전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 건강보험 문제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장관 : 사회보험은 전국민의 90%가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사회안전망입니다. 유럽의 경우, 정권의 운명이 바뀌는 중요한 문제이지요. 우리 사회가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고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될 전망이기 때문에 사회보험의 기능을 강화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국민연금 문제는 현재 불신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만, 계층간ㆍ세대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기 때문에 국민적 토론과 타협이 필요합니다. 불만세력의 동의를 받는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정 : 내가 양보를 하는 것이 희생이 아니고 자신에게도 궁극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근거를 제시하고 꾸준히 설득해야 하겠습니다. 분배가 잘 되면 그 결과가 기여한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 우리 사회가 타협으로 통합을 이루면 선순환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불신ㆍ갈등ㆍ투쟁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를 붕괴시키는 것밖에 없습니다. 올바른 원칙을 세우고 지키며 땀 흘려 일한 것만큼 보상을 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타협을 하고, 이를 흔쾌히 수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