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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밥 한 그릇의 위로빵집의 기억과 빵세권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2026년 06월호

어릴 때 빵집 심부름을 종종 갔다. 동네에 제과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 식빵을 사 오는 게 임무였다. 비닐에 싸인 하얀 덩어리. 집에 오면서 가장자리를 뜯어 먹었다. 탄 부분이 고소했다. 들키면 혼났다. 그래도 먹었다. 그게 내 빵의 역사다.

1970년대는 분식의 시대였다. 샤니, 삼립, 콘티넨탈식품 같은 제빵 회사들이 빵을 공급했다. 배송 아저씨들이 구루마(수레)에 빵을 싣고 산동네 구멍가게까지 배달했다. 오만 가지 빵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대부분 비슷한 맛이었다. 설탕과 마가린이 들어가면 빵 맛이 났다. 더 물어볼 게 없는 시대였다. 

식빵은 일본이 유럽에서 받아들인 이 덩어리 빵에 붙인 이름이다. 과자나 간식이 아니라 식사용으로 먹는 빵(食パン, 쇼쿠팡)이란 뜻이다. 일본은 포르투갈 선원들에게 팡(빵, pao)을 받아왔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식빵 문화를 건네받았다. 전쟁 후에는 미국이 밀가루를 줬다. 한미 친선 악수 그림이 포장지에 그려진, 이른바 ‘악수표 밀가루’였다. 구호물자였던 밀은 식빵을 서민의 아침 식탁에 올려놨다. 버터가 귀하면 마가린을 발랐고, 그것도 없으면 그냥 먹었다. 그 식빵이 지금 천연발효종이니 탕종이니 하는 고급 식빵 시대까지 다다랐다. 100년도 채 안 걸렸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하루 빵 섭취량은 2012년 18.2g에서 2020년 19.4g으로 약 7% 늘었다. 같은 기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9.8kg에서 57.7kg으로 17% 넘게 줄었다. 식사용 빵시장은 더 가파르다. 식빵, 베이글, 캉파뉴 같은 담백한 빵은 근래 5년간 시장 규모가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성심당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성심당의 연매출이 2,629억 원을 찍었다. 2020년에 488억 원이었으니 5년 만에 다섯 배 넘게 올랐다. 성심당이 증명한 건 간단하다. 서울에 안 가도 된다는 것, 확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단순히 매출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전 국민적 문화현상이 되고 있다. 이른바 ‘빵지 순례’다. 순례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성심당 하나가 대전으로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지역경제의 앵커가 됐다. 

다른 지방에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이 집들은 운이 좋아 살아남은 게 아니다. 수십 년을 한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빵을 구웠기 때문이다. 레시피가 안 변했다는 게 자랑이 되는 시대가 됐다. 공장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옛날 빵은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세대들에겐 역사적 빵 맛을 보여준다. 

청년들의 분전도 뚜렷하다. 골목마다 작은 윈도우베이커리가 생기고 있다.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빵집을 연 서른 살짜리도 있고, 공대 나와서 독학으로 발효를 공부한 사람도 있다. 이들이 만드는 빵은 때로는 세련되고 때로는 거칠다. 정통이 뭔지 모른 채로 시작했지만 그게 오히려 장점인 경우도 있다. 배운 대로만 하지 않으니까. 이 청년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빵은 거짓말을 못 한다는 것이다. 재료를 아끼면 바로 티가 나고 발효 시간을 줄이면 맛에 드러난다. 효모는 주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반대로 진심을 다하면 그것도 바로 드러난다. 나는 요리 중에 제빵이 가장 우직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화학과 생물학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빵세권’이라는 말이 생겼다. 좋은 빵집 근처에 사는 것이 집값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다. 웃자고 만든 신조어 같지만 사실이다. 빵이 생활 수준의 지표가 된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이식된 빵 문화와 원조받은 밀가루에서 출발한 나라가 여기까지 왔다. 

성심당이 연매출 2,600억대를 찍고 노포 빵집에 줄을 서고 골목 안 윈도우베이커리에 아침마다 사람이 온다. 빵의 만세다. 
각자의 방식으로 굽고 각자의 속도로 버티는 그 빵집들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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