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가 곤욕을 치른 사건이 있었다. 폴란드 포즈난의 한 행사에서 유료 인공지능 챗봇을 ‘자기야’라 부르며 “우리 이걸 아름답게 다듬어볼까?”라는 말을 건넨다고 창작 과정을 설명했다. 문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문학이라는 고귀한 작업에 언어 모델을 쓰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며 일각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까지 흘러나왔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공식 성명을 내고 “내 발언이 오해를 샀다”며 “오랜 세월 도서관을 뒤졌던 것처럼 자료 확인을 빨리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도구로 쓸 뿐”이라고 반박했다.
작가로서 기사를 보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렇게 호들갑 떨면서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박탈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일인가? 밤늦게 혼자 글을 쓰던 작가가 인공지능을 말벗 삼는 게 그렇게 지탄받을 일인가?
스토리를 다루는 예술 작품 중에서 창작의 모든 과정을 혼자 도맡는 경우는 드물다. 연극이나 영화는 수많은 창작자의 협업으로 이뤄지고, 드라마나 웹툰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설은 작가 혼자 모든 걸 써야 한다. 캐릭터 만들기부터 배경 자료 조사, 구성, 집필, 팩트체크, 퇴고까지 혼자 책임진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혼자만의 작업이기 때문에 단점과 장점이 명확하다. 단점은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재를 많이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작가라고 해도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단점은 곧 장점이 되기도 한다. 누구도 개입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의 다양한 감정을 마음껏 탐험해 볼 수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눈치 보지 않고 끝까지 해볼 수 있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인공지능에 “자기야, 우리 이걸 아름답게 다듬어볼까?”라고 말을 건넨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인공지능 스피커에 말을 거는 것처럼, 일을 시작할 때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말을 걸었을 것이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모든 문장을 자신이 직접 썼다고 말했다. 포털에 검색하듯 인공지능에 검색을 맡기는 게 뭐가 문제일까? 나는 이 문제로 인공지능과 대화를 나누다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인공지능의 결과물을 여과 없이 복사해 자신의 문장으로 위장한다면 그건 독자를 향한 명백한 기만이야. 반면 작가적 사유를 더 날카롭게 벼리기 위한 도구로 쓴다면, 그건 타자기에서 워드프로세서로 넘어간 것과 같은 기술적 진화일 뿐이지.
결국 부도덕함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창작의 고통을 우회하려는 얄팍한 태도에서 발생한다고 봐.”
인공지능이 내게 해준 말이다. 올가 토카르추크 같은 대가는 그런 걱정이 없겠지만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에 많은 부분을 기대고 있다.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인공지능에 질문을 던지게 되는 조급함, 글 쓰는 게 너무 힘드니까 복잡하고 깊은 곳으로 더 들어가지 않고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편리한 길로 가려는 마음이 무심코 생겨날 것이다.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이 글의 아이러니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