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는 규모면에서 세계 10위권을 약간 벗어나 있고, 무역에서는 10위권을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주력 산업들은 세계 5위권 안에 들어 있다. 조선, 반도체, 철강, 자동차, 통신기기, LCD 등 그 면면도 화려하게 중화학공업, 첨단산업이 총망라돼 있다. 산업의 실력을 바탕으로 우리 대표 기업들이 세계를 누비고 있다. 자동차, 전자 기업들을 필두로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의 일원으로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우리 산업의 경쟁력과 경영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이런 우리 기업의 활약을 선진국 기업들이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 지는 이미 오래됐다. 또한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그 발전과정을 배우려 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
세계 최빈국에서 중화학ㆍ첨단산업 총망라한 나라로
하지만 한국 산업이 이렇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사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부분의 신생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을 겨우 얻어낸 1940년대 중반이나 6․25 전쟁을 겪은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가장 뒤처진 저개발 최빈국에 불과했다. 1960년대에 비로소 경쟁력을 갖춘 제조업을 육성했지만 값싼 임금을 활용한 가발, 합판, 의류, 조립가전 등의 낮은 기술의 노동집약적 산업들에 불과했다. 이러한 저급 기술의 산업들에서나마 한국경제 발전의 씨앗을 찾아내고 이들을 수출산업화하는 데 성공한 초기 기업가들의 활약이 컸음은 물론이고 이들을 뒷받침한 정부의 적절한 수출지원 정책도 빛을 발했다.
1970년대는 노동집약적 산업들에 들어갈 중간재와 기계 등을 생산하는 중화학 공업들이 육성됐고, 이들이 수출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 한국 산업은 본격적인 심화 과정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국 산업에 대한 선진국의 경계감이 높아졌고, 선진기술의 모방에 의한 산업발전 방식도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서 한국 산업계는 본격적인 기술개발 노력을 가속화했고, 정부도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이른바 ‘기술 드라이브’를 이끌어냈다. 점차 그 성과도 드러나 반도체, 통신기기 방면에서는 세계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고, 철강, 조선 등의 전통적인 주력산업에서도 새로운 생산공정 기술이 속속 나타나 한국산업의 경쟁력을 높였다.
때마침 세계경제 환경이 WTO 출범 등으로 개방화 추세가 심화됨에 따라 한국 산업의 글로벌화도 크게 진전됐다. 그것은 우리 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확대되는 형태로 나타났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산업들의 수출 확대 그리고 해외투자의 확대의 형태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제도에만 익숙했던 기업들도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기업 경영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산업은 1990년대 말에 외환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을 대표하던 몇몇 거대 기업집단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일부는 정부의 구제금융에 의존해 겨우 생존의 길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산업은 시련 속에서도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다. 때마침 불어온 세계적인 IT 붐에 편승하여 반도체, 통신기기 등의 IT 산업이 빠르게 세계 시장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의 주력산업들도 옛 경쟁력을 회복했다. 이러한 성과가 있기까지 경쟁기업들보다 한 발 빠른 한국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 꾸준한 기술개발 노력 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세계적인 IT 붐에 발맞춰 전국적인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건설하는 등 IT 산업 환경 개선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정부도 큰 역할을 했다.
반기업정서ㆍ양극화 해소가 과제
IT 산업에서 세계를 선도해 나가는 위치에 선 한국 산업은 이제 새로운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그 후보로는 새로운 기술력을 요구하는 바이오, 나노, 융합 등의 신기술 분야, 모든 산업들의 경쟁력을 뒷받침해야 하는 부품․소재 분야 그리고 그동안 제조업에 가려져 있던 서비스 분야 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이미 세계적으로 그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는 녹색성장 분야도 한국 산업이 개척해야 할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산업과 기업들이 겪었던 시련과 그 극복과정을 되돌아보건대 이러한 미래의 성장동력 개척 분야에서도 좋은 성과를 이루어낼 것으로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래 성장동력을 개척해 나가는 것과는 별도로 한국 산업과 기업들이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우선, 한국 사회에 팽배해 가고 있는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는 일이다.무(無)에서 출발해 그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눈부신 성과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적 공헌 등의 측면에서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 경영 속에서 국가경제에 더 많이 이바지하고, 상속, 노사관계, 중소기업과의 상생 문제 등에서도 모범을 보이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아가, 점점 더 심화되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도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양극화가 이대로 계속 심화된다면 양극화의 플러스 극에 서 있는 기업들도 근본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마이너스 극 쪽을 함께 키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