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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오마카세와 한국의 이모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5년 10월호


‘오마카세’라는 말이 유행한 지 오래다. 한국은 유행 주기가1년이었다가, 이젠 아예 분기로 바뀌었다는 농담도 있다. 오마카세는 꿋꿋하다. 오래 간다. 오마카세는 한국에서 고급 일식, 그중에서도 카운터를 갖춘 초밥집에서 유행한 말이다. 일본은 다양한 장소에서 오마카세를 하지만, 초밥집에서 자주 쓰인다. 그날그날 들어오는 생선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초밥집에서도 흔히 하는 방식이다.

이 일본어 ‘おまかせ’는 사실 대단한 표현이 아니다. 접두어 ‘오’에 명사형 ‘마카세’가 붙은 말로, ‘알아서 맡긴다’는 뜻이다. 꼭 식당에서만 쓰는 말도 아니다. “알아서 해주세요”의 일본어 버전일 뿐이다. 고급 식당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대중식당, 술집에서도 흔히 쓰인다. 퇴근길에 들르는 작은 잔술집에서도 이런 방식이 많다. 일본은 소주나 청주(일본주)가 다양해서 하루 일과에 지친 직장인들이 들러 주인에게 맡겨버리는 음주법이 있다. 술에도 오마카세가 있다는 얘기다. 하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주나 맥주를 시키면 직원이 꼭 묻는다. 그러면 대충 이렇게 대답하곤한다. “아무거나(알아서) 주세요.”

요즘은 오마카세가 ‘이모카세’로 확장(?)됐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모카세의 조건은 이렇다. 먼저, 식당에 이모 급의 아주머니 혹은 할머니 요리사, 주인장이 계셔야 한다. 연세 지긋하고 식당 장사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분, 재료와 제철에 훤한 분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날그날 좋은 음식을 알아서 내줄 수 있다. 다음으로는 다루는 메뉴가 많아야 한다. 고깃집 같은 곳은대체로 하기 어렵다. 물론 온갖 고기 부위(황제살, 쫄깃 턱살, 콧살, 삼겹 뽈살, 덜미살···)가 나오는 요즘이라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 참고로 위에 적은 부위들은 대부분 대한민국 축산물 유통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이 아니다. 장사하는 분들이 차별화를 위해 만들어낸 표현들이다.

이모카세는 시대가 만들어낸 조어이지만, 나름대로 따뜻하고 정겨운 맛도 있다. 오마카세라는 고급 미식을 살짝 비틀면서 푸근한 전통 밥집·술집의 장점을 소환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밥집에서는 예전부터 ‘맡기는 메뉴’가 흔했다. “요즘 뭐가 좋아요?”라는 말로 오마카세를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모 같고 다정하고 기술 좋은 동네 골목식당의 아주머니 요리사뿐이다. 프랜차이즈에서는 불가능하다. 메뉴를 마음대로 만들 수도 없고, 재료를 다른 데서 받았다가는 계약 해지 사유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규모 있는 식당은 오랫동안 남성 중심 구조였다. 남자는 주방장이나 실장이 될 수 있었지만, 여성은 대체로 보조에 그쳤다. ‘찬모’라거나 ‘밥모’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오래 일해도 업무가 한정되고 직급도 오르지 않았다. 그분들 모두 요리에서 한 장르를 터득했으니 셰프는 셰프였지만, 그렇게 불린 적도 스스로를 셰프라 자각한 적도 없었던 듯하다. 셰프라고 불려서 달라질 건 없지만, 내면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불러줘야 내면이 완성된다. 사실 이모들도 기능적으로는 다 셰프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모와 찬모, 밥모들은 늘 수면 아래 있었다. 한 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다.

‘이모카세’를 별스럽고 희한한 조어라고 혀를 찰 분도 있겠지만 요리 기술자로서, 또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을 위로해 주던 카운슬러로서 이모들은 제 몫을 다해왔다. 이제 이 이모들도 모두 퇴장하고 있다. 그 고단한 일을 대신할 세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면을 빌려 그들께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독자분들도 당신 곁의 어떤 식당 이모들을 기억해 주시길, 오늘 점심 한 상을 받으며 다시금 감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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