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에 관한 신문 기사는 배경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경제안정화 정책의 일환인 통화정책에 대한 내용은 더욱 그렇다. 경제 교과서에서 통화정책에 대해서 배우기는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통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연방준비제도(연준)에서 실시하는 정책들은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느낌마저 들게 할 정도로 낯선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9일 전 세계의 주목을 끈 버냉키 의장의 통화정책 결정문 발표에도 낯선 경제용어가 많이 나왔다. 이번 발표가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미국의 신용등급강등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주가 폭락과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엄청난 불황에 빠져들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경기가 불황에 빠지거나 빠질 우려가 있을 때 정책 담당자는 경기안정화 정책을 발동해야 한다. 따라서 세계 경의 중심인 미국의 통화정책을 좌우하는 연준 의장의 정책 발표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버냉키 의장은 제로금리를 향후 2년 간 유지한다고 발표하고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발표를 보도한 어떤 신문은 ‘지갑을 열지 않은 버냉키’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고 다른 언론은 ‘최후의 카드를 아낀 버냉키’라고 촌평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제로금리를 유지한다는 버냉키의 발표는 이해가 쉬운 편이다. 금리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깝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금리가 반드시 0이 아니어도 제로 금리가 되기 때문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금방 이해를 했을 텐데, 금리 수준이 물가상승률 이하라면 이자가 물가 상승분을 따라잡지 못해 실제적인 금리는 0이나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다.
제로금리가 되면 사람들은 돈을 저축하기보다는 소비하거나 실물 자산에 투자하게 된다. 왜냐하면 돈의 가치가 좋아봐야 그대로이고 인플레이션 발생 시에는 급격하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에 겁을 내지 않게 된다. 금리가 제로이니 이자 부담이 없고 이문이 조금밖에 남지 않는 사업이라도 투자할 여력이 생긴다. 제로금리 정책은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키기 위한 통화정책인 셈이다.
‘지갑을 열지 않은 버냉키’나 ‘최후의 카드를 아낀 버냉키’는 무슨 뜻일까?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선진국들의 주요 통화정책은 기준금리의 인상과 인하이다. 경기가 계속 불황에 빠지면 기준금리를 인하하게 되는데, 금리가 제로금리가 되어버릴 때까지 갔다는 것은 기준금리 조정을 통한 통화정책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 된다. 금리정책을 잘 몰라도 이해가 어렵지 않은 것이 금리가 제로가 되었으니 더 내려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제로금리가 되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때, 비상수단으로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서 금융회사에 직접 돈을 공급하는 통화정책이 양적완화이다. 버냉키가 ‘최후의 카드’를 아꼈다거나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이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뜻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근본적으로 경기 침체기에 추진하는 통화정책은 모두 통화량의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넓은 의미로 보면 제로금리도 양적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지만, 제로금리가 간접적이고 1차적인 정책이라면 양적완화는 직접적이고 비상시에 공격적으로 쓰는 수단이라는 차이가 있다.
전대원 진건고 교사 | amhare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