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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특별기고자본시장의 대변혁을 꿈꾸며
진웅섭(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 2011년 09월호
2007년 8월 ‘자본시장통합법’이라고 불리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자산운용업법」, 「신탁업법」 등 총 7개 법률이 통합된 덩치 큰 법률이 탄생한 것이다. 「자본시장법」은 은행업․보험업 이외에 금융 관련 법령의 통합을 통해 우리 자본시장에서 금융투자회사들의 자율을 보장하고 혁신을 촉진해 선진 투자은행이 출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 전후로 지속됐던 미증유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각국은 과도하게 성장한 금융시장을 정상화화기 위해 각종 금융규제 방안을 내놨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발전 모델로 삼았던 미국식 투자은행은 고수익-고위험 투자모형으로 추진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2008년 가을의 위기는 해를 세 번이나 바꾸는 동안 민간과 정부의 노력과 국제공조에 힘입어 어느 정도 끝이 보이는 듯했다. 물론 위기의 불씨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나 이제 대부분의 국가가 새로운 금융질서를 분주히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자본시장법」이 추구했던 당초 목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손질하는 것은 정책당국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였다.


우리 금융투자업, 단순 주식중개업무에 치중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법 제정 당시 기대했던 선진 투자은행이 출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 위기 이후에 제기된 국제 금융규제 논의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자본시장 인프라 개혁이나 기업 직접금융의 내실화와 같이 법 제정 당시에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던 정책과제들과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안전장치들도 함께 담고 있다.

우선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국내 투자은행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제도를 새로 도입하고자 한다.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은 증권의 발행시장에서 증권인수의 형태로 기업에 자금을 중개ㆍ공급하는 단순 증권업무에서, 기업설립을 위한 모험자본의 공급,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기업인수ㆍ합병(M&A) 등 기업금융의 전 과정에서 주선ㆍ자문하는 전통적인 투자은행 업무는 물론, 투자은행 기관이 수익 다변화를 위해 수행하는 프라임브로커(사모펀드에 대한 신용 공여, 펀드재산 보관․관리 등의 업무를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기관), 내부주문집행(투자은행이 거래소에서 고객 주문을 집행하지 않고 투자은행 내에서 고객의 주문을 체결)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 우리 금융투자업계는 단순한 주식중개 업무만 치중하면서 회사채 인수, IPO업무 등의 기업금융 업무에는 저가 출혈경쟁을 반복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M&A 자문, 국내기업의 해외 채권 발행, 그리고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조달 구조설계 등의 고부가가치 업무는 외국계 주요 투자은행이 차지하고 있어 국내 투자은행 활성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자기자본 3조 이상 증권회사 투자은행 허용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내 투자은행 활성화를 위한 제도로 자기자본 3조원 이상으로 위험관리 능력 등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 증권회사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속칭 ‘투자은행’)로 지정해 종합적인 기업 신용공여, 내부주문집행, 프라임브로커 업무 등 새로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했다. 투자은행으로 지정된 증권회사는 신생기업을 발굴하고 투ㆍ융자, IPO, 인수, M&A 자문에 이르는 기업금융 업무에서 다른 금융투자회사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헤지펀드 등을 대상으로 증권대여, 자금지원, 헤지펀드 재산의 보관․관리, 매매체결ㆍ청산ㆍ결제 등 종합금융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자산운용산업과 관련해서는 저출산ㆍ고령화 사회에 걸맞은 안정되고 수익성 있는 투자가 가능하도록 규제체계를 선진화했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의 이익에 부합하게 펀드재산인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고 소규모 펀드 간 합병 촉진을 위해 수익자총회 면제 등 절차를 간소화해 투자자 보호를 강화했다. 또한 100세 시대 도래에 따라 맞춤형 투자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자산운용산업 간 경계를 명확히 하고 신탁업자가 수탁 가능한 자산종류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등 신탁업 규제를 정비했다. 펀드 운용의 자율성과 창의성 제고를 위해 펀드규제도 일부 완화했다.

둘째, 산업과 함께 시장 인프라가 발전할 수 있도록 ATS(Alternative Trading System, 대체거래시스템), CCP(Central Counterparty, 중앙청산소) 등을 새로이 도입하고자 한다. 해외 주요거래소는 M&A, IPO 등을 통해 대형화ㆍ글로벌화를 추구하면서 경쟁력을 제고해온 반면 우리나라는 그간 독점거래소 형태로 운영돼 국제경쟁에서 뒤처졌다.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 정규거래소와 경쟁하는 대체거래시스템이 도입돼 유통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와 함께 G20 합의사항인 장외파생상품의 중앙청산소를 도입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채무불이행이 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상품군에 대해서는 청산을 의무화할 것이다.

셋째, 상장기업이 직접금융시장을 통해 자금을 보다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자금조달수단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주주총회도 보다 내실있게 운영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앞으로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 상장기업들은 조건부 자본증권(일정한 조건에 따라 새로운 증권을 발행하거나 기존 증권을 새로운 증권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금융상품), 독립워런트(일정한 기간 내에 미리 정한 가액으로 해당 법인에 대해 신주의 발행 또는 자기주식의 양도를 청구할 수 있는 증권) 등 신종 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는 등 자금조달의 효율성과 다양성이 제고될 것이다. 또한 상장기업의 주주총회 내실화를 위해 섀도우보팅(Shadow Voting; 발행회사 요청시 원활한 주총 성립 등을 위해 예탁결제원이 주총 참석 주주의 찬반투표 비율에 따라 중립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현재는 대주주의 회사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등의 부작용 발생) 제도를 2015년부터 폐지할 예정이다. 섀도우보팅 제도는 주총운영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입한 제도이지만 오히려 주총 활성화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장애요인으로 지적됐다. 그간 전자투표제도 도입 등을 통해 기업들이 의결권 확보를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해왔음을 감안할 때 섀도우보팅 제도의 폐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불공정거래와 공시 등과 관련한 규제의 실효성 제고방안을 반영했다. 자본시장은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접금융시장인 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전반적인 불공정거래 규제체계를 선진화하고자 한다.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한 국내 주가조작, 미공개정보 관련 규제를 개선하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과다한 호가관여행위(스캘핑)도 행정제재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또한 과징금의 범위를 확대해 형사처벌 대상행위에 비해 위법성이 낮은 시장질서 교란행위 등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제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전면적인 법 개정을 통해 산업 및 시장 전반에 걸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투자은행, 헤지펀드 등과 경쟁할 수 있는 자본력과 평판을 갖춘 글로벌 수준의 토종 IB가 출현할 것이다. 금융투자회사는 기존의 위탁매매, 단순중개 위주의 영업에서 신성장 분야 기업발굴, M&A 자문 등 종합 기업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것이다. 이는 금융투자업자가 금융의 실물시장 지원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보다 충실할 수 있도록 하고 단순 중개 서비스 수준에 머물렀던 국내 금융투자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시장 인프라 측면에서는 대체거래시스템 등이 도입돼 단기적으로는 투자자의 거래비용이 감소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거래소 경쟁력 강화를 통한 역내 주도권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본시장법」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보다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며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투자자 측면에서는 맞춤형 금융상품이 출현하여 투자자의 선택권이 증가하고 불공정거래 등에 대한 규제 강화로 우리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

투자은행 시작도 전에 문닫을 걱정부터 해서야

정부가 각계의 의견을 한데 모아 마련한 「자본시장법」이지만 입법예고를 한 후,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금융위기로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투자은행 육성이 웬 말이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그 고민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가 대학에 가서 사고를 일으킬까 봐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때 이른 걱정이다. 우리 산업이 아직 투자은행 업무를 시작도 못해 본 상황에서 과도한 리스크 부담으로 문닫을 우려부터 하기보다는 오히려 선진 투자은행이 몰락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건전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

모든 투자자가 동의하는 게임의 룰은 ‘High Risk High Return, Low Risk Low Return'(고위험-고수익, 저위험-저수익) 이다. 이 말은 정책결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혁신적인 변화를 바란다면, 혁신적인 시도가 있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정책결정은 어떠한 혁신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정부가 자본시장의 대변혁을 꿈꾸기 때문에 이러한 대수술을 단행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공 여부는 시장과 산업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자본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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