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으로 건더뛰기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ENG
  • 경제배움
  • Economic

    Information

    and Education

    Center

칼럼
강양구의 과학토크건물 사이에 피어난 잡초를 밀어버리면?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2026년 06월호

바랭이, 개망초, 서양민들레, 쇠비름, 명아주, 질경이…. 분명 한두 차례 이름을 들어본 식물이다. 하지만 이름만 듣고서 그 모양을 곧바로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다. 잠시 시간이 있는 독자라면 지금 당장 검색 사이트에서 이 식물들을 찾아보자. 사진을 보자마자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식물들은 한국의 보도블록, 도로변, 공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식물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잡초’라고 부르면서 무심히 지나치는 식물이다. 한여름에 너무 번성한다 싶으면 굳이 힘을 들여 솎아내는 것들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들 잡초는 각각의 사연도 재미있고 뜻밖에 힘도 세다.

보도블록 틈에서 살아남는 법
바랭이나 질경이부터 예사롭지 않다. 바랭이와 질경이는 보도블록 틈새에서도 뿌리를 내리면서 번식하는 대표적인 도시 잡초다. 바랭이는 줄기 마디가 땅에 닿기만 해도 뿌리를 내리는 극한의 번식력 탓에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부에게 ‘악마의 풀’로 불린다. 하지만 이런 생존력 덕분에 도심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

바랭이의 놀라운 생존 비결은 독특한 번식 방법에 있다. 이 식물은 줄기의 중간을 잘라도 잘린 조각이 독립된 개체로 살아남는다. 마치 머리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나오는 그리스 신화 속 ‘히드라’의 식물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 덕에 보도블록을 갈아엎거나 풀베기를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개체가 뿌리를 내린다.

질경이도 알고 보면 만만한 식물이 아니다. 대다수 식물은 차나 사람이 왕래하는 곳은 피한다. 밟히다 보면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경이는 물과 양분이 오가는 통로인 관다발이 질겨서 웬만한 물리적 충격에도 구조가 건재하다. 오히려 차나 사람이 밟고 다니는 길 한복판을 차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질경이 씨앗에는 끈적거리는 점액질이 묻어 있어서 신발 밑창이나 바퀴에 묻어 도시 이곳저곳으로 퍼진다.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질경이가 자리를 잡고 나서 도시 곳곳으로 빠른 시간에 전파되는 결정적인 이유다. 도시에서 살아남기에 최적화한 식물을 딱 하나만 꼽자면 질경이가 떠오른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바랭이와 질경이지만 도시 환경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우선 바랭이나 질경이 같은 도시 잡초는 대기 가운데 떠 있는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체내의 수증기를 내뿜는 증산 작용을 통해서 도심 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더구나 바랭이와 질경이의 굳건하게 내린 뿌리는 비바람에 토양이 씻겨나가는 일도 막는다.

이름도 귀에 익고 한번 보면 바로 알 만한 꽃도 있다. 바로 개망초와 서양민들레다. 개망초는 길가, 공터, 아파트 단지의 풀밭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꽃으로 ‘계란 프라이’를 닮은 국화과 식물이다. 한 개체가 수만 개의 씨앗을 만들고, 바람을 타고 도시 곳곳으로 퍼지기에 어느새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표 야생화가 됐다.

이름이 ‘망초’가 된 사연도 있다. 개망초는 본래 토종 식물이 아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철도 건설을 위해 사용된 침목에 딸려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철길을 따라서 개망초가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기 때문이다. 망조가 든 나라에서 침략의 상징과도 같은 철길을 따라서 피는 하얀색 꽃이었으니, 한때 ‘망국초(亡國草)’로 불렸을 만하다.

서양민들레도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애초 유럽이 원산지인 외래종이다. 이미 1920년대에 한국에서 서식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100년도 더 된 귀화 식물이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민들레의 90% 이상은 서양민들레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반전이 있다. 우리가 보는 서양민들레는 모조리 똑같은 유전자를 가졌다.

꽃이 번식하려면 수술과 암술의 수정이 필요하다. 이 수정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꿀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이다. 그런데 갈수록 도심에서 벌과 나비 같은 곤충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서양민들레는 이런 환경에 적응하고자 수술과 암술이 수정할 필요 없이 자기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해서 씨앗을 만드는 무성생식 식물로 진화했다. 모든 서양민들레의 유전자가 똑같은 이유다.

도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잡초 취급을 받는 개망초와 서양민들레도 긍정적인 기능이 많다. 이들 역시 바랭이나 질경이처럼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증산 작용으로 도심 기온을 떨어뜨린다. 나아가 이들은 토양의 중금속을 흡수하는 정화 능력도 뛰어나다. 일단 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그 땅에 충분한 공간이 있다면 식물이 번식할 만한 상태가 된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무심히 스치던 도시 이곳저곳의 잡초가 다르게 보일 테다. 더구나 개망초나 서양민들레는 한 번도 주목받지 못했지만 한 세기 이상 한국의 생태계와 조화를 이뤘다. 이런 개망초나 서양민들레를 잡초라고 홀대하면 뜻밖의 부작용도 생긴다. 새로운 잡초가 움트는 것이다. 최근 도심 공터에 갑자기 늘고 있는 단풍잎돼지풀 같은 외래종이 그렇다.

단풍잎돼지풀은 1950~1960년대 (어쩌면 미군 보급 물자에 섞여서) 한국에 유입된 잡초인데, 최근 급격하게 그 세를 불리고 있다. 최대 3미터까지 자라면서 도시 인근의 공터를 점령하고 있는 이 잡초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가을철에 강력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방출해서 비염 같은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

현실이 된 아바타 세상 vs 발밑의 생태계
토착 잡초를 제거한 자리를 더 위험한 외래종이 채운다는 역설은 또 다른 층위에서도 반복된다. 스스로 번식하며 도시를 치유하는 토착 잡초를 예초기로 밀어버리는 사이, 과학계 한편에서는 막대한 연구개발(R&D) 예산을 들여 자연에 없던 빛을 설계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202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티티아나 미튜시키나와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카렌 사르키시안 등 러시아·영국 공동 연구팀은 빛을 내는 버섯의 유전자를 주로 ‘실험 식물’로 쓰이는 담배(Nicotiana tabacum)에 집어넣어 빛을 내는 식물을 만들었다. 이들 연구의 최종 목표는 자연 발광하는 가로수를 만드는 것이다.

전기를 따로 연결하지 않아도 밤만 되면 알아서 빛을 내는 가로수! 얼른 연상이 안 된다면 영화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에서 밤마다 알록달록 네온사인처럼 빛을 내는 거대 식물을 생각하면 된다. 유전자 조작으로 이런 빛을 내는 가로수를 만들어 도시 곳곳에 심는 일이 현실이 된다면 도시 환경은 더 나아질까?

어차피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빛 공해에 오염이 됐으니 그것을 발광 가로수로 바꾸는 일이 뭐가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로등이나 네온사인은 끌 수라도 있지 발광 가로수는 밤새 계속 켜져 있다. 그렇게 계속 켜져 있는 가로수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도시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발광 가로수가 실험실을 나와서 생태계에 연결됐을 때의 부작용도 걱정거리다. 가로수 안에 삽입한 빛을 내는 유전자가 생태계의 다른 식물, 예를 들어 앞에서 살펴본 잡초에 전이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발광 가로수를 만드는 일이 과연 도시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 구성원에게 이득일까.

오랫동안 생태계의 이웃으로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제 할 일을 하는 잡초는 제거하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빛을 내는 가로수를 만드는 상황. 생태계가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가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이다. 우리는 지금 그 자본을 예초기로 밀어내고 있다. 
보기 과월호 보기
나라경제 인기 콘텐츠 많이 본 자료
확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