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유난히 열광했던 몇몇 단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불가사의’였다. ‘불가사의’라는 말에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어서 서점이나 학교 도서실에서 이 단어가 박혀 있는 표지를 발견하면 홀린 듯이 그 책을 펴 들곤 했다. ‘공룡기’ 공룡 이름들을 줄줄 외우고 다녔던 것처럼 ‘세계 7대 불가사의’ 목록도 언제든 읊을 수 있었다(책에 따라 목록의 차이가 있긴 했다). 가장 나의 이목을 끌었던 건 이집트 대피라미드였다. 7대 불가사의 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축물이어서도 그랬지만, 피라미드에 얽힌 가설(이라고 쓰고 ‘음모론’이라고 읽는)들이 무척이나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특히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외계인 축조설’과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진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 주민들이 만들었다는 ‘아틀란티스 문명설’을 좋아했다.
둘 중 하나이길 바랐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만들었다’는 당연해서 시시한 이야기보다는, 역시 불가사의한 존재인 외계인과 아틀란티스의 주민이 등장하는 게 훨씬 매력적이어서 믿고 싶었던 것 같다[이런 걸 믿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도 따로 있는데 ‘피라미드(pyramid)’와 ‘바보(idiot)’를 합친 ‘피라미드 바보(pyramidiot)’다].
이 가설들의 기저에 굉장히 불쾌하고 부당한 전제가 깔려 있다는 걸 감지한 건 5년 전,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SNS에 올린 “피라미드는 당연히 외계인이 지었다”라는 글에서였다. 이 글에 이집트 장관과 이집트 고고학자들이 거세게 반박했고 BBC도 나서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를 직접 지었다는 확실한 증거들이 1990년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처음 깨달았다. 외계인 축조설이나 아틀란티스 문명설이 ‘서구권’ 지식인들(이라고 쓰고 ‘백인들’이라고 읽는) 사이에서 강력한 가설로 제기된 데는, ‘문명화된 백인들이 아닌 문명화되지 못해 미개한 비서구권 야만인들이 이렇게 복잡하고 위대한 유적을 만들 지적 능력과 공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리 없다’는 인종차별적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실제로 피라미드처럼 외계인 축조설이 제기되는 50여 개의 유적 중 백인문화권에 속한 건축물은 영국에 있는 스톤헨지가 유일할 정도다. 편견이란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아프리카인이 지었다고 믿느니 외계인이 지었다고 믿는 쪽을 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 백색의 완고함이라니.
그런데 비단 피라미드 음모론뿐일까?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나 “아는 것이 힘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은 믿지 마라” 같이 상식으로 믿고 있는 진리들은? 우리가 따르고 사는 ‘시간’이 그리니치 표준시라는 것은 당연한가? 런던 박물관에서 연구자로 일하는 수바드라 다스가 쓴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학문의 권위가 제국주의, 인종주의와 얽혀 ‘보편적 진리’처럼 포장돼 온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 책으로, 우리가 의심 없이 수용하는 지혜들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그 깊숙한 곳에 심긴 서구 문명의 폭력적인 세뇌 흔적들을 드러낸다. ‘세련된 현대성’, ‘합리주의’ 같이 평소 문명의 척도가 된 기준들이 얼마나 ‘식민화된’ 것인지 반성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서구권 박물관들이 ‘무엇을 전시했는가’보다 ‘무엇을 제외했는가(=삭제했는가)’를 헤아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듯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물었는가’보다 ‘무엇을 묻지 않았는가(=물을 생각조차 못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가르쳐준다.
서구 문명이라는 ‘브랜드’의 하청공장처럼 살던 것을 멈추기. 덜 문명화된 듯 보이지만 더 현명한 길 찾아내기. 불가능한 일들이지만 이런 방향성을 갖고 사는 건 꼭 필요한 일이기에, 이 책만큼은 정말이지 10대를 비롯한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문명화되었다고들 얘기하는 서구 세계에서는 ‘펜이 칼보다 강하지’ 않다. 펜이 정말로 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칼을 먼저 들고 있었을 때(···)뿐이다.”
- p.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