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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여울의 나란히 한 걸음장엄함과 숭고함 앞에서 비로소 겸허해지는 마음
정여울 『감수성 수업』,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2024년 10월호


모아이 석상, 버뮤다 삼각지 등과 함께 전 세계 10대 미스터리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톤헨지. 스톤헨지를 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아직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왜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며 그토록 엄청난 노력을 들여 이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또 그렇게 신비한 미스터리로 가득한 공간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그곳에 가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점이다. 합리적 설명 때문에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엄함과 신비 자체에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마추픽추에 갔을 때도, 네스호에 갔을 때도, 이과수 폭포에 갔을 때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어도 그곳에 가면 그저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고, 사진으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장엄한 기운에 놀라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나는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가’라는 생각에 입이 다물어진다. 미미한 존재여서 슬픈 것이 아니라, 미미한 존재라서 다행이고, 고맙고, 무한한 축복인 듯 느껴지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미미한 존재들
나는 이 장엄한 존재들 가운데서 필사적으로 의미를 찾는, 먼지보다 더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해내기 위해 너무 필사적으로 애를 쓰는 평소의 나를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노력과 갈망이 쓸데없다는 뜻이 아니다.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려는 나’를 존중하면서도, ‘이곳에서는 그냥 작고, 힘없는 나로 충분하다’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힘으로는 피라미드를 만들 수 없고, 나 한 사람의 힘으로는 스톤헨지의 돌덩어리 하나도 들어 올릴 수 없음을 새삼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장엄하고 숭고한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이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들며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이 샘솟는다.

스톤헨지가 자리하고 있는 영국 솔즈베리 평원을 걷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치유와 돌봄의 길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방문한 당일 비가 왔음에도 사람들은 스톤헨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비 오는 흙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10여 년 전 스톤헨지에 처음 갔을 때는 솔즈베리역을 거쳐 버스를 타고 이동했고, 이번에는 런던에서 출발하는 단체 투어 패키지를 이용했다. 런던-스톤헨지-코츠월즈-옥스퍼드 투어 코스가 가장 인기리에 진행되고 있다. 한 장소에 오래 있으면서 그곳을 자세히 보고 싶어 하는 나에게는 첫 번째 방법이 더 좋았다. 솔즈베리의 캔터베리 대성당을 둘러보고 스톤헨지를 보고 오는 하루 코스가 그 ‘장엄함과 숭고함’을 훨씬 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처음 스톤헨지에 가는 사람들은 다소 어안이 벙벙할 수도 있다. ‘이 거대한 돌무더기를 보려고 그 머나먼 길을 고생해서 온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그 앞에 가면 알 수 없는 장엄한 기운에 기분 좋게 휩쓸리게 된다. 뭔가 대단한 것을 보려고만 하는 관광객의 욕심이 가라앉으면서, 무려 5천여 년 전에 이 무겁디무거운 돌을 옮기며 죽은 사람을 매장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빌기도 했을 옛사람들의 꿈과 희망과 슬픔과 문득 ‘연결되는 느낌’에 놀라게 된다.

숭고함과 장엄함을 간직한 공간들 앞에서 전 세계 어디서나 발견되는 공통된 행동 패턴이 있다. 바로 ‘간절한 기도의 행렬’이다. 아직도 스톤헨지에 대한 별의별 추측이 난무하고,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몸짓을 보여준다. 여행자들은 스톤헨지에서 불현듯 순례자로 변신한다. 전 세계에서 스톤헨지를 보러 온 여행자들은 어느덧 기도하러 가는 순례자의 행렬처럼 스톤헨지 주변을 조용히 돌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기도하는 마음의 공동체
평생 어떤 종교도 선택하지 못한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뒤를 따라 소원을 빌기 시작한다. 그래도 따라 하고 싶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미소 짓는다. ‘그래, 이 아름다운 스톤헨지를 만든 것은, 그들 각자가 저마다 간절한 소원을 빌기 위해서였을 거야.’ 누구도 ‘그렇다, 바로 기도를 위해서다’라고 진실의 종지부를 찍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탑돌이 하듯 스톤헨지를 뱅뱅 돌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우리가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을 찾아낸 것이 아닐까.

저 장엄한 스톤헨지 앞에서, 누군가는 춤을 출 수도 있고 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필연적으로 남들의 이목을 끌게 될 것이다. 타인의 이목을 지나치게 끌지 않고 조용히 각자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기도’ 아닐까. 무언가를 간절히 표현하면서도 표현한다는 과도한 제스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 간절히 무언가를 말하지만, 꼭 무언가를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 나는 그것이 기도라는 것을 그날 처음으로 이해했다.

표현하면서도 표현의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 행위, 말을 하면서도 소리가 나지 않는 몸짓. 그것이 기도의 아름다움임을 깨달았다. 아무런 종교가 없지만 이런 곳에 오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심정’이 되는 나를 이해할 수도 있게 됐다. 사실 이런 곳에 오지 않아도 힘겨울 때마다 기도하는 심정에 빠지지만, 스톤헨지 같은 곳은 마치 모두가 모여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전 세계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를 뛰어넘어, 저마다의 종교를 뛰어넘어, 저마다의 상황과 사연조차 뛰어넘어 ‘기도하는 마음의 공동체’를 이룬 것 같아 더욱 감격스러웠다.

나는 원래 사진이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선 나도 모르게 셀카를 찍고 있었다. 스톤헨지에 와서 이렇게 장엄한 감동의 시간을 느꼈다는 사실만은 어떻게든 기억하고 싶었나 보다. 멀리서 스톤헨지를 마치 미니어처처럼 손바닥에 올려놓는 듯한 재미있는 착시 사진을 어떻게든 찍어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금발의 중년 여성이 나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내가 사진을 찍어줄까요?”라고 묻는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어떻게든 셀카를 찍겠다고 애를 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나는 내 서툰 셀카 욕망을 들켜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성 들여 사진을 찍어주고는 따스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 곁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그녀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고 나자 문득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걸. 나의 부끄러움 때문에 제대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못내 후회가 밀려왔다. 당신은 스톤헨지를 왜 좋아하냐고. 당신에게 스톤헨지는 어떤 의미냐고. 그런 것들을 묻고 대화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 아쉬운 마음도 ‘기도하는 마음’에 실어 보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나를 위해 사진을 찍어준 그녀가 내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이 낯선 우주에서 불가해한 인연으로 만난 우리가 저마다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이렇게 생면부지의 타인까지도 친밀하고 따사로운 인연의 공동체로 연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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