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으로 각광받던 비트코인이 어쩌다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이 됐을까. 지난해 10월 12만6천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2월 6만 달러대로 추락했다. 국내 증시가 눈부시게 상승할수록 비트코인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 차게 식었다. 통상 지정학적 위기에 더 빛나던 비트코인은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이란 당국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받을 것이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 보도와 달리, 실제로는 현금(이란 리알화)으로 통행료를 받아 또 한 번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흔들리고 있는 가상자산 신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한계는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첫째, 이번 전쟁에서 보듯 금융위기나 지정학적 리스크에 안전자산 역할을 해줄 거란 기대가 무너졌다. 둘째, 들고 있는 것만으로는 돈이 안 나온다. 은행 예금처럼 이자가 붙는 것도 아니고 주식처럼 배당을 주는 것도 아니다. 금리 인하가 늦어지고 증시가 활황이라면 비트코인에 돈을 묶어둘 이유가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양자컴퓨터 개발이 진행될수록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구글 연구진은 양자컴퓨터가 생각보다 더 쉽게 비트코인 보안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그나마 지난 4월 들어 반등을 시작해 5월 초 8만 달러 선을 잠시 회복했다. ‘코인 개미’가 돌아온 걸까? 아니다. 누가 샀나 살펴보니 기관, 정확히는 비트코인 현물 ETF 자금이 반등의 동력이었다. 2024년 출시된 비트코인 현물 ETF는 지난 5월 초 기준 약 1,070억 달러(약 160조 원) 규모의 운용자산을 확보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정점이었던 지난해 10월 초에는 그 규모가 약 1,650억 달러에 달했다. 중동 갈등이 끝날 거란 기대에 위험 자산을 담은 거시적인 움직임이다.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에 편입되면 어떻게 달라질까
미국에서는 지난 5월 상원 은행위원회가 「클래리티 법」을 통과시키면서 이 법이 7월 초까지 상원 본회의를 통과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처음으로 가상자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하는 법이다. 앞서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해 주요 가상자산 16개를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했다. 주식, 채권과 달리 발행 주체의 경영 활동에 따른 수익을 기대하기보다 기술적 구조나 시장 메커니즘이 가격 형성의 핵심 변수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과 자산운용사들이 당국의 제재 우려 없이 가상자산을 취급하기 쉬워진다. 「클래리티 법」까지 통과되면 전통 금융권의 가상자산 참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년부터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가 시작될 예정이다. 현행 「소득세법」상 가상자산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 복권 당첨금이 대표적인 기타소득이다. 기타소득세는 20%, 여기에 지방소득세 2%가 함께 붙는다. 연간 수익 250만 원까지는 공제가 된다.
종합하면, 가상자산시장은 이제 ‘사면 오르는 투기의 시대’를 지나 제도권 금융 안으로 편입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탈중앙화와 초고수익 기대감이 시장을 움직였다면, 이제는 ETF와 법, 과세체계 같은 전통 금융의 언어로 설명되는 자산이 돼가고 있으니 말이다. AI 에이전트 활용 범위가 늘고 금융이 온체인으로 옮겨가면 가상자산시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머지않아 달러·금·주식처럼 대중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분산 편입되는 자산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야수의 심장을 지닌 투자자들에게는 가장 재미없는 변화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