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제1단계 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오는 4월부터 서울-부산 간과 서울-목포 간에 고속열차가 운행될 예정이다. 또한 412km 전구간이 신선으로 건설되는 제2단계 사업이 끝나는 2010년에는 서울-부산 간을 2시간 이내로 주파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고속철도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는 1973년 세계은행의 경부축에 새로운 철도건설 필요성 제안, 1983년 경부고속철도건설 타당성조사 완료, 1990년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 및 기본노선 확정, 2001년 고속열차 최고시속 300km 시험 운행, 2004년 4월 개통 등 지난 30년간 이룩한 국가적 대역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고속철은 지난 30년간 이룩한 국가적 대역사의 결과
그동안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일본의 신칸센, 프랑스의 TGV, 독일의 ICE 등 고속철도 시스템 선정문제, 기본계획과 설계의 잦은 변경, 부실공사 문제 대두, 건설사업비의 급증, IMF 외환위기에 따른 사업중단 논의, 중간역 설치에 대한 지역주민의 민원 제기, 고속열차의 서울 출발역 결정, 대도시 중심역의 지하화 요구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치, 경제, 사회, 행·재정, 기술적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들 문제들 중 일부는 아직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지만, 그간의 시련과 저력으로 볼 때 앞으로 슬기롭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보고서와 논문에서 논의된 바 있다. 1990년대 초부터 여러 차례의 국제학술 발표회를 통하여 일본·프랑스·독일 등 외국사례를 살펴본 바 있으며, 관련 국책연구원과 학회 등의 공청회를 개최하여 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정책적·계획적·기술적 쟁점을 발표·토론한 바 있다.
발표내용 중 대표적인 논제를 열거한다면 고속철도 건설의 경제적 타당성 분석, 지역간 접근성 및 인구이동과 분포 변화 분석, 산업입지 선호 분석, 교통체계 구축방안, 역세권 개발방안, 고속철도 역사 설계 등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기존 연구 자료를 기초로 하여 고속철도 개통에 따른 파급효과와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로 한다.
국가 차원의 지역균형발전 정책 수립은 필수
고속철도의 파급효과는 공간적 범위로서 국제·국토·지역·도시·지역사회 등으로, 시간적 범위로서 단기·중기·장기로, 영향분야로서 정치·행정·경제·산업·사회·문화·예술·여가·교통·일상생활 등으로 구분하여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주요 쟁점이 되는 파급효과 중심으로 ①국토공간구조 개편, ②지역경제 활성화, ③도시개발 패턴 변화, ④교통체계 개편, ⑤동북아 물류중심 체계 구축 측면에서 논의하기로 한다.
첫째, 고속철도는 접근성과 이동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때문에 국토공간구조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며, 특히 수도권집중의 공간구조를 개편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국토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2010년 경부고속철도 신선이 개통되면 접근성이 대폭 향상되어 전국인구의 95.2%가 4시간 이내, 48.0%가 1시간 이내의 통행권역에 거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특히 대도시 인구가 자연환경이 보다 양호한 교외지역으로 이주·통근하는 인구가 늘어나며, 제조업 공장도 지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으로 분산됨으로써 수도권 과밀현상을 완화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1964년 도쿄-오사카간 신칸센이 처음 개통된 후 고속철도망이 계속 확충됨에 따라 동경권을 비롯한 대도시권의 인구 및 기능 집중이 완화되었으며, 특히 통근인구가 늘어나 2000년말 현재 하루 4만2천명에 이르고 있다. 독일도 1991년 고속철도 개통이 에센지역의 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 대도시 인구분산에 기여했다는 보고가 있다. 따라서 고속철도 개통을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과 도시구조 개편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차도시 및 비정차도시와 고속철도로부터 접근성이 낮은 지역간의 지역균형발전 전략과 중앙정부의 행정권과 재정권의 실질적인 지방이양 정책을 연계하는 등 서울 등 수도권 과밀문제 개선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둘째, 고속철도 개통은 접근성의 향상에 의한 교통비 절감에 따라 산업제품 가격·생산량·고용·물류비 등의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지역내 총생산과 국내총생산 증대에 기여하게 된다. 고속철도 개통이 거시적 측면의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정차도시를 중심으로 볼 때 경제적 파급효과는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외국의 사례에서 그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도호쿠 신칸센 정차도시의 매출액이 비정차도시보다 10% 정도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된 바 있으며, 특히 센다이시는 관광 관련 산업, 도·소매업, 운수업 등의 매출액이 두드러지게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리용의 남동 TGV 중간 정차도시를 지역경제 활성화를 고려하여 정책적으로 선정한 바 있다. 즉, 제철산업을 촉진하기 위해 르 쿠르소(Le Creusot)와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매콩(Macon)을 각각 중간 정차도시로 선정한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 때문이다. 반면에 기존 철도가 통과하는 이 지역 중심도시인 디종(Dijong)은 남동 TGV노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과거 파리와 리용과 대등한 경쟁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 것은 고속철도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속철도는 기존의 지역간 공간적 위계체계를 바꾸는 요인 즉, 파리대학의 Auphan교수가 말하는 ‘공간영역의 구조개편 요인’(de-structuring agent in territory)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고속철도는 지역간·도시간 무한 경쟁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지역경제 측면에서 정차도시와 비정차도시 간의 격차는 해당 도시의 자구책 여하에 따라 심화되며, 정차도시간에도 인구·고용·산업·교육 등의 치열한 유치경쟁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비정차도시와 고속철도의 접근이 곤란한 지역에 대한 경제기반 구축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역균형발전 정책 수립이 필수적이다.
큰제목 : 기존 도시개발 패턴 및 교통체계 개편 불가피
셋째,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을 통하여 기존 도시개발 패턴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일본의 역세권 개발사례를 보면 고속철도 역세권 개발유형은 기존 도시내 역사주변지역 개발형과 신시가지 또는 미개발지내 역사 신설 및 주변지역 개발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본의 하마마쓰, 프랑스의 릴(Lille)이 전자에 속하고, 신요코하마·방돔(Vendome)이 후자에 속한다. 기존 도시내 역세권 개발은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통하여 주변지역의 토지이용 극대화, 서비스산업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며, 가로망 정비 및 대중교통수단 확충 등 도시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편 신시가지 역세권 개발은 기존 도시와의 역할분담을 위한 공간구조 개편, 방문객을 위한 도시이미지 제고, 소규모 첨단산업단지, 업무 및 상업·호텔·문화 시설지구 조성 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대서양 TGV의 중간역인 인구 2만2천명의 방돔(Vendome)은 기존 도심지에서 4km 떨어진 지역에 신시가지형 역세권을 개발하여 역사주변에 업무빌딩·호텔·골프장·공원·테크노 파크를 조성, 기업과 부동산 투자를 유치함으로써 테크노 파크의 200개를 포함하여 1,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여 도시 전체의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바 있다.
이러한 외국의 역세권 개발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를 들면, 현재 정차역으로 신설되는 광명역과 천안아산역은 기존 도시에서 대체로 3~5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역세권 주변지역이 신도시로 개발될 예정이다. 천안아산역의 경우 아산배방 지구에 인구 2만4천명을 수용하는 1단계 신도시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고속철도 역사를 중심으로 산·학·연 벨트를 구축하고 자족도시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역세권 신도시를 개발할 때는 기존 도시와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종합적인 개발계획 수립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개발계획을 통하여 신도시와 구도시 간의 역할분담과 주택·업무·상업·산업·공공시설의 재배치, 대중교통과 녹색교통 중심의 교통체계 구축 등 도시 전체의 재생차원에서 접근해야 비로소 도시이미지 제고, 도시공간구조 개편, 대도시 통근인구 유치,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도로·철도·항공 등 교통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이 불가피하다. 1단계 고속철도 경부축의 경우 서울에서 천안아산까지 96.3km에 34분, 대전 159.7km에 50분, 대구 292.4km에 1시간 39분, 부산 409.8km에 2시간 40분이 각각 소요된다. 장거리의 경우 항공 여객수요가 고속철도로 전환됨에 따라 국내항공사의 구조개편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2002년에 발표한 고속철도 대 항공기의 거리대별 분담률(2000년 기준)을 보면 300~500km는 47% 대 13%, 500~700km는 67% 대 15%, 700~1천km는 30% 대 54%, 1천km 구간에는 8% 대 87%로 조사되고 있다. 요약하면 700km 이내는 고속철도가, 그 이상의 거리면 항공이 점유율이 높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도쿄-오사카(550km), 도쿄-오카야마(730km)간 고속철도와 항공 간의 요금인하와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바 있다.
우리의 경우, 교통개발연구원 연구에 의하면 서울-부산의 경우 항공수요의 50~65%가 고속철도로 전환되고, 도시간의 거리대와 시간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승용차와 고속버스 이용자의 30~75%가 고속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역간 여객통행의 경우 통행수단간의 경쟁을 유도하기보다 각 수단의 특성에 맞게 거리대별로 역할분담을 하도록 교통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200km 이내는 승용차·고속버스·일반철도 중심으로, 200~400km는 일반철도·고속철도 중심으로, 400km 이상은 고속철도와 항공기 간의 분점형태를 유도하는 것도 국가교통체계면에서는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수단간의 운임정책, 공항시설 등의 정비, 고속버스 터미널의 정비 등이 필요하다. 또한 공항과 중심업무지구 간의 연계교통수단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도시내 여러 개의 복합 환승센터 건설 등이 필수적이다.
교통체계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과제는 고속철도와 일반철도 간의 역할분담이다. 현재 고속철도 요금은 구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새마을 운임의 평균 1.25배 수준인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 승객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 정시성·신속성·쾌적성·편리성 등 고급의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고속철도를 선호하기 때문에 새마을·무궁화 등 일반열차의 승객수요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의 경우도 고속열차 노조미(희망)·히카리(빛)·고다마(총알)의 승객수요를 보면, 시속 270km를 주파하는 노조미는 증가 추세에 있고, 히카리는 감소하며, 고다마는 크게 변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는 신칸센의 경우 시간대별·거리대별로 일정 규모의 승객수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고속철도가 개통되어도 새마을·무궁화 등 일반열차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므로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과 시설 개선을 통하여 특히 저소득층에게도 일정 수준의 교통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고속철도 통근자를 위한 정기권을 발행하여 요금 할인혜택을 부여하는 한편, 기업의 고속철도 통근자 보조금 지급에 대한 세제혜택을 부여한다면 고속철도의 승객수요를 확보할 뿐 아니라 대도시 인구분산에도 기여할 것이다.
동북가 물류중심에 대한 지속적 연구 필요
끝으로, 우리나라가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전국 고속도로망, 고속철도망, 부산신항만, 인천국제공항 등 육·해·공의 공간영역을 點과 線적인 연결에서 면적, 입체적인 통합을 촉진할 수 있는 국가기간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다. 일본·프랑스·독일·스페인 등 고속철도 선진국은 지역간 교통체계를 이미 고속철도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특히 중국과 대만도 주요 거점도시를 고규격, 고속교통망 체계로 바꾸는 한편, 물류비 저감을 위해 여객과 화물수송의 분담체계를 구축하여 경쟁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와 같이 외국의 동향을 고려해 볼 때, 경부축과 호남축의 고속열차 개통을 계기로 호남고속철도·동서고속철도 등 전국적 고속철도망을 구축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호남고속철도의 경우 현재 기본계획수립이 완료되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2006년에 착공, 2011년에 완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서울과 강릉간 동서고속철도도 한동안 민간자본 유치로 건설하는 방안이 계획된 바 있다.
그러나 경부고속철도 건설사업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사업의 효율적·효과적 추진을 위해 초창기부터 정치·경제·재정·사회·기술적 여건뿐 아니라 환경·지역개발과 특히 주민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건설과정상에서 발생하는 시간적·금전적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한편, 남북한간의 철도연결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한반도 전체를 고속철도망으로 연결하는 구상이 보다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 화물을 중국 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거쳐 유럽까지 수송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공공 및 민간의 여러 기관에서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수송과정에서 정치 및 경제 체제가 다른 여러 국가를 통과함에 따른 국제정치적·법적·제도적·기술적 문제가 대두되어 실질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 주제에 대해 장기과제로 설정하여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회 등을 구성하는 등 지속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