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교수는 현행 국제금융통화질서를 태양계에 비유하는 흥미로운 논의를 제시한 적이 있다. 기축통화는 태양의 지위에 놓여 있고 기타 통화는 행성으로서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 태양이 하나면 모든 행성이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돌기 때문에 안정된 체제가 된다. 문제는 태양이 여러 개인 경우, 즉 기축통화가 여러 개 있는 경우다. 한 행성의 1번 태양과의 상대적 위치가 변하면 이에 따라 2번 태양과의 거리도 달라진다. 현행 체제가 가진 문제점을 행성의 움직임에 비유한 것이지만 새겨들을 만하다. 달러 혼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브레튼우즈 1.0’ 체제가 무너지고 몇몇 통화들이 기축통화 역할을 나눠가지는(물론 중심은 달러지만) ‘브레튼우즈 2.0’ 체제가 지금 작동하고 있는데, 이 체제가 가진 불안정성은 상당한 수준이다. 따라서 이는 언제든 도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근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반응이 상당하다. 이미 2014년 10월 24일 중국·인도·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를 포함한 21개국이 AIIB 설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최근 영국까지 참여의사를 밝히면서 상황은 급진전해 참여국은 57개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만이 부정적이나 일본도 참여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AIIB의 구상은 시진핑 주석이 내놓은 ‘이다이이루’, 즉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라는 계획과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선 역사적 배경까지도 제시되고 있다. 바로 당나라와 명나라다. 당나라는 육상을 통해 실크로드를 개척했고 명나라는 해상을 통한 벨트를 만들었다. ‘이다이이루’라는 구상은 옛 영광을 재현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 인접지역을 물리적·경제적으로 연결시켜 일차적으로는 막대한 해외 인프라 투자수요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중국 내륙지역과 인접국가와의 경제적 시너지를 창출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논의도 의미가 있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위안화의 국제화 과제다.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의 반열에 올려놓을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가 성공작이라는 평을 받을 경우 중국의 위상은 상당부분 제고되면서 위안화 국제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AIIB에서는 위안화가 상당부분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AIIB를 근간으로 위안화 기축통화체제가 추진되면서 IMF와 세계은행을 근간으로 한 달러중심체제와 공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공존체제를 ‘브레튼우즈 3.0’ 체제로 보는 시각이 등장하고 있다. 홍콩이라는 거대한 금융허브를 소유한 중국은 이미 위안화 역외시장을 가동시키고 있고 이에 자극받은 영국이 런던을 위안화 역외시장 중 하나로 키우기 위해 AIIB 가입의사를 밝혔다. 금융산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다 보니 영국은 위안화의 국제화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다.
우리나라도 AIIB에 창립멤버로 참여하는 것이 확정되고 추인됐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중요한 변수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AIIB에 참여의사를 밝혔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출범 이후 적절한 시점에서 북한의 참여가 확정되면 이 기구를 통해 북한의 개발을 지원할 수도 있고 개방을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이 경우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미리 북한 개발과 개방을 촉진할 수 있게 되므로 우리에게는 상당한 이득이 된다.
AIIB가 어느 정도까지 폭발력을 가질지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질서에 큰 변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흐름을 잘 읽고 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